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뼈 발라내기

Essays 2003.08.03 14:54
         

우리는 한약분쟁을 겪으며 전국 한의대가 수업거부를 하면서 모두 1년 유급을 당하였다. 대한민국 교육역사상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

수업에 복귀한후 다시 본과 1학년이 되었을때, 1997년 3월 20일 오후 3시, 필자는 4층 해부실습실에서 다리뼈를 공부하고 있었다. 조교가 들어와서 말했다.

"작년에 묻어둔 뼈를 찾으러 가는데, 몇 명이 필요합니다. 각 조마다 한명씩 뽑아주세요."
(뼈를 묻는 과정은 아래 해부실습실 청소하는 글 참조.)

이윽고 몇 명의 평판좋고 몸 튼튼한 남학생들이 뽑혔고, 모두 옥상으로 끌려갔다. 그 후 1시간 쯤 지나자 조교가 다시 실습실로 내려왔다.

"지금 사람이 조금 부족하니까, 젊은 사람들은 모두 갑시다."

결국 여자들이랑 나이 많은 아저씨들 빼고 모두 옥상으로 끌려갔다.

뚜벅뚜벅
시멘트 계단을 올라 옥상에 다다르니, 맑은 봄날의 햇살이 내리고 있었다. 시체를 손질하고 있는 아이들이 멀리 보였다.

시멘트 바닥엔 썩어가는 시커먼 시체들이 이리저리 놓여있고, 아이들은 모두 메스를 하나씩 들고 뼈에 붙은 썩은 살들을 열심히 발라내고 있었다.(으윽!) 반사적으로 얼굴이 찡그려졌지만 별수 없다! 조교로 부터 장갑과 메스를 하나 받아서 쪼그리고 앉아 뼈를 발라냈다.

맨처음 다리뼈를 몸통으로부터 부욱 부욱 뜯어내서 무릎부분을 잘라냈다. 작년 봄에 묻어둔 뼈들이었다. 시체의 썩다만 다리의 모습. 이걸 뭐랄까. 시체같지 않고 나뭇가지에 붙은 가죽처럼 생겼다. 거무티티한 근육과 바싹 마른 피부가 뼈에 딱딱하게 붙어있었다. 그 속엔 썩다만 살덩이가 물컹물컹했다.

뿌지지직, 뿌지직~

여기저기서 살점과 피부가 뜯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냄새도 났다. 살썩은 냄새.

다리뼈를 뜯어내고 발목부분을 잘라내고나서, 팔 뼈를 몸통으로부터 뜯어냈다. 뿌지직. 관절부분이 떨어지면서 파편(?)이 조금 튀었다. 뜯어내고 살점과 피부를 벗겨낸 뼈들은 소쿠리에 수북히 담았다.

조교는 다른 시체의 목부분을 잘랐는데, 아틀라스(목뼈1번)과 악식스 (목뼈2번) 사이를 정확하게 갈랐다.(으힉!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우리를 모두 불러서 시범을 보여주었고, 아이들은 모두 다른 시체들의 목을 능숙하게 잘랐다. 모두 아무생각이 없이 묵묵히 일만 했다. 가끔 농담도 하긴 했다.

전재가위로 피부와 근육을 잘라내고, 겸자가위를 이용해서 살점을 뜯어내고, 마지막으로 메스를 이용해 뼈들을 발라냈다.

보통 이런 작업을 하는데는 조금 덜 썩은 시체보다 완전히 썩은 시체가 마음에 든다(?). 덜 썩으면 얼굴 윤곽이 그대로 있고, 살점들도 많아서 뜯어내기가 힘들고 흉칙하다. 하지만 완전히 썩어서 해골만 있으면 별로 무섭지도 않고 뼈 발라내는 데도 편하다. 사람 모습이 남아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해골이 확실히 덜 무섭다. (한번 해보시면 알것임.)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어느 정도 작업이 모두 끝나고 소쿠리엔 뼈들이 가득가득 담겨 있었다. 시체썩은 기름으로 찐득찐득한 장갑을 벗어버리고,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실습실로 돌아왔다. 교수님이 수고했다고 술이나 한잔씩 마시러 가자고 했다. 해부학교실에선 늘 아이들을 동원해서 힘든 일 시키고 난 후 술로 달래주곤 한다. 벌써 몇번째냐. 작년엔 해부실습실 청소까지 하고 올해는 시체 뼈도 우리학년이 다 발라내고.

이 글을 읽고 나서 한의대 오면 시체 뼈발라내는 줄 아시는 분 있을지도 모르나, 이것은 우리 학년 남학생들만 자발적으로 참가한 아주 특별한 경우임을 밝힌다.

이런 일들을 겪은 지 얼마 후의 일이다.
포항공대에 놀러가서 거기 카페테리아에서 아는 동생이랑 같이 닭다리를 먹는데, 나도 모르게 살을 발라내면서 말했다.

'이건 혈관이구, 이게 신경이야.'
'우와,여기 이거 인대봐라.'
'어 여기 정맥이다.'
'다른 관절도 보여주까?' 으흐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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