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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부부싸움을 하고 출근하는 길에 현관앞에 놓여있는 재활용박스더미를 보고 발로 빵 차버리고 출근하는 사람이 있고, 그 박스를 고이 안고 버리고 출근하는 사람이 있다. 당신은 전자인가? 후자인가?

뻥 차버리면 속도 시원하고 현관에 박스들이 나뒹굴게 되고 곧 이어 아내가 그 장면을 보며 화가 나겠지? 생각만해도 통쾌한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의 '중요도'를 상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다.

덜 중요한 일 때문에 더 중요한 일을 망쳐서는 안된다. 전문용어로 '국한시키기'. 화가 나면 그 감정의 리미트를 정해두는 것이다. 고스톱에서 3만원 잃었다고 칼들고 와서 죽이면 안된다. 3만원과 나의 여생을 바꾸는 멍청한 짓이다.

중요한 일과 하찮은 일을 구분해서 대응하는 것. 하찮은 일에 중요한 에너지와 시간을 투입하지 않는 것. 매우 중요하다. 한마디로 말하면 씰데없는 걸로 싸우지말고 씰데없는 걸로 신경쓰지말고 씰데없는 짓 하지마라는 것. (특히 그것이 '돈'과 연결되어있을때 대부분 씰데없는 논쟁인 경우가 많다. 돈문제는 돈으로 해결하면 깔끔하다.)

커피 받아오면서 커피컵 홀더를 가져왔니 안 가져왔니 이런걸로 싸울필요가 없다. 빨대를 왜 작은걸 가져왔니? 냅킨은 왜 한장만 가져왔니? 여행와서 싸울 시간에 다시 갖고 오면 되는 것.

싸우기 전에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부터 검증해봐야한다.

아침에 라디오에 음악을 더 듣기 위해 직장 면접에 지각하는 것. 이런게 중요도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둘러싼 수많은 사안의 중요도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삶은 어떠한가?

 

제주도 가족여행을 갔는데 렌트카에서 문제가 생겼다. 내가 원래 예약했던 그랜져가 고장나서 스타렉스 12인승 밖에 차가 없다는 것이다. 

화가 난다

"에잇, 다 집어치워. 여행 안한다. 제주도 다시는 오나봐라."

펜션도 전화해서 취소하고 비행기표도 다시 끊어서 바로 집으로 돌아온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선을 넘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잘못은 렌터카가 했는데 피해는 엉뚱하게 가족들이 받았다. (본인 포함해서)

왜 이런 자학적인 행동이 일어나는가?

인간은 누구나 화가 날 수 있다. 화 뿐만 아니라 우울함, 슬픔까지 포함한 칠정은 적당해야지. '부적당한 화(너무 적거나 너무 많은)'는 일을 그르친다. 이 적당함의 미학을 맞추는게 어렵다. (젊을수록 익스트림한 것에 매력을 느끼거든)

요즘 대중매체에서 "하고싶은 말 하고, 니 감정 억누르지말고, 억울하면 반항하고 네가 하고싶은대로 맘껏 하고 살아라."라고 가르치는 사람은 있어도 "적당하게 해라. 화 내도 적당하게!"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말은 인기가 없거든.

선은 리미트다. 리미트가 없는 사람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리미트가 없는 사람을 멀리해라. 리미트가 중요하다.

보통 사람은 사춘기 이후부터 선을 넘기 시작한다. 사춘기 이전에 선을 넘으면 아부지한테 두들겨맞을 수도 있으니까.

사람은 물건이든 타인이든 통제하며 살아간다. 그 통제의 영역 안에는 '감정'도 들어간다. 내가 술을 먹다가 술 먹는 것을 멈출 수 없을 때 우리는 술이 사람을 잡아먹었다! 알콜중독이다!라고 표현한다. 술이 사람을 부리는 것이다. 술 사오라. 술 마셔라. 술의 명령을 인간이 받는다. 인간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선까지는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감정이 활화산처럼 폭발하면 그 감정이 사람을 부린다. 칼로 찔러라. 창문 열고 뛰어내려라. 감정의 노비가 되어 감정이 시키는대로 하다가 결국 스스로마저 불살라버린다.

중독도 그렇지만 (태어날때부터 알콜중독이나 분노조절장애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선을 넘어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살짝 넘어본다. 아무일이 일어나지 않자, 좀 더 크게 넘어본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 아이는 커서 대범한 선넘기의 달인이 된다. 선도 넘어본 놈이 넘는다. 이런 건 어릴때부터 은연 중의 집안 분위기로 장시간에 걸쳐 트레이닝되는 것이라서 학원같은데 가서 '선 안 넘는 법'을 배울 수도 없다. 본데 없이 자라면 선을 잘 넘는다.

선을 살짝 넘어봤는데 결과가 좋다? 그러면 매우 조심해야 한다. 나중에 큰 사고를 치기 때문이다.

 

위의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만약 부모님을 모시고 간 여행이라면? 부모님의 재산이 천억인데 아직 안 물려주셨다면? 선을 넘을 수 있었을까? 못 넘는다. 선 한번 넘다가 천억이 날라갈 수도 있는데?

선을 넘는다는 것은 '힘의 과시'이다. 권력다툼. 봐봐. 내가 넘는다. 아무도 뭐라고 못하지? 내가 이런 사람이얌마. (사춘기 소년 소녀들이 엄마 아부지한테 대드는 것도 사실은 권력다툼의 일종일 뿐이다. 아버지 저는 이번 여행 안 따라갑니다.!!)

불행히도 능력이 뛰어나고 가진게 많을수록 이런 식의 '과시의 필요성'은 줄어든다. 이미 다 알아주니까.

정년퇴직하고 갑자기 와이프에게 잔소리와 짜증이 많아지는 아저씨들이 있다. 회사 다닐때는 뭐라고 해도 다 받아줄 아랫사람들이 많았는데 갑자기 이 세상에 내 말 들을 사람이 와이프 한명으로 줄어버린 것이다. 비극이다.

 

살다보면 갈등이 생긴다. 갈등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가 된 영역에서 국한해서 문제를 풀 것인지 확전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직원 이연희가 환자응대를 잘못해서 난리가 났다. 환자가 환불한다고 하고 업장을 엎어놓고 갔다. 직원들 모두 불러모았다. 이연희, 서연숙, 김기연. 사실 연숙이랑 기연이는 영문도 모르고 불려왔다.

"야, 너희들 정신 똑바로 안 차려? 내일부터 매일 아침조회하고 간식타임 없고 월차 모두 반납이다."

징계는 경희에게만 일점사했어야하는데 확전을 감행. 기관총으로 모두 갈겨버렸다.

"원장님 저희는 뭘 잘못했는데요?"

"뭐? 지금 내가 말하는데 대들어? 너희들 내일부터 나오지마."

수류탄을 터트려버렸다.

 

그렇다면 가족 내에서 선은 어디까지인가?

우리가 가족이라 함은 부모, 자식, 부부로 이루어져있는데, 최대한 맥시멈으로 그어진 선은 부부까지이다. 부모와 자식까지 넘어가면 '선을 넘는 것'이다. 청소년기의 자녀를 앞에 두고 부부가 싸우면 그건 부부싸움이 아니고 가족싸움이 된다. 부부가 싸우고 다음날 시댁, 처가에 보고서를 올리면 그야말로 집안싸움이 된다. 그런건 부부싸움이 아니다. 싸우더라도 부모 자식의 바운더리까지 넘어가면 수습하는데 그만큼 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해진다. 하등 쓸데없는 짓을 벌인거다.

 

선을 넘으면 보통 자학, 자기파괴로 이어진다.

지나고 돌이켜보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던" 자학적인 행동들이 대부분이다.

칠정의 파도는 스스로를 집어삼킨다. 감정이 사람을 집어삼킨다. 감정이 사람을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조종한다. 인간이란 얼마나 어리석은가. 자신의 몸을 감정에 완전히 내줘버린다. 감정은 이때다싶어 마구 폭주한다. 누군가에게 보복을 하고 싶으면 정확하게 받은만큼만 보복해야 한다. 그 선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선을 넘지 않는 것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두가지다. 말로 넘는 것과 행동으로 넘는 것.

말로는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절대로 행동으로 넘어가선 안된다.

아침에 부부가 다퉜다. 서로 기분이 안 좋다치자.

신랑이 출근하려고 나가는데 현관에 재활용 쓰레기가 가득 있다. 오호, 이것봐라. "야, 쓰레기 좀 버려라. 너는 도대체 뭘 배워서 시집온거냐?" 이렇게 말로 선을 넘을 수도 있지만 내가 이거 버리나봐라. 나 이거 안 버려. 집안을 쓰레기장으로 만들어버릴테야. 그러면 [행동으로] 선을 넘는 것이다. 아침에 다툰것과 쓰레기더미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고. 출근은 출근이다.

아무리 명절 문제로 다투고 해도 행동으로 처가방문을 보이콧한다든지 행동을 실행하면 선을 넘는 것이다.

그 와이프도 마찬가지다. 아침에 화가나서 늘 싸주던 도시락을 안 싸줬다. 하지만 2시간 있다가 감정의 마리오네트를 끊어버리고 다시 도시락 싸서 퀵으로 보내줬다. 싸운건 싸운거고 밥은 먹어야하니까. 이처럼 적당한 선에서 다툼의 영역을 통제하는 것은 어른의 가장 기본 덕목이다. 이런 통제를 못하는 애들은 아무리 나이먹고 결혼하고 해도 '어린애'다.

아침에 싸웠어도(말로는 선을 넘었어도, 내가 느그 집에 가나봐라!!!하더라도) 저녁에 처가집 식사자리에 가면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듯이(행동으로는 선을 넘지 않는다) 하하호호 재밌게 놀 줄 알아야 어른이다.

말과 행동은 달라야한다. 말과 행동을 같이 하라고 가르치지만 틀렸어. 말과 행동은 달라야해.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라. 말은 넘어가더라도 뒤이어 따르는 행동이 절대 선을 넘지 않는 사람.

말로는 '으이구 저 화상이 또 그릇 안 씻었네.' 투덜거리면서 행동은 설겆이를 하고 있어야한다. 행동은 절대 선을 넘어선 안된다.

 

인생이란 강물을 타고 슬슬 내려가는 것이다.

아무 장애물 없이 급류나 폭포 없이 술술 타고 가서 마침내 80대 후반에 바다에 다다르면 인생의 여정은 끝난다. 하지만 모든 인생이 다 그처럼 평탄한 미시시피강이 되는건 아니다.  때론 폭포를 만날 때도 있고 때론 메마른 사막을 지나기도 한다.

인간이라는게 대단한 능력을 가진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할 수 있는게 그저 강물흐르는대로 쓸려내려가는 것 뿐이다. 태풍오면 창문닫고 조용히 지내고. 비오면 우산쓰고. 너무 많이 오면 떠내려가고. 물론 누가 좀 더 열심히 헤엄치냐에 따라 결과는 좀 다르지만.

어느날 갑자기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한다. 어? 난 안돼. 계속 만나야겠어. 강물을 거슬러서 떠나는 여자를 쫓아 헤엄치기 시작한다. 잘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잘 안된다. 거기 서!!

그냥 물 흐르는대로 가는게 순리다. 간다하면 보내주고. 어 그래 잘 가라. 인연이 아닌갑네. 팩트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포기하고 받아들여야할 대상이다. 물길을 거슬러서 뭔가를 억지로 이루는 것은 처음에는 뭔가 대단한 역경을 거쳐 이뤄진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댓가를 치른다.

순리를 거스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강물을 벗어나 선을 넘는 애들도 간혹 있다.

여자친구가 만나줄때까지 집 앞에 가서 기다리고 학교도 자퇴하고 자해소동도 벌이고 대부분 '자기파괴'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공부를 못하면 기술을 배운다.

돈이 없으면 돈을 벌러 나간다.

능력이 없으면 능력이 없음을 일단 인정하고 능력을 키운다.

머리가 나쁘면 성적이 낮은 대학에 들어간다.

몸이 약하면 체력이 중요한 직업을 갖지 않는다.

잘못을 햇으면 감옥에 간다.

돈을 빌렸으면 돈을 갚는다.

이런 건 모두 순리대로 사는 삶의 방식이다.

문제는 '역리'의 삶에서 나온다.

머리가 나쁜데 억지로 의대에 집어넣으려고 하니 증명서를 조작해야하고 기껏 집어넣었더니 all D를 받고 집안 망신을 시키고 부모까지 고초를 겪는다. 의대 가는 대신 미용을 배웠으면 모든 것이 술술 잘 풀렸을텐데.

돈이 없는데 뉴욕에 집을 사려고 하니 비정상적인 검은 돈을 받게 된다.

잘못을 저질렀는데 쪽팔리긴 싫고 감옥가기도 싫으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그냥 쪽팔릴 일이 있으면 쪽팔리면 되고 빵에 가야하면 빵에 갔다와야지. 그게 순리다.

 

 

적당하게. 라는 말은 인기가 없고, 순리대로라는 말은 꼰대처럼 들리고, 선을 넘지 않는 사람은 우유부단해보이고 약해보이기도 한다.

 

선을 넘을 때 누군가 너에게 박수를 쳐줄 수도 있다. 그 박수를 조심해라. 통쾌함은 짧고 수습은 길다.

 

나는솔로 16기 영숙을 보면 광수와 데이트를 할때 자리를 박차고 혼자 택시타고 가버린다. 자신의 파워를 그런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선을 넘는 생활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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