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남운선에게

Essays 2016. 3. 1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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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블로그에 주인보다 자주 들어오던 남박.

오늘 김필건이 협회장에 재선됐다. 비록 너는 투표하지 못했지만, 아마 니가 살아있었더라면 김필건에게 한표 행사했을 거라고 본다. 사원총회 할 때도 돈 빌려서 회비내고 비케이를 도와야한다고 친구들에게 전화하던 니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영영 볼 수가 없구나.

 

작년 이맘 때였지.

내가 안동에 놀러가서 니 모시고 병산서원도 가고 풍산읍내도 구경하고 봉정사까지 갔다 왔지. 그날도 참 많이 낄낄거리고 얼마나 알맹이 없는 이야기를 많이 했냐. ㅎㅎㅎ 엘리쟈베스 여왕이 봉정사 와서 똥 안 누고 갔다는 이야기 하면서 미친 놈처럼 낄낄거렸는데, 그 날이 마지막날이라니.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니가 죽고 한달 동안 친구들이 많이 힘들어했다. 물론 니가 힘들었던 거에 비하면 비교할 수도 없겠지만.

그래서 친구들과 니랑 지냈던 이야기를 많이 했고 그걸 내가 작년 11월에 묶어서 정리했다. 367페이지 짜리 책을 탈고까지 마쳤다.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이거 내 아니면 우리 동기들 중에 아무도 못 했을거야. 거의 한달 동안 한의원은 내팽개치고 여기 매달려서 책만 썼던 것 같다. 니 덕분에 문장력 많이 늘었다. 임마. 비록 니가 부탁한 건 아니지만 니는 죽어서까지도 내한테 신세지네. ㅎㅎㅎ

근데 내가 생각해도 참 잘 쓴 것 같다. 읽다보면 웃기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니 평소에도 비케이가 니 친한 친구라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했잖아. 참 니는 복도 많은 놈이다.

 

위에 내가 그린 책표지도 봤지?

평소 니 캐리커처 한번도 안 그려줬는데, 막상 그리려고 하니까 20분만에 금방 완성됐다. 원래 못생긴 사람일수록 캐리커처 하기가 쉽다는 거 너도 잘 알고 있제?

 

표지도 완성됐고, 내용도 다 됐는데 출판은 하지 않기로 했다.

왜냐고? 이게 다 평소 니 성격 때문이다. 내한테 참 고맙지 않냐?

원고는 내 컴퓨터 속에 고이 잠들어 있다. 가끔 꺼내서 읽어본다. 그 책 안에는 우리가 스무살 때부터 20년간 같이 웃고 떠들던 기억이 가득 담겨 있다. 니 사진들도 수소문해서 어렵게 구해서 여러장 넣어놨다.

 

 

뭐 이런 사진들이다. 아마 니도 안 갖고 있는 희귀사진이 많을 꺼다. 이런 사진 모으는데는 전영일, 안수봉, 강기완, 강태곤이가 많이 도와줬다. 모두 공부 못했던 아이들이다.

 

니 책을 다 쓰고나서 내가 느낀 게 하나 있다.

사람이 회색 속에 묻혀 있다보면 그게 회색인지를 잘 몰라. 흰색에 딱 대보면 바로 회색인걸 알게 되지.

 

니가 살아온 모습에 내가 살아온 모습을 대비시키니까 의외로 내 인생이 좀 천박하다고 느껴졌다. 제기랄. 사실 나도 엄밀히 보면 참 깨끗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데 니한테 견주니까 상대적으로 천박함이 많이 보이더라. 그 전에는 이런 생각을 해본적이 없는데 말이다. 아, 자존심 상한다.

 

이번 협회장 선거도 이슈가 돈이었다. 우리가 인생 사는데 이 돈을 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잖아. 당연한 거다.

근데 우리가 돈을 벌어도 천박해지지는 말자.

돈을 못 벌어도 천박하게는 살지 말자.

돈  때문에 할 말 못하고 돈 앞에 비굴하게 살지 말자.

내가 처음 니에 대한 책을 쓰기 시작한 것도 아쉬움과 그리움 때문에 출발한 게 크지만 어떻게 보면 너처럼 경쟁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특이한 애를 좀 알려서 다른 사람들에게 "봐라! 이게 흰색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 욕심이지 머.

 

모든 디지털 카메라는 촬영하기 전에 화이트발란스를 맞춘다. 니는 무식해서 화이트발란스가 뭔 말인지 모르겠지만 쉽게 말하면 이런거다. 우리가 색을 인식할 때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 기준이 흰색이다. 그래서 카메라에게 이게 흰색이라고 강제로 인식시키는 게 화이트발란스 맞추는 작업이다. 그래야 나머지 색들이 잘 드러난다. 너는 나한테 화이트발란스 맞추는 기준 같은 친구야.

 

 

같이 졸업한 동기 중에 벌써 3명이나 죽었는데, 왜 하나같이 다 정의롭고 착하고 성실했던 사람들만 골라서 먼저 갔는지 알 수가 없네. 이상하게 니 죽은지 몇달이나 됐는데도 아침에 출근할라고 운전석에 앉으면 니 생각이 난다. 재하형말대로 이거 진짜 5년 가는거 아이가. 암울하다.<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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