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이야기

Essays 2003.08.03 15:00
         

  1.울릉도에는 모래라는 게 없다. 돌이 부서진 작고 검은 알갱이들이 바닷가에 깔려있을 뿐. 우리는 그것이 모래인줄만 알았다.
울릉국민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 끝난 즈음, 담임샘이 육지에 나가서 모래를 한컵 퍼오셨다.
"얘들아, 이것이 모래란다."
우아아아!!!
수업시간에 선생님 손에 들린 누런 모래. 보드라운 촉감. 우리는 태어나서 그때 모래를 처음 보았다. 충격적인 사건이었지.

2.울릉도에는 도둑이 없었다. 내가 육지에 나와서 가장 처음 충격을 받은 것은 집집마다 대문이 달려있다는 것. 그리고 대다수 집의 대문이 잠겨 있다는 사실이었다.
울릉도에서는 도동 외에는 대문이 달린 집이 거의 없으며, 도동에서도 대문을 잠그는 일은 없다. 내가 초등2학년때 울릉도 도동 잿만다(산등성이) 연립주택에서 도둑이 들었는데, 그때 그 도둑이 아마 구석기시대 이래로 울릉도에 출현한 최초의 도둑이었을 것이다. 도둑이 생겼다는 소식에 울릉도 전체가 떠들썩했으니까.

3.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울릉도에서 꽤 명석한 엘리트였던 것 같고, 어머니는 울릉도에서 부잣집 막내딸로 꽤 귀여움 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 직장 때문에 이리저리 많이 돌아다녔던 것 같다. 저동이라는 곳. 나는 초등1년때 저동에서 도동으로 통학을 하면서 국민학교를 다녔다. 점심은 언제나 짜파게티 비슷한 걸 해달라고 졸랐던 것 같다.
저동. 뱃넘들이 술마시고 행패부리고 칼부림나고...지저분한 항구다. 저동하면 더럽다는 이미지만 남아있다. 부둣가 공판장에서 능숙한 솜씨고 오징어 뱃때기를 가르는 아줌마들의 모습. 집집마다 대나무꼬지에 꽂혀 말려지는 오징어들. 저동에는 뱃넘들의 주활동무대였다. 술집도 많고 다방도 많고 몸파는 아가씨도 많고.
다만 저동의 촛대바위는 멋지다.

4. 할배집은 사동이었다. 사동 참 좋은 동네다. 울릉도에서 해수욕을 할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않은데 사동은 가장 큰 해변을 갖고 있었다. 지금은 항구공사로 인해 그 아름답던 해변이 모두 없어져버렸다. ㅠ.ㅠ 나는 이곳에서 약2년 반 살았는데 재미나게 지냈다. 할배집에서 살게 된 이유는, 이 시기에 우리 집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관련 기록일체를 모두 불태워서 정확한 사정을 알 수는 없지다.
아버지는 본토로 잡혀가시고, 어머니는 뒷바라지에, 그나마 있던 가산은 소진되고, 동생은 어머니따라 본토로. 나는 할배집에 맡겨졌다. (영화 '집으로'와 굉장히 흡사한 상황이었다. -_-;;;;;;;;)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우울한데, 나는 그때는 사촌누나들과 명랑하게 지냈던 것 같다. 학교가 도동이어서 사동에서도 통학을 했다.
사동까지 거리는 십리였는데 나는 자주 걸어다니곤 했다.
할매는 도시락을 싸주지 못했다. 30년전 아부지가 쓰던 노란 밴또(도시락)에 싸주던 무우채나물과 된장을 내가 싫어했다는 게 큰 이유였고. 그 돈 오백원을 갖고 울릉중학교 교문앞에 있는 분식집에 가서 밀가루 소세지가 박혀있는 작은 핫도그 두개를 사먹었다. 요새 돌이켜보면 내가 결식아동이었던것 같기도 하다. 하하 ^^; 하여튼 할배집에서 통학하면서 점심에 도시락을 먹어본 기억은 없으니까. (내가 그렇게 불우하게 자랐던 적이 있었던가..-_-)

어느 소풍날, 3학년이었던 것 같다. 태연누나(사촌)랑 순연누나가 내 소풍가방(도시락이랑 과자)를 준비했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내가 스스로 준비(?)해서 소풍을 갔다.
할매가 싸준 도시락, 과자 한봉다리, 낡고 작고 지저분한 배낭

아직도 생각난다. 다른 아이들의 이쁜 소풍가방에서 나온 맛진 김밥을 보면서 나도 허름한 배낭에서 도시락을 꺼냈는데, 노란 밴또를 여니 흰밥 위의 계란후라이 하나가 눌려있었다. 아, 씨... 되게 쪽팔렸다.

운동회날의 기억도 있다.
모두 부모님들이 왔지만, 우리집은 할매가 읍내까지 버스 타고 와서 운동회에 왔다. 아마 소풍때 내가 김밥 때문에 투정을 많이 부렸던 것 같다. 이번엔 김밥을 싸서 오셨단다. 역시 노란 밴또.

벤또를 열어보니 모양은 김밥이었다. 맨밥에 깨가 조금 뿌려져있고, 크기는 애들 주먹만하게 컸다. 직경이 10센티 정도 되는 밥이 김에 싸여있었다. 아마 울릉도에서 가장 큰 김밥이었을거다.
소세지,시금치,오뎅,계란은 없었고, 오로지 맨밥에 약간의 깨가 뿌려져있을뿐,(정말 김+밥이었다.) 나는 또 어린맘에 무지하게 속상했지만, 지나가던 선생님이 주신 환타 한컵으로 목을 축이며 꾸역꾸역 그 김+밥을 다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매는 김밥이라는 걸 제대로 만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할배집 사동까지 가려면 산을 넘어가야하기 때문에 나는 요새도 산을 비교적 잘 탄다. 특히 산을 내려갈때, 나는 달려서 내려가곤 했었는데, 대학교 때 경주남산에 엠티간적 있는데 그때도 나는 달려서 내려왔다. -_-

5. 어느 눈많이 오는 겨울, 버스를 타고 잿만디를 넘어가다가 버스가 눈에 묻혔다. 우리는 모두 내려서 버스를 밀어야만 했다. ㅠ.ㅠ 버스를 밀어본적 있으신지 모르지만, 굉장히 힘들다.
어느날은 걸어서 잿만디를 넘어서 사동으로 가는데 택시를 타고 가던 아저씨들이 눈밭에 빠졌다. 아저씨들은 택시에서 내려서 택시를 들었다. 포니여서 가능함. 길옆에 택시를 사뿐히 내려놓고 걸어서 집에 갔다.

눈눈눈.
정말 지겹게 마니 온다. 겨울,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무릎까지 쌓인 눈을 치워야했다. 옆집으로 가는 통로를 만들어야하니까. 한겨울에도 눈치고 나면 땀이 쭈르르륵 난다.
눈사람. 은연(사촌누나)이와 나는 눈사람을 자주 만들었다. 우리는 한번 만들었다하면 온동네 밭을 다 돌아다니면서 엄청나게 큰 놈으로 만들었다. 한덩어리 직경 약 2미터. 나중에는 결국 굴리지도 못하고 길바닥에 버리고...어른들은 어떤 놈들이 눈으로 길을 막아놨냐고 뭐라그러고.

비료포대. 맨날 이거 타고 놀았다. 하루는 타다가 절벽에 떨어지적도 있었다. 다행히 대나무숲에 떨어져서 목숨 부지함.

6.할배집에서는 토끼,돼지를 키웠다. 토끼는 옆집 홍상(홍씨)댁 고네기(고양이)가 물어갔다. 얼마나 슬펐는지 은연이랑 토끼를 삽으로 떠서 고이 묻어줬다.
키우던 돼지(시커먼털난 토종돼지)는 나중에 너무 늙어서 중량이 점점 줄어가던차 할배가 팔아버렸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텅 비어버린 돼지우리를 보고 어찌나 서운하던지..은연이랑 나랑 아카시아 뜯어서 많이 먹였는데.

7.일본말. 울릉도에는 아직 일본말이 아주 많다. 김씨는 김상, 홍씨는 홍상, 오징어는 이까. 손톱깍기는 스메기리 등등 일본말이 판을 치는 동네다.

8.여름의 울릉도. 우리는 매일 연변(해변)에 나가서 물놀이를 했다. 나는 어릴때라 물을 무서워해서 주로 손짚고 헤엄치기를 하고 놀았다. 사촌누나 은연,순연은 물개수준이었다. 우리는 고디를 가득 따서 매일 삶아먹었다. 참 맛지다!~ 불행히도 손짚고 헤엄치기 작전으로는 고디가 사는 깊이까지 들어갈 수가 없어서 나는 주로 구경만 했다.
할배집은 사동 신리에 있는데 신리에는 샘이 두개 있었다. 그중에 아랫샘의 물은 유난히 시원했는데, 우리는 여기에서 물을 길어다가 미숫가루를 태워먹곤 했다.

9.나무타기. 어릴때는 나무타기도 즐겨했다. 할배집 옆에는 20미터 정도되는 나무가 있었는데, 하루는 할배가 술먹고 와서 그 옆에 포도나무를 잘라버리겠다고 해서 내가 20미터 나무위에 올라가서 농성을 한적도 있다.
결국 할배는 청포도나무를 잘랐다. 이유는 우리가 포도가 익기전에 다 따먹어버렸다는 거였는데...쩝. 내가 올라가서 농성을 하던 훗날 누군가에 의해 나무도 잘려버렸다.
할배는 소주 좋아해서 맨날 사동 1동에서 술먹고 2동 길가에 누워서 잤다. 동네아저씨가 '너네 할배 2동에 자더라.'하면 맹그이히야(사촌 이명근)가 리아카 끌고가서 할배를 태워오곤 했다.
할배집 앞에 무화과나무가 네그루 있었다. 무화과는 우리의 좋은 식량이었는데, 몇다래끼씩 따서 배터지게 먹고 남는건 도동에 나가서 팔았다. (다래끼=소쿠리)
나는 무화과나무도 잘 탔다. 아아, 나무를 타본지 어언 15년이 넘었군.

10. 겨울이 되기전에 은연이랑 산에가서 깔비(소나무낙엽)을 끌어모았다. 우리의 땔감. 깔비!! 소나무도 베고 깔비도 모으고 해서 우리는 겨울을 지냈다. 나는 비탈진 소나무밭을 능숙하게 헤집으며 깔비를 모았다.
울릉도는 왠만하면 다 비탈진 땅이다. 그래서 나의 다리는 왠만한 비탈길에서도 잘 다니도록 훈련되었다. -_-

11. 울릉도는 여름에도 선선하다. 밤에 은연이랑 가마떼기(가마니엮은멍석) 마당에 내놓고 별보면서 자곤했다. 밭으로 가는 길에 우리의 아지트가 있었는데, 동백나무들로 아담하게 둘러쳐진 곳이었다. 우리는 가마떼기를 갖다놓고 자주 놀았는데 거기 바위밑에서 고구마벌레가 나온 이후로 우리는 그 아지트를 폐쇄했다.

12. 남양이라는 곳에도 1년 살았다. 내가 살아본 곳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다. 지금도 물론 아름답다. 사자바위도 멋지고 그옆에 깎아놓은 절벽도 예술이지. 해수욕하기도 좋다. 낚시하기도 좋고. 저녁에 해빠지는 광경은 정말 멋지다. 나는 요즘도 해빠지는 모습을 즐기지만, 남양만큼 멋진 곳은 아직 없다.

13. 우리할매는 심장병이 있었던 것 같다. 계단을 잘 못 오른다. 울릉도에서 살면서 오르막을 못 오른다는 것은 굉장히 불편한 일이다. 거의 섬 전체가 오르막으로 돼있다. 할매는 내가 육지에 나오고 3년 있다가 돌아가셨다. 할매 얼굴이 어렴풋하게 기억이 잘 안 난다.

할매는 보건소에 다녔는데, 울릉도는 의료환경이 매우 열악하다. 나도 7살때 귀에서 고름나와서 울릉의원의 의사한테 가서 수술을 받았는데(산부인과 의사였음) 계속 재발해서 고름이 나왔다. 결국 포항 성모병원에 가서 한번의 수술로 끝냈지..
하여튼 우리 할매는 큰병원에 가서 진찰한번 못 받아보고 울릉도 보건소에 의지하다가 세상떴을 것이다.

나는 한의대생들이 무의촌가서 할매들한테 침놓는 연습하는거 졸라 안 좋아한다. 무더위에 공짜로 침을 놓아준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이 봉사한다고 씨부리는 인간들을 아주 미워한다. 그런 놈들 대개가 무의촌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놈들이고, 졸업하고 나면 무의촌에는 얼씬하지도 않는다. 온다고 해봐야 진료는커녕 후배들이랑 노닥거리 게 고작이다.


14.대학교 1학년 여름에 내 고향 울릉도에 들어간 적이 있다. 사실 포항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오면서 어느새 울릉도가 잊혀져갔는데, 대학에 들어와서 새내기때 애들이 고향 어디냐고 물어보길래, 울릉도라고 답했더니 그들도 신기해하고 나역시 신기했다.
내가 울릉도에 살았었구나.~~

울릉도에 9년만에 들어가서 무너져가는 할배집도 다시 가보고 할매산소에도 가보고 친지도 만나고 했는데....할매산소가 너무 작고 잡초가 많아서 묘비가 없었으면 못 찾을 뻔 했다.

다시 들어간 울릉도는 너무너무너무 심심하고 갑갑했다. 결국 며칠 있지도 못하고 나오고 말았는데. 나도 어느새 본토사람이 된걸까.? 나중에 돈 많이 벌게 되면 할배집 자리에다가 다시 집이나 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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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잠탱이 2003.08.03 15: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병성선배, 난 선배가 왜 그런 눈을 갖고 있는지,이제는 알것 같군요.나도 강원도 치악산 밑에서 유년을 보낸 경험이 있어서 선배글이 가슴으로 이해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