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오래 전 일이다. 많은 한의대생들이 기억하고 있을 사건 하나를 오늘 펼쳐놓으려 한다. 신촌로터리 점거사건.

1996년 6월 15일.(약사한약조제시험 무효화 투쟁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

"비상!!"

순간 경희대 한의대 강의실바닥에 아무렇게나 자고 있던 사수대 애들이 후다닥 뛰어서 밖으로 뛰어나갔다.(말이 사수대지 일반 한의대생과 똑같다. 교육이라고 해봐야 고작 이틀 동안 받았을 뿐. 더구나 우리가 한총련처럼 쇠파이프나 화염병을 쓰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맨몸에 때우는...)

본대로 분류된 학우들은 다른 강의실 바닥에 대충 누워서 쉬고 있었는데 누가 뛰어와서 외쳤다.

"여러분, 잠시 주목해주십시오. 지금 전경들이 학교안으로 침탈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모두 침착하게 4층으로 대피해 주십시오. 신속하게 움직여주십시오."

우리 모두 후다닥 일어나서 소지품을 약간 챙긴 후에 4층으로 향했다. 지나면서 사수대 강의실을 힐끗 보니 깔고자던 박스와 그들이 쓰던 수건, 옷가지들만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정말 급하게 달려나간 흔적들...

지하층을 지나 현관에 다다르니 이미 출입구 쪽에는 의자와 캐비넷으로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었다. 사람키보다 높게 쌓아둔 바리케이트를 비켜서 위층으로 올라갔더니 올라가는 각층마다 그런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었다.

"모두 커텐 치고 앉아주세요!!"
"거기 창문 바깥 쳐다보지 마세요!"
"정숙해주시고 여기 지시에 따라 움직여주세요!"

본대 아이들은 불안했다. 웅성거렸다.

1996년 6월 15일 새벽, 우리는 경희대 한의학관 4층 어느 강의실에 빽빽히 앉아 있었다. 전경들이 바로 후문 앞에 와 있고 언제 학교 안으로 들어올 지 모른다는 소식이 들리고. 우리의 신경은 온통 창밖으로 쏠려있었다. 커튼 사이로 얼굴을 내밀어 창밖을 살피는 아이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강의실에 소복히 쪼그리고 앉아서 소근소근 얘기를 주고 받았다.

"자! 정숙! 정숙!"
"지금 전경이 바로 후문 앞까지 와 있습니다. 지금 학교 침탈에 대해 학교측과 협상을 하고 있답니다. 모두 침착하시고 정숙해주십시오."
(당시 경찰이 학교에 들어오기 이해서는 사전에 학교당국과 협의가 필요했다.)

"화장실 갈때도 말하고 가시고, 절대로 이동하지 마십시오."
"각 학교 투쟁주체 분들은 1층에 모여주십시오."(그때는 무슨주체라고 부르는 게 유행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지만..)
"지도부와 각학교 간부님들은 이쪽 옆 강의실로 모여주십시오."

경찰이 학교와 협의를 하고 있다면 들어오는 건 시간문제다. 그 전날에 조선대도 침탈당했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한의대라고 예외일 수는 없는 상황.

아, 서울에서 아무 것도 못하고 이렇게 허무하게 연행될 것인가.

등을 바닥에 붙여보고 눈도 감아보았지만 친구의 농담까지 귀에 거슬렸다.

10분쯤 후에 중앙에서 나온 학우가 다시 들어왔다.

"여러분, 조용하시고 제 말만 들으십시오.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 듣지 마십시오. 만약에 전경이 학교로 들어와서 연행이 되더라도 절대로 전경에게 반항하지 마십시오. 그냥 그대로 앉아만 계십시오. 그리고 커튼 쪽에 가지 마시고 정숙해주십시오. 창문으로 바깥은 내다보지 마세요."

한 30분쯤 지나서 화장실 가는데 계단 옆에 친구가 벽에 기대어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야, 오늘 우리 어떻게 되냐? 경찰이 정말 들어올까? 여기 학교잖아."
"모르지 뭐. 오늘 우리가 김영삼이 화형식했으니까."(김영삼은 당시 대통령이었다.)
"아까 화형식 강행하면 경찰이 들어온다고 했다던데."

전경들이 침탈을 하려는 이유로 대는 것이 바로 김영삼 화형식이었다. 약사들의 부정 한약조제시험으로 복지부와 대치하던 전한련은 전선을 더욱 확대시켜, 당시 정권퇴진 운동으로 방향을 잡은듯 했다. 이미 판을 커질대로 커져버렸다. 우리의 구호는 한조시 무효에서 김영삼 퇴진으로 서서히 바뀌고 있었으니...

경찰의 침탈위협이 있기 직전 전한련은 결국 경희대 교문 앞에서 김영삼 화형식을 강행했다. 민족의학 말살하는 김영삼정권을 심판하자!는 구호가 들린 후 영삼 솜인형은 불살라졌다.

막 화형식이 시작되려 할 때 상임위 체포조가 경희대에 깔렸다는 정보가 들어 왔고, 만약 화형식을 강행하면 전경이 곧 침탈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화형식이 끝나고 학생들은 곧이어 있을 경찰의 침탈에 대비했다. 남학생들에게는 쇠파이프가 지급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쇠파이프를 들었다. 누굴 때리려고 든 것은 아니지만, 전경이 경찰봉으로 우리 아이들을 때린다면 나도 모른다. 이걸 휘두를지...말지. (근데 쇠파이프가 생각보다 꽤 무겁군...-_-;;)
김영삼 인형이 활활 불타오르는 것을 보며 학생들은 흥분했다.

다행히 집회 도중 침탈은 없었고, 집회는 무사히 끝났다. 우린 모두 강의실로 돌아와 짐정리하고 자려고 있었는데 전경들이 철수하지 않고 후문에 집결해 있다는 소식이 올라왔고, 사수대가 뛰어나가고 본대는 침탈을 대비해 한의대 4층으로 대피한 상태였다.

조금만 있으면 곤봉을 휘두르며 전경들이 맣게 올라오겠지. 우린 노예처럼 땅에 머리를 박은채 일렬로 끌려나갈 것이고, 밖에 꿇어앉혀지고, 잠시 후면 닭차가 와서 우리를 짐짝처럼 모두 태우고 서울시내 각 경찰서로 분산 수용하겠지.

긴장감.
강의실에는 뛰어 내릴만한 창문도 없고 계단도 하나 뿐이고. 있는 거라곤 현관에 쌓아놓은 엉성한 캐비넷과 강의실 의자더미 뿐.

한시간 쯤 지났을까. 경찰과 학교 측과의 협상이 결렬되고 전경들은 일단 철수하였다. 덕분에 우린 다시 지하강의실로 돌아가 잘 수 있었다.

전경들이 왔다는 소식에 자다가 뛰어나간 사수대는 전경들이 물러난 후에도 계속 교문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밤새도록 노래와 구호를 부르며.


첫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2.1996년 6월 16일 오전

경희대 안팎에 전경들이 짝 깔렸다고 한다. 몇 천명이 왔는지 모른다고 한다. 우린 고작 수백명인데.

출정식을 마치고 본대는 정문으로 향했다. 전경방패의 대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페퍼포그도 두 대나 대기하고 있었고 주차표를 받는 박스도 지게차에 의해 철거되었다. 먼저 우리쪽 사수대가 나가서 몸으로 으샤으샤 밀어댔다. 조금 밖으로 경찰들이 밀리는가 싶더니 곧 밀려들어왔다.

잠시 함성과 구호를 지른 후, 본대는 후문쪽으로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줄을 맞춰 뛰었다.

"사수! 한의학! 타도! 복지부!" (그때 우리가 구보할 때는 언제나 이렇게 외치고 다녔다.)

후문에도 역시 전경들이 빽빽히 막고 있었다. 경희대 후문은 내리막이 심하기 때문에 위에서 학생들이 밀고 내려오면 바로 옆에 외대도 있고 골목도 많아서 시내로 진입하기 수월했다.

사수대가 먼저 달려내려갔다. 우린 어깨동무를 하고 함성을 질르며 달렸고, 전경들의 방패벽에 몸을 던졌다.
전경들은 화답이라도 하듯, 엄청난 양의 칙칙이를 학생들 얼굴을 향해 발사했다. 불 난 것처럼 자욱한 가루가 피어 올랐다. 화창한 봄날!!! 칙칙이 가루가 공중으로 마구 흩날렸다. 뽀얀 칙칙이 속에서 사수대는 얼마간 방패를 밀어보며 버티다가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사수대가 뒤로 빠지고나서 학생회 선배가 와서 우리 학교가 칠 차례라고 했다.
'아, 왜 하필 우리 학교란 말인가. 맨날 우리학교다.-_-;;;

당시 한총련에는 남총련이 있었다.(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전한련 의장은 가끔 농담처럼 동한련이 바로 전한련의 남총련이라고 하곤 했다.(동한련이란 동쪽 한의대 3곳, 경산,동국,동의대를 지칭함.)

사수대는 칙칙이를 너무 맞았기 때문에 잠시 옆으로 빠져서 쉬고 본대에 있던 동국대 남학생들 모두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4열 횡대로 서서 앞 사람의 어깨를 짚었다. 작전은 간단했다. 신호가 떨어지면 전경벽을 향해 돌진한다.
그리고 모두 가속력을 바탕으로 재빨리 스크럼을 짠 후 전경들을 밀어내는 것이다.
전경들은 한번 뒤로 밀리기 시작하면 주체할 수 없이 밀리기 때문에 사수대가 이렇게 터준 공간으로 본대 학우들이 따라 들어오기만 하면 쉽게 시내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일단 외대까지만 밀고 내려가면 되는 거였다.

잠시 대기하고 있다가 명령이 떨어졌다.

뛰어!!!!


전속력으로 뛰었다. 전속력으로 뛰다보니 앞 뒤 사람과 거리가 벌어질 수 밖에 없었고, 후문을 돌아 내리막길을 달려 나가는데 우리의 모습은 그야말로 완전 오합지졸이었다. 우리 앞에 전경들이 빽빽하게 방패를 들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잘 짜여진 대열에 비해 학생들의 대오는 이미 흐트러졌다. 왼쪽으로 애들이 우르르 뛰었다.

푸시시시식! 푸시시시식! 푸시시시식!
여기저기 방패가 벌어지면서 한꺼번에 칙칙이가 터졌다.

흰 가루가 눈 앞을 자욱하게 뒤덮었다. 칙칙이를 맞는 순간, 전속력으로 달려나가던 내 발걸음은 그 자리에서 딱 멈춰버렸다. 앞에 몇명만 으샤으샤 밀고 있었고 그들의 머리 위로 사정없이 곤봉들이 날아오고 학생들 머리를 마구 구타하고 있었다. 한쪽의 전경들은 방패를 들어 학생들 머리를 내려 찍어댔다. 정말 사람을 죽이려는 기세였다. 방패에 찍히면 죽을 것 같았다.
칙칙이를 뿌리고, 곤봉으로 내려치고 방패로 찍어대는 경찰의 모습을 보고 살기가 느껴졌다.
대오가 흐트러진 학생들은 더이상 저항할 수 없었고 피범벅이 된 얼굴로 외쳤다.

"야! 때리지 마!!! 때리지 마!!! 때리지 마!!!"

그렇게 실컷 두들겨 맞고 우리는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후퇴명령이 떨어지고, 교내로 들어오니, 그제서야 얼굴이 화끈거리고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콧물도 덩달아서...주르르)

눈을 뜰 수 없었다. 선배가 와서 내 눈에다 담배연기를 불어대었다. 담배연기를 한참 쏘이고나니 그나마 통증이 덜했다. (태어나서 담배연기가 그렇게 고마웠던 적은 그 때가 처음이었던듯..)
우리는 얼굴이 너무 따가워서 치약을 서로의 얼굴에 듬성듬성 발라주었다. -_-;;

아까 동국대 본대가 돌진할 때, 맨 앞에서 칙칙이를 얼굴에 정통으로 맞은 후배는 그 후 오랫 동안 화상 때문에 고통받았다.

후문을 뚫지 못하고 우리는 다시 이동했다. 정문으로 가는 척 하다가 옆으로 빠져 미술대 쪽으로 올라갔다. 앞에서 1열로 맞춰 들키지 않게 조용히 뛰라고 했다.(사실 아까 후문에서 너무 힘을 많이 빼서 말할 힘조차 없었음.)
정문과 후문을 모두 포기하고 구릉을 올라 과기원 쪽 골목으로 몰래 나가자는 것이 계획이었다.

우리는 헉헉거리며 계속 산길을 뛰어 올라갔다. 입에서는 단내가 나고 얼굴에 묻은 치약덩어리들은 차츰 말라붙으면서 따가워지기 시작했다.

어느 건물 앞에 모두 집결했다. 땅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물 한 모금 먹고 싶었다. 아까 칙칙이에 따갑던 얼굴은 어느새 아무렇지도 않았다.

산길을 계속 탔다. 몇명씩 조를 짜서 뛰고 멈추는 것을 반복했다. 우르르 뛰어가다가 모두 몸을 낮추고 앉았다. 그리고 뒤 조가 뛰어오면 다시 앞으로 뛰고해서 우리는 최대한 발각되지 않게 움직였다.
과기원 뒤 골목까지 도착하는 것은 성공했다. 본대의 학우 전원이 과기원 골목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과기원만 지나면 큰 거리가 나온다. 그러면 우리는 시위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과기원 뒤까지 진입하고 나서 아무데도 갈 수가 없었다. 두시간 동안 우리는 그냥 앉아만 있었다. 앞 쪽 과기원 정문에 이미 백골 몇중대, 전경 몇중대, 닭차 몇대가 와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그리고 뒤쪽 경희국민학교 쪽에도 전경들이 몇중대, 백골 몇중대가 와 있다고 했다. 우린 앞으로도 갈 수 없고 뒤로도 갈 수 없이 완전히 포위되었다.

우리는 무작정 그냥 앉아 있었다. 중간에 과기원 식당 아주머니가 물을 양동이째로 퍼서 가져다주었다. 너무 고마웠다. 우리는 계속 앉아 있었다. 꼼짝할 수가 없었다.

경찰 말로는 학교로 다시 들어가는 것도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 우리보고 어쩌라는거야? 우리는 학교로 돌아가는 것조차 막는다면 우린 과기원쪽으로 돌파하는 수 밖에 없다고 통보했고 결국 경찰은 학교로 후퇴하는 길을 터주었다. 우리는 모두 2열로 대오를 맞추고 걸어들어갔다.(학교에서 탈출할 때는 죽을 힘을 다해 뛰었건만. 다시 돌아가자니 허탈했다.)

결국 우린 이틀동안 완전히 학교 안에 고립되었다. 범민족 대회도 이 정도로 원천봉쇄하지 않는데...

우리는 대책을 논의했다. 그냥 학교에서 점거농성에 돌입하자. 그리고 무기한 단식으로 지방에 있는 애들까지 다 끌어모으자. 그러면 봉쇄를 풀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고 다른 의견으로는 내일 한번 더 포위망을 뚫어보자. 삼사오오로 지어 나간다면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모처에서 다시 집결하자.
여러 의견들이 나왔고, 마지막 결정은 그날밤 지도부가 하기로 했다.


경희대에 고립된 채, 사흘째 날이 밝았다.
지도부의 결정이 나왔다. 강의실이 도청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전달사항은 칠판에 적어서 전달했다.

점거농성은 힘들고, 일단 포위망을 뚫기로 했단다. 그리고 1차 집결지는 1시 정각 신촌로터리이고 2차 집결지는 을지로이라고 한다. 신촌까지는 삼삼오오 각자 재주껏 경희대를 빠져나가서 일단 신촌에서 결합하여 그 때부터 같이 움직인다고 했다.

일단 조를 짰다. 서울지리를 잘 아는 아이와 지방출신 아이를 잘 섞어서 조를 짰다. 그리고 시간 간격을 두고 가방은 전부 놔두고 자연스러운 옷차림으로 갈아입고 빠져나가기로 했다. 우선 확보된 루트는 의대건물 뒤 어느 가정집으로 통하는 길과 의료원 지하로 나가는 길이었다.

나는 의료원쪽으로 향했다. 중간에 길을 걸어가는데 어느 여학우가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했고, 지시대로 따라갔다. 그런데 의료원 통로가 경찰에 의해 발각되어 봉쇄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는 할 수 없이 다른 길을 알아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냥 정문으로 돌파하자는 아이도 있었고, 정문은 검문이 심하니 다른 길을 알아보자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떤 애들은 우유배달차 냉장칸에 얻어탔고, 누구는 식당에 배달하러 온 냉동차 짐칸에 우르르 타기도 해서 빠져나갔다.

나는 조에서 빠졌다. 우리 조에서는 나혼자 삭발한 상태였기 때문에 너무 눈에 잘 띄어서 결국 같은 조 아이들을 내보내기 위해서는 내가 조에서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정문에서 검문을 하던 경찰이 삭발한 낌새가 있으면 모두 한의대생으로 간주하고 연행하고 있었다. 한의사들이 무지하게 삭발을 많이했던 우울한 시절..

혼자 떨어져 나와 의대 건물 쪽으로 터벅터벅 이동했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었다.

운동장엔 축구를 하는 아저씨들이 신나게 놀고 있었다. 그들 옆을 지나 의대건물 뒤로 들어섰다. 주위를 둘러보니 길을 걷는 사람들 중에 한의대생이라는 표가 나는 사람이 몇 있었다.

학교를 벗어나 골목길로 들어섰다. 앞에 무전기를 든 형사가 서 있었다. 잽싸게 옆으로 피해 다른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주택가를 지나 큰 길로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

며칠 간 지하철 역에서 검문을 하던 경찰들이 철수했다고 해서 지하철 역으로 갔다.후배들을 만났다. 인사만 하고 아는 척하지 않았다. 사전에 모른 척하기로 약속했었다. 언제 짭새들이 눈치채고 집결지까지 미행할 수도 있었으므로. 집결지가 들통나서 봉쇄되면 집회도 물건너가는 것이다.

후배들과 함께 이대역에서 내려 신촌로타리까지 걸었다. 시계를 보니 아직 시간은 충분했다.
신촌로타리 도착 시간. 12시 50분.

아직 10분이나 남았다. 그리 많은 수가 오지는 않은 것 같다. 로타리 근처 벤치에 앉아서 태연하게 기다렸다.


1시 정각이 되었지만, 아직 아무런 낌새나 신호가 없었다.

1시 5분이 되자 누군가가 지하철 역에서 뛰어 나왔다. 그는 시계를 보더니 차도로 뛰어들어 로타리 가운데로 달렸다. 그리고 주먹을 하늘로 뻗었다.

신호다. 우리는 일제히 차도로 뛰어달려 들었다. 지나던 버스와 차량들이 모두 급제동을 하고 지하철역으로부터 동시에 학생들 수백명이 뛰어나왔다.

도로점거는 참으로 흥미진진한 일이다.
로타리 주위의 지하철통로에서 학생들은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는 로터리 중앙을 점거하고 구호에 맞춰 성공을 축하하는 박수를 쳤다.

시간이 갈수록 로터리에 올라온 학생들 수는 점점 늘어났고 우리는 긴 동그라미 띠를 만들어 로터리를 서서히 막기 시작했다.
몇분 지나지 않아 그 넓은 로터리를 완전히 인간띠로 봉쇄했다. 우리는 노래를 불렀고, 구호를 외쳤다.
믿기지가 않았다! 아시겠지만, 신촌로타리 꽤 크다. 그 넓은 로터리를 완전히 막았다. 가슴이 찡했다. 교통경찰들은 연신 호루라기를 불러대며 차들을 로타리 밖으로 유턴시키고 있었다. 아무도 우리를 막지 못했다.

그렇게 한 십여분 간 우리는 시위를 가졌다.

"전경이다!"

누군가 전경차를 발견했다. 곧 우리는 지하철역 쪽으로 모두 뛰었다. 우르르 뛰어들어갔다. 정말 눈깜짝할 사이에 그 많은 학생들이 지하철 역으로 들어갔다. 후에 로터리에 남은 선배 얘기로는 우리가 들어가자 마자 바로 전경들의 닭차가 사방에서 도착해서 로터리 중앙에 전경들을 좌악 풀어놓았다고 한다. 그 땐 이미 우리는 지하철 역으로 모두 피신을 한 뒤였다. 우리가 로터리를 막는 바람에 차가 너무 막혀 전경들의 출동이 늦어졌다고 했다.

지하철 역으로 들어온 후 우리는 울타리를 마구 뛰어넘어 들어갔다. 우린 모두 지하철 표를 갖고 있었으나 개찰할 시간이 없었다. 사진기자들은 울타리를 뛰어넘는 우리들을 향해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우린 지하철을 타고 다시 이동했다. 그 때 후배들과 한 모금씩 돌려먹은 콜라 한잔은 정말 달콤..^^ 전경은 지하철에 못 들어오기 때문에 우리는 지하에서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을지로역에 내려서 다시 울타리를 뛰어넘고 이리저리 뛰는데, 역무원 아저씨가 오더니 울타리를 개방해 놓을테니 위험하게 뛰어넘지 말라고 했다. 우린 그 말에 모두 박수를 쳤고, 역으로 올라가보니 울타리가 진짜 개방되어 있었다. 우린 대열을 맞 추어 모두 역 밖으로 뛰었나갔다.

우리는 신촌에서 했던 것처럼 을지로 교차로로 뛰어들어 차도를 봉쇄했다. 그런데 미처 교차로를 봉쇄하기도 전에 이미 저 쪽에 전경들이 닭차에서 내려 대열을 정비하고 있었다. 우리가 구호를 제대로 외치기도 전에 이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일단 피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계속 구호를 외쳤다.

나는 거기서 모두 연행되는 게 우리 작전인 줄 알았다. 도로를 완전히 가로질러 서 일렬로 서 있었는데 그러다가 어느 한 쪽에서 뛰어!라는 소리가 들리고 우린 다시 지하철역으로 뛰었다.

우리가 뛰는 모습을 본 전경들도 방패를 질질 끌며 따라왔다. 우르르르 계단을 내려가서 역 구내로 들어갔다. 위에선 미처 피하지 못한 몇 학우가 연행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동국대 만해광장으로 가서 정리집회를 하고 마무리지었다. 정말 열심히 뛰어다닌 하루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때 그렇게 열심히 살았었나싶다.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텐데... 그때 같이 뛰어다니던 친구들은 모두 한의사가 되었고, 이제 그 신촌로타리를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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