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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임상의 중심에는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환자는 의사가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놀랄 만큼 정확하게 인식한다. 그 인식은 대부분 비언어적 행위, 얼굴 표정, 자세, 몸짓, 손짓, 거리감 등으로 파악된다.

의사가 환자에게 귀기울이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싶어한다는 사실을 암시하여 환자를 대화 속으로 끌어들여라. 멘트로는 "아.." "네"  " 그렇군요 그래서요" 등등이 중요하다.

의사가 던지는 질문이 환자의 답변방식을 결정한다. 가야할 방향이 확실하면 폐쇄형 질문을... 그런 확신이 없다면 폐쇄형은 악영향을 끼친다.

의사는 환자의 감정에 반응해야 한다. 두려움과 불안함. 수치심에 공감하여 환자가 안도감을 갖도록 해야한다.
의사가 해야할 일은 대화를 이끌어내는 것읻.

임상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진단의 알고리즘, 근거중심의학이 아니라 언어다.
물론 한의는 알고리즘부터 확보해야하는 단계이긴 하지만...
탁월한 임상의는 언어와 감정에 대해 민감하다. 그래야 한다.

의사는 신뢰와 호감을 제공하여 환자를 순응하게 하는게 중요하다. 의사흉내를 그만두고 진짜 의사가 되어라. 환자를 순응시켜라. 병원문턱을 넘어온 이상 그는 아군이다. 구슬리고 달래고 이끌어라.
병이 아니라 사람을 돌보아라

의료보험 프로그램에 입력하느라 환자와 눈 마주치는 것을 등한시 하지마라. 전동배드 옆에 키높은 노트북선반을 놓고 환자와 45도 각도로 1미터 이내에서 대화를 주고 받으라.

'과연 이 환자에게서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라고 항상 자문하라.

"이 환자가 나에게 있는 단 한명 뿐인 환자라고 생각하며 진료해라" 환자보는 시간에는 오직 그 환자에게만 집중해라. 전쟁이 나건 주식이 폭락하건간에.

진단을 내리려면 정보가 필요하고
정보를 얻으려면 친밀감이 필요하다. 의사의 경쟁력은 곧 소통의 기술이다.

어떤 심장전문의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모두 기록한 일지를 늘 지니고 다녔다가 어려운 환자를 만나면 그 수첩을 뒤지곤 했다. 한의사들은 치험례를 발표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경우는 많지만, 처절하게 실패한 경우는 곧 잊어버린다. 부의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욱 강해진다. 잘나은 케이스만 이야기한다. 반대로 빈의들은 실패, 좌절감에 집착한다. 둘다 옳지 않다.

진단 관성을 조심하라. 머릿속에 한가지 진단이 고정되면 증거가 부족해도 관성적으로 가는 경우가 있다 .특히 맥진에서! 익숙하면 결론을 쉽게 내리고 대안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익숙함과의 결별은 의사의 중요한 덕목이다.
말발굽소리가 들리면 말이라고 생각해야지. 얼룩말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의사 마음속에 원형에 환자의 증상을 맞추려고 하지마라.

생물학이나 의학도 쉽고 분명한 언어로 설명하면 일반인이 이해하지 못할 만큼 어려운 건 없다. -린다 루이스, 컬럼비아 의대


의학용어에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겁내지 마라. 공인되지 않은 권위다. 까놓고 보면 어이없는 경우도 많다.

외과의의 가장 큰 차이는 기술이나 테크닉이나 기구가 아니라 환자의 문제를 개념화하고 수술로(한의사는 침과 약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을 파악하는 능력이라고. 외과의에게 손보다 머리가 더 중요하다는. 한의사도 마찬가지다.

요통환자들을 진단하는 것이 치료에 거의 도움이 안된다. 염좌나 좌상 이런 모호한 진단은 그나마도 중요하지 않다. 상세불명의 아래허리통증. 이건 진단한 게 아니다. 그냥 허리가 아파요를 중언부언한 것이지.
급성요통의 90%는 아무 치료없이 2-7주내에 급속히 좋아진다. 급성 디스크탈출증은 6주가 지나면 80%가 회복된다. 특히 만성요통은 수술받아야할 이유가 더욱 모호해진다. 교과서에 척추수술을 꼭 받아야하는 환자는 3% 내외라고...
나머지 97%는?

이 책엔 온갖 숫자로 가득하다. 수치, 그레이드, 무슨군 등등
한의도 이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 국제예후분류법을 확립시키고 동양3국에서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IPSSEM (International Prognostic Scoring System of Estern Medicine) 오리엔트는 중동이라 이스턴으로 서서히 바꾸는게 좋을듯.
만약 우리가 어떤 환자를 IPSSEM으로 분류해서 혈허지수가 중간위험군으로 나오고 담음지수가 고위험군으로 나온다면 이사탕을 30일간 투약하고 관찰하는 것이 권장되어야 한다고 서로 한의사들끼리 '의사소통'을 해야하지 않을까.
이걸 왜 대학한방병원에서 만들지 않는지 이해가 안된다. ㅋㅋㅋ 먼저 규정하는 놈이 임자인데...

물론 이런 포괄적인 점수로 환자를 평가하는 것은 위험하다. 각종 분류와 알고리즘(사실 한의사의 진단도 이를 벗어나지 않는다)에 익숙해지면 환자 개개인이 특징을 간과하게 된다. 그런데 한의는 일단 개개인은 제쳐두고라도 보편타당한 알고리즘부터 확립하는 것이 급선무인 단계다.

숫자가 얼마나 무서운건지 예를 들어보자
직장암 환자가 있다. 항암을 받으면 사망률이 30% 감소한다고 치자. 당신이라면 받겠는가?

이걸 다시 바꿔서 말하면 이렇다, 총 100명의 직장암 환자가 화학요법 없이 5년이 지나면 90명이 살아남는다. 그런데 화학요법을 받으면 93명이 살아남는다.
죽는 사람이 10명에서 7명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어때? 항암을 받을 것인가? 숫자가 아니라 환자의 성격에 달린 문제다.
그리고 항암에대한 부작용에 대해서도 환자나 의사나 과대평가하고 있다.

개인이 항암을 이겨낼지 어떨지는 불확실하다. 일단 해보고 안되면 중단하자.
한약도 마찬가지다. 지레 겁먹고 주저한다면 악순환의 첫단추를 꿰는 일에 다름 아니다.
환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환자와 대화하고 견디지 못하거나 효과가 없으면 중단하면 된다.
그것이 바로 환자에게 진정으로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그것이 한약을 먹든 안 먹든간에) 환자들이 스스로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고 올바른 결정을 내린 후에 마음이 편안해지도록 만들어주어야 한다.
이런 것들은 통계나 분류법이나 논문을 넘어서는 작업이다.

의서의 한 내용이 한 개인의 치료에 어떤 식으로 기여하는지 그 과정을 천착해가야 한다. 저널, 의서, 교과서를 읽으며 연마해야 한다. 진료중에는 쉽지 않으므로 진료 후에 해야한다. 침착하고 깊게 고민하여 다음날 환자들에게 상세한 치료계획을 통보하도록 "이렇게 치료하자고..."

스스로 임상적 판단에 자신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때로 자신도 틀릴 수 있음을, 불확실성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홈런을 바라지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특히 의료분야에서는.


무슨 질환이든지 프로토콜과 로드맵없이 접근하는 의사가 되어서는 안된다. 숫자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되고.


<잘 된 진단으로 가는 길>
의사소통 문제. 환자가 충분히 상세하게 이야기하도록 한다.
'또 어떤 가능성이 있는가?'라고 되묻는다.

'뭔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부분은 없는가?'
'문제가 한가지 이상일 수 있는가?'
정확한 검진과 문진으로 중요 정보를 놓치는 경우를 방지한다.




환자에게 잘 모르겠다고 다른 병원에 가보라고 말하기란 얼마나어려운 일인가.


의사가 치료를 하는데 환자가 그 치료를 받아도 좋아지지 않는다. 그러면 새로운 방법을 쓰기 전에 환자와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그 치료법을 쓰는 이유와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상호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또 치료가 효과가 없는 비의학적인 사회적 조건에도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

결론: 치료와 관련해 저널, 교과서, 스승, 동료들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파트너는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던질 줄 아는 환자다. 환자가 할 수 없다면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는 연습을 해야한다. "이 맥이 과연 그것 맞나요?"

이 책은 태생적으로 양방 중심 서적이다. 이를테면 순두부에 고추장을 넣을건지 된장을 넣을건지 고민하는 책이라고나 할까. 양방의 프로토콜에 비해 한국 한의사는 일단 순두부도 제대로 못 만드는 수준인데, 이 책은 좀 과분한 면이 있다.


개방적으로 생각하는 한의사가 되자. 다정하고 침착하고 사려깊으면서도 실력있는 선수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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