병성사회문제연구소에서 분석한 한약분쟁의 시기별 고찰이라는 논문에 보면 한약분쟁을 다음과 같이 3시기로 나누고 있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1993년 한의사와 약사간에 한약조제를 둘러싸고 싸우게 된다.
그해 겨울 정부와 양단체는 두가지 조건에 합의하게 된다.(1차 한약분쟁 종결)

1. 약사들에 대해 한약조제시험실시
2. 한약학과의 신설 및 한약사 도입

1번 합의안을 시행하던 1996년도에 그 시험출제의 주체를 놓고 한의사는 약사가 시험출제에 들어가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약사들은 반대하고 해서 분쟁이 발생하게 된다.(2차 한약분쟁) -결국 2만5천명의 약사들이 자격획득하고 종결.

2번 합의안을 시행하던 1999년도에 한약사 시험을 놓고 또 분쟁이 시작된다. 한약학과 출신이 아닌 약대생들이 편법으로 한약사 시험에 응시하려고 한 것이다.(3차한약분쟁) -결국 약대생들이 한약사시험에 응시하게 되고 종결.


다음 글은 약사들의 한약조제시험문제로 온나라가 들끓던 1996년 봄에 일어난 이야기이다.
당시 나는 본과 1학년이었고, 한약분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있었다.
나는 그해 어버이날을 잊을 수가 없다.

그해 봄, 약사들이 한약조제시험 출제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듣고 울분에 찬 전국 한의대생들이 경희대에 모여 사실상의 투쟁선포식인 전한련 출범식을 가졌다.

전국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집회를 준비했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출범식을 보지 못했다. 출범식 본식이 거행되고 있을 그 시각, 나는 40여명의 한의대생들과 경희대옆 외대 운동장을 뛰고 있었다.
그날 밤은 비가 몹시 퍼부어댔다. 사실 우리는 영문도 모른채 뛰었다. 잠시후 왜 뛰었는지 알게 되었다. 내일 김영삼(당시 대통령)이 기거하는 곳에 데모하러 가자는 것이었다.

5월 6일 새벽 2시. 누가 먼저 불렀는지 모르게 어느새 우리는 모두 '전한련찬가'를 부르며 걸었다. 비는 손가락 굵기로 계속 퍼부어댔고, 우린 나직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외대를 나와 경희대 후문을 향해 터벅터벅 걸었다.

비를 맞으면서 그렇게 기분 좋았던 적은 태어나서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비를 그대로 맞는데 너무 시원했다. 빗줄기 사이로 나직이 퍼지는 그 노래 때문이었을까. 전한련찬가. 그때 한의대생들에게 있어 애국가나 다름없었던 노래.

경희대 한의학관에 도착했다. 새벽 2시 반.
출범식에 참여한 다른 학생들은 모두 강의실 바닥에서 자고 있었고, 운동장에서 구르고 온 우리들은 조심조심 3층으로 올라가서 304강의실 문을 열었다.
강의실 문을 열자 우리의 눈에 들어온 건 강의실 책상 사이로 비닐장판을 깔고 담요로 잠자리를 마련하고 누워 있는 수십명의 아주머니들의 모습이었다. (경희대 강의실 책상은 붙박이라 옮겨지지 않는다.)

바로 우리 엄마들이었다. 몇몇 어머니들이 갑작스런 우리의 방문에 놀라 일어났다.

"학생들, 무슨 일 있었어요? 왜 그래요?"(우린 비를 쫄땅 맞았으므로..)

"예, 아무 일도 아닙니다. 어머님, 주무십시오."

"학생들, 잘 데 없으면 여기서 자요. 우린 차에 가서 잘테니까."

"아닙니다. 어머님, 그냥 주무십시오. 저희는 잘 데 있습니다." (하지만 우린 마땅히 잘 데가 없었다.)

강의실을 자세히 둘러보니 책상들 사이사이 공간마다 어머님들이 담요를 덮고 새우잠을 주무시고 계셨다. 갑자기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몇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생각해보면 그 장면은 너무나 비참했다. (그날은 바로 어버이날었다.)
당시 한의대생들은 수업거부, 등록거부, 제적불사를 외쳐가며 극한투쟁을 하고 있었지만, 학부모들은 그런 학생들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학생들이 데모하러 거리로 나가면 전경들 바로 앞에 어머니들이 섰다.

데모할때는 언제나 강의실에 잤다. 하지만 그날은 비에 쫄땅 젖어버려 자기가 곤란했다. 그래도 내일 다시 나가려면 잠은 자야겠기에, 대충 웃옷만 벗어서 책상에 던져 놓고 가운을 하나 꺼내 걸쳤다. 한기에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한 어머니가서 우리에게 말을 건넸는데

"여기 있는 우리 엄마들. 오늘 정말 큰일 했어. 오늘 청와대 가서 시위했거든."(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난 후 청와대 앞은 개방되었으나, 바로 이 날 한의대 학부모들의 기습시위로 인해 청와대 앞길은 다시 통제됐다.)

언제나 그랬다. 학생들 앞의 선두에는 학부모들이 계셨다. 95년 가을 조계사에서 한의대생 5백명이 단식투쟁을 할때도.... 조계사 앞에 겹겹이 쳐있는 백골과 전경의 원천봉쇄를 뚫을 때도.... 담요와 물, 소금까지 압수당해서 신문지 한장도 없이 조계사 처마밑에서 추위와 싸워가며 벌벌 떨때도....학생들 옆에는 항상 부모님들이 계셨다.

혹시라도 거리에서 학생들이 전경들과 충돌할때도 '우리 애들 다치면 안된다'며 전경과 학생이 대치하고 있는 틈으로 기어이 어머니들이 비집고 들어오셨다.

그날 새벽, 강의실에 어머니들이 웅크리고 자는 모습을 보니 거지가 따로없다는 생각만 들었다. 젠장할. 도대체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몸이 너무 피곤해서 옆 강의실로 가서 커텐을 주워 와서 대충 바닥에 깔고 몸을 뉘였다.
(커텐을 깔고 자는 것도 3년만이었다. 고3 때, 시험기간이면 학교에서 애들이랑 공부하고 새벽에 책상 붙여놓고 커튼을 이불삼아 자곤했었다. 허허,내가 대학 와서도 이렇게 커텐 덮고 잘 줄이야.)

몸이 너무 피곤해서 등을 바닥에 붙이자마자 그냥 잠에 푹 빠져들었다. 얼마쯤 잤을까? 갑자기 주위에서 인기척이 많이 나길래 일어나 시계를 보니 이제 겨우 새벽 4시 반인데 어머님들이 모두 일어나서 떠날 준비를 하고 계셨다. (에구에구, 난 겨우 한 시간 밖에 못 잤는데....더 누워 있을 수도 없고..-_-;;)

준비를 마친 어머니들이 난로가에 옹기종기 모여앉아서 서로 이야기를 했다.(5월달인데 난로를 피워야만했다.)

1. 이번에 가면 아예 차 앞에 드러눕자
2. 어제는 경찰서 끌려가서 형사가 조서 꾸미는데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그냥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다
3. 경찰서에 끌려갔던 일들
4. 유치장에서 있었던 일들

그 옆에 누워자는 게 너무 미안해서 일어났다. 옆예 계신 어느 어머니가 책상 위에 벗어둔 내 셔츠를 주워서 난로에 손수 말려주셨다.

결국 나는 강의실에 눕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앉아서 졸 수 밖에 없었다. -_-;;;;; 창 밖을 보니 어느새 먼동이 훤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비는 그쳤다. 비가 그쳤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기분은 좋았다. 비록 강의실은 싸늘하고 몸은 물먹은 휴지처럼 묵직했지만. (그 때 나의 유일한 소원은 '10분 간의 샤워와 2시간의 잠'이 전부였다. 아아...2시간만!)

새벽 5시 10분이 되자, 어머니들이 채비를 마치시고 모두 일어나셨다.
내가 꾸벅꾸벅 졸면서 책상에 앉아 있으니까 어느 어머님께서 돌아오셔서 내 옆에 장판을 깔아주시고, 담요도 무려 다섯장(!)이나 갖다 주시면서 나보고 좀 자라고 하셨다. 난 모기만한 소리로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후 그냥 뻗어버렸다. (아니, 몸이 땅바닥에 철퍼덕 붙어버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나도 모르게 잠에 스르륵 빠져들었다. 창밖엔 햇살이 간밤에 아무런 일도 없다는듯이 태연하게, 비참했던 어버이날 아침을 을 밝히고 있었다.

그날 아침 그렇게 새벽에 떠난 어머니들은 김양배 보건복지부장관의 집앞에 쳐들어가서 출근하려는 장관의 차를 저지시키고 항의시위를 한 후, 면담약속을 받아냈다고 한다.

(김양배라는 이름을 기억하시는가? 보건복지부 장관이었고, 불량배라는 별명으로 불러던 놈! 재직기간 동안 많은 일을 저지르고 물러났었지. 그 넘 지금 어디서 잘 쳐먹고 잘 살고 있겠지.)

어느덧 한약분쟁은 먼 과거의 일로 사라져 간다. 한의대 재학생들도 선배들에게 어렴풋이 듣기만 했지, 잘 알지는 못한다.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때 우리가 가졌던 열정과 울분도 어느덧 서서히 식어가겠지만, 그때 있었던 일을 잊을 수는 없다.

그날 밤새도록 비맞고 운동장을 뛰었던 그 친구들, 이제 모두 한의사가 되어 있겠지? 모두 그날이 기억은 날까. 1996년 5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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