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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생각을 하고 산다.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현실 속에 산다. 가끔 나의 생각이 나의 현실과 괴리되는 경우가 생긴다.

예를 들면 이런거다.

나는 서울대 갈 줄 알았고 믿고 있었는데 연세대를 가면 괴리가 생긴다. 스트레스 발생.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나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다. 나는 연대갈 성적이었는데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뿐이다. 사실 연세대 정도면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대 갈줄 알았다가 호산대를 가면 '망상'이라는 단계에 접어든다.

이런 현실과 이(망)상 사이의 괴리가 생기면 스트레스가 발생하고 스트레스는 오장육부를 고장낸다. 잠도 잘 안오고 밥맛도 없고 소화도 안되고 숨도 갑갑하고 정충이 생기기도 한다.

그 다음엔 어떻게 될까? 이(망)상은 점점 현실로 다가가서 들러붙는다. 오공본드처럼 갭이 없도록 단단하게 붙는다. "아, 내가 연대 갈 실력밖에 안되는구나! 내 실력이 요까지구나." 더이상 갭도 없고 스트레스도 없다.

이게 잘 안되면 이렇게 해본다. 직접 내 입으로 반복해서 말해본다. '나는 대학 떨어진 사람이다." 이걸 큰소리로 100번 반복해서 말한다. 그럼 조금 더 편안하게 현실이 받아들여진다. 나의 현실을 직접 내 입으로 말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그것도 엄청 고통스럽다.

내가 갑자기 화상으로 얼굴이 흉칙하게 변하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지만, 내가 못생긴 얼굴로 태어나서 50년을 그 얼굴로 살면 스트레스가 없다. 환갑잔치하면서 "아 너무 못생겨서 죽고싶다."라는 할매를 본 적이 있나?

대머리와 결혼한 새댁도 마찬가지다. 오늘도 대머리 내일도 대머리 모레도 대머리, 내년도 대머리, 내후년도 대머리... 이런 대머리는 결혼식날 스트레스가 폭발할만큼 크지만 그 뒤부터는 점점 줄다가 어느순간 신랑 머리털의 부재가 주는 스트레스는 사라진다. 변화가 없으면 스트레스도 없다.

원래는 이게 맞다. 이런식으로 흘러간다. 사시 붙을 줄 알았는데 10번 낙방하고나면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5년쯤 지나면 덤덤해진다. 첫사랑과 헤어지고나면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고 다리 풀리고 주저앉고 통곡하고 그러지만 두달 쯤 지나면 밥도 잘 먹고 놀러도 잘 다닌다.

 

살다보면 '이해'가 안되는 일이 일어난다. 이해가 안되는 사건, 이해가 안되는 가족, 이해가 안되는 동료, 부하, 친구

이해하려고 하지마라. 삶은 이해과목이 아니라 암기과목이다. 그냥 원래부터 그냥 그랬던 게 더 많다. 내가 오해한거지.

이해가 안 되는 대상이나 사건을 만나면 그냥 받아들여라.

 

간혹 특이한 경우가 생긴다.

이 스트레스받는 상황에서 자연의 법칙대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의 이(망)상이 서서히 현실을 받아들이고 들러붙는다기보다, 무언가 나의 포지티브한 행동을 통해 현실을 이(망)상 쪽으로 끌고 오는 경우이 있다. 나는 부산에서 한약을 제일 잘 쓰는 원장이라는 생각을 가졌는데 실제 현실을 약매출 순위가 859위 정도라면 '그래 내까짓게 무슨 한약이냐. 어차피 될놈 되고 안될놈은 나야 나.라고 나의 생각이 현실쪽으로 들러붙을때까지 시간만 죽이고 흘러가는 원장이 있는반면,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서 현실을 끌고 오는 놈들이 있다. 서울에 올라가서 강의 듣고 선배 찾아다니고, 전주에도 내려가고, 교수님도 찾아가고 미친개이처럼 돌아다닌다. 스트레스가 마치 로켓추진력처럼 현실을 변화시킨다.

나의 생각을 고쳐먹는건 쉽다. 시간이 해결해준다. 하지만 현실을 고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망)상과 현실의 갭은 결국 언젠가는 합쳐지기 마련이다. 다만 손뼉치듯이 갭이 줄어들면서 합쳐지는데 그 손뼉의 움직임은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다.

 

우리는 언제 어떤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추진력으로 변화시켜 현실을 이(망)상 쪽으로 당겨올 것인가?

먼저 그런 시도를 하기전에 한가지 중요한 점을 파악해야한다. 가역적인 상황인가? 아닌가?

10년 키우던 개가 갑자기 죽어버리면 그런 현실을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우리가 갖는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이런 비가역적인(이미 일어나버린 치명적인) 현실을 재빠르게 받아들이지 못함에서 일어난다.

비가역적이라는 말의 핵심은 그것이 '남이 일으킨 남에게 일어난 남의 문제'이다. 나의 문제가 아니면 내가 바꿀 수 없다. 국제유가, 원달러환율, 코로나의 확산, 삼성전자 주식의 급등, 대통령의 발언, 연예인의 음주운전. 이런 것들은 남의 문제이다. 내가 어떻게 해보고자시고 할 게 없다. 이런건 비가역적인 영역이다. 언터쳐블.

 

빠르게 판단해라. 나의 문제인가? 남의 문제인가? 비가역적인가? 여지가 있나 없나? 비가역적인 상황이 아닌 나의 문제라면? 추진력의 여지는 많이 남아 있다.

 

문제의 핵심은 갭이 줄어들 여지가 없는 경우 : 타인의 생각, 선거결과, 시험결과, 주식결과, 부동산가격, 세계경제 지표, 나의 키, 외모, 지능, 부모재력, 나의 고향, 나의 과거 실수들(이혼, 파산 등) 등등 내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현실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여야한다. 내 능력 밖의 일이다.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인가? 변화하지 않는 것인가?만 판단하면 된다.

내 키가 155라서 고민이에요. 155가 변할까? 안 변한다. 고민할 필요가 없다. 변할 수 있다면 고민해라. 변화시킬 수 없다면 그냥 둬라.

 

빨리 판단해.

바꾸거나, 받아들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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