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귀찮을 일로 가득하다
밥먹고 똥싸고 자고 나가서 운전하고 일하고, 병원가고, 동사무소가고 은행가고 택배 보내고, 인터넷쇼핑하고, 장보고 전화받고 서류작성하고...
인간의 일상은 대부분이 귀찮을 일들로 가득하다. 귀찮은 일이란? 꼭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남이 해주면 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일들이다. 살다보면 귀찮은 일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게 생명체의 본질이다. 엔트로피의 법칙을 거스르며 생명체를 유지하는데 에너지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밥 안 먹고 살 수 있어? 잠 안 자고 생명체 유지가 돼?
인간의 삶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귀찮은 일들이다. 밥하고 설겆이하고 잠 자고 씻고... 이런 유지보수하는데 귀찮은 일을 제외하면 정작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은 얼마 안 된다. 그래서 한 틈이라도 더 확보하려고 배달음식을 시키고, 외식을 하고, 아파트청약을 하고(안 그러면 내가 집을 지어야한다) 비서와 운전기사를 고용하는 것이다. 최대한 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귀찮을 일이 산더미같이 쌓인 곳에서 최대한 틈새를 찾아내서 재미난 걸 찾아서 하는 게 인생이다. 그래서 몇년에 한번 있는 가족해외여행에 '전 안 갈께요.'라는 짓을 하면 안된다. 사춘기라도 그런 짓거리는 허용하면 안된다. 재미난 것들로 최대한 풍성하게 채워야 한다.
직업의 실체가 뭔지 아니? 귀찮을 일이야. 직업의 본질이 귀찮은 일이라구. 잊지 마라.
귀찮지 않은 일(예를 들면 노래 부르기, 게임하기, 술먹기, 여행가기, 골프치기, 춤추기)로 직업을 삼는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탑클라스라는 반증이다. 장삼이사는 귀찮은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벽돌나르기, 배달하기, 진료보기, 변호하기, 출근하기, 전화받기, 서류작성)
우리가 공부하고 운동하고 건강검진받고 하는 것도 결국에는 <나중에 덜 귀찮아지려고> <내 인생을 귀찮은 일만 하다가 다 보내버리는 참사>를 피하기 위해 하는 행위들이다.
1915년에 태어난 우리 할아버지는 혼자서 집도 짓고 농사도 하고 짚신도 새기고 새끼줄, 가마때기도 짜고 물고기도 잡고 구들장도 깔고 손주 장난감까지 직접 다 만들었다. 고단한 삶이었다. 휴가도 없고 휴일도 없다. 눈만 뜨면 뭔가를 해야만 일상이 유지되는 삶. 고치는 속도만큼 고장이 나는 자전거처럼.
인생에는 귀찮은 일이 가득한데 누군가가 해야하는데(어릴 때는 엄마 아빠가 대신 해준다) 아무도 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해야한다. 그래서 공부를 해야 하는 거다. 좀 덜 귀찮게 살기 위해, 귀찮은 일을 덜 하기 위해. 귀찮을 일로부터 인생을 해방시키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