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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을 공부할 때 가장 주의해야하는 것인 레이어야. 레이어. 포토샵 개념인데 위 그림을 보라고. 한층 한층을 다 레이어라고 불러.

이걸 위에서 보면 현재 컨템퍼러리한 관점에서 내려다보는 게 되는 거지.

 

양방이랑 한방이랑 크게 다른 게 있어. 한방은 전대 이론을 부정하고 새로운 이론으로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첨언을 해. 그래서 후대로 갈수록 점점 이론과 학설이 쌓여가. 그 중엔 쓰레기도 많지. 쓰레기들은 자연히 소멸돼.

본초도 처음엔 소박하게 출발하다가 장원소 같은 거물이 나타나면 그때부터 우린 죽는거야. 온갖 이론이 다 생겨.

 

자, 허준이 동의보감을 썼잖아. 1610년!

그걸 니가 읽어. 2014년!

그럼 너의 포지션이 어때야 하냐. 화석을 발굴하는 고고학자처럼 각 지층대를 꿰고 읽어야 해. 한줄 바뀌는데 500년의 갭이 있을 수 있어. 황기를 읽는다고 치자.

첫째줄에 증류본초가 나와. 1082년도 내용이야. 그 다음 줄에 탕액이 나와. 그럼 1289년이야. 한줄 내려왔는데 200년 뒤의 내용이야. 그 사이에 누가 있냐? 장원소가 있어. 장원소는 몇년? 1186이지. 이런 숫자는 반드시 다 외워야 조문 읽을 때 '맥락'을 놓치지 않을 수 있어.

그 다음 줄은 입문이야. 1575야. 그럼 또 300년이 지난 다음 이론이야. 그 사이에 누가 있냐. 설기랑 우단이 있어.

 

그런데 이런 '층차'를 고려하지 않고 조문을 무작빼기로 읽어대면 네 머리속엔 아무 것도 안 남아.

본초를 보다보면 귀경이론과 장부보사 이론은 후대 서적에서 주로 나와. 귀경?  구라아냐? 라고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왜 그 경락의 군약이라고 규정되었는지 '맥락'을 찾아서 받아들여야지.

 

허준의 동의보감은 결국 1610까지의 써머리야. 지금 400년 전이잖아. 그 다음 400년 간의 써머리를 아직도 못 만들었다는건 한국 한의학의 수치요. 치욕이다. 허준 이후에는 뭐 한의학이 정체돼 있었냐? 아니지 경악, 조헌가, 의학심오, 온열론, 온병조변, 의림개착까지 이어지는 근대 한의학 시리즈의 레이어가 수십장은 더 얹혀졌어야 하는데, 단 한장도 못 만들어냈어. 그리고 우리가 채워야할 마지막 레이어는 뭐가 되어야 해? 당연히 현대 약리학적인 내용과 논문으로 채워져야지.

 

이건 비단 동의보감 뿐 아니라, 모든 한의학 서적을 읽을 때 우리가 늘 고려해야하는 포지션이야.<bk>

 

 

근데 이런 반문을 하는 병신들이 있어.

 

"선배님, 우린 대부분 임상의가 되기 위해서 입학했지 의사학자가 되려고 하는게 아니잖아요."

 

그래, 그 말도 맞지. 역사를 공부하라는 게 아니야. 단지 [출처]를 확실히 하는 습관을 몸에 익히고, 의사학적 [맥락]을 놓치지 말고 의서를 보라는 거지. 허준이 왜 출처를 달았겠냐? 뭐 논문 쓸려고 달았겠냐? 더 궁금한 거는 원저를 찾아서 읽어보라는 배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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