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님 저는 수원시에 사는 중1 에르난데스입니다. 저희 엄마는 제가 초등학교 다닐때부터 선행학습을 심하게 시키셨어요. 지금은 저는 탈진상태입니다. 학원가는게 죽을만큼 싫고 학교도 가기 싫습니다. 제가 왜 공부를 해야 하나요? 너무 힘듭니다. 도와주세요.
-안녕 에르난데스. 참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군요. 우리는 모두 태어나서 죽지요? 그래서 사람의 인생에도 4계절이 있어요. 한 계절당 20년이라고 보면 돼요. 스무살까지는 봄이고 그 다음 40살까지 여름, 60살까지 가을이구요. 그 뒤로는 겨울이 쭉 이어집니다. 에르난데스는 지금 봄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네요.
우리가 봄에는 뭐해요? 밭갈고 모내기 준비를 하죠? 논에 물도 대고 농작물을 키울 준비를 합니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부속품이 되기 위하여 준비를 하는 시기에요. 그래서 학교라는게 존재하는 거에요. 사회에서 써먹을려고 학교라는 장치를 만들어둔거에요.
20살이 되면 이제 봄이 끝나고 여름이 시작돼요. 우리가 여름 시작되기 직전에 하는게 모내기에요. 벼를 심는거죠. 거기서 이미 품종이 거의 결정되죠. 대학을 어디 가느냐에 따라 인생의 큰 항로가 결정되는 거에요. 그리고 바로 내가 뭔가 수확물을 얻을 수 있느냐? 아니죠. 계속 잡초도 뽑고 농약도 치고, 물도 관리해줘야해요. 계속 키워야해요. 대학, 군대, 직장 초년생에는 할줄 아는게 없어요. 그래서 계속 트레이닝을 받아야해요. 그게 여름이에요.
그리고 40살 언저리가 되면 이제 가을이 시작돼요. 본격적으로 수확물을 거두게 되죠. 40살 쯤 되면 모든 직종에서 이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따먹을 준비가 된 거에요. 내가 어떤 직업이든 20살부터 20년을 트레이닝받았는데 40살에 꽃을 못 피웠다면 스스로를 돌아봐야해요. 나는 과연 여름을 제대로 보냈는가? 인생 최대로 컨디션이 좋고, 이 시기에 가장 크게 돈을 벌어요.
그리고 60살이 되면 겨울이 와요. 논에는 아무 것도 없죠. 쭉정이 몇개만 떨어져 있어요. 사회적으로 이제 너무 써먹어서 필요없는 존재가 된 거에요. 이제는 농한기가 찾아온 거에요.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죠. 죽음을 기다리며 조용히 나의 봄 여름 가을을 돌아보는 시기가 된 거에요.
우리끼리 하는 말로 '평생 보는 환자의 총 숫자'는 정해져있다. 그래서 젊을 때 환자를 많이 보면 빨리 뒈진다는 속설이 있어요. 내 주위에도 하루에 100명 이상씩 보다가 과로사한 분들이 있어요. 공부도 마찬가지에요. 총량이 정해져 있어요. 무한정 많은 공부를 할 수가 없어요. 내 인생에서 해야할 공부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면 봄에 몰아서 하세요! 나중에 가을 겨울 돼서 가리느까 하지 말고 봄에 몰아서! 집중적으로! 봄에 공부를 하면 가을 겨울에 놀아도 돼요.
에르난데스. 지금 힘들고 지루하죠? 공부를 왜 하나 싶죠? 수학공부 하루 하나. 하루 안 하나. 변화가 있나요? 없죠. 봄에 논에 나가서 괭이로 땅을 갈아보세요. 뭐가 변화가 있나? 쌀이 나오나? 뭐 좋아지는게 있나? 없어요. 변화를 못 느껴요. 그래서 봄에 공부하는게 힘든 거에요. 피드백이 없잖아요. 피드백은 가을에 온다구요. 40살 돼야 빛을 발하는게 동기부여가 되나요? 안되죠. 그래서 힘든 거에요. 당연한 거야. 지금 힘든게 당연한거야. 하지만 지금 하루에 10시가 15시간씩 엉덩이만 붙이고 앉아 있는 인내력만 기를 수 있어도 당신은 사회적으로 훌륭한 부속품으로 쓰일 수 있어요. 나중에 사회가 당신을 찾을 거에요. 어차피 아빠가 평생 먹고살만큼 돈을 주지 않는 가정이라면 내가 나가서 일해서 먹고 살아야해요. 일이라는 거는 내가 하기 싫은 행위를 8시간 동안 꼼짝 않고 하는 거에요. 공부가 별거 아니에요. 그 훈련 받는거에요.
20살이 되어 어떤 품종으로 모내기가 시작될지 아무도 몰라요. 의대를 갈지, 공대를 갈지, 문과로 갈지, 아니면 고졸로 남을지 아무도 몰라요. 하지만 지금 최대한 밭을 갈아보는 거에요.
여기서 착각하면 안 되는게 본인이 밭을 만드는 게 아니야. 밭이라는 거는 엄마 아빠한테 받는 거에요. 천부적으로 타고나는 지능과 성품이에요. 공부머리죠. 밭이 돌밭이면 백날 갈아봐야 돌대가리 가는 거에요. 그건 어쩔 수 없어. 근데 그래도 한번 갈아봐야지. 이게 돌밭인지 옥토인지 갈아보고 모내기도 한번 해봐야지. 밭을 주는 건 부모지만 그 밭을 부모가 갈아줄 순 없어요. 내가 받은 밭이 어떤 수준인지 모르지만 일단 갈아보자. 그게 지금 중학생이 할 일이에요. 최대한 밭을 잘 갈아서 20살이 돼서 대학 갈때 최대한 좋은 품종의 모내기를 하세요.
자, 이제 왜 밭을 갈아야하는지는 이해가 됐죠? 그럼 얼마나 부지런히 갈아야하는지를 정하면 됩니다. 하루에 10시간 갈아야하는지 15시간 갈아야하는지는 누구도 정해줄 수 없어요. 본인이 알아서 정하면 됩니다. 피곤하면 일찍 자요. 저 고1 때는 밤 10시에 잤어요. 스스로를 냉정하게 평가해보고 시간전략을 세워서 각 과목마다 잘 가르치는 사람을 찾아서 강의를 들으세요. 하지만 거름지고 장에 가는 짓 하면 안됩니다. 다른 애들이 뭐한다고 그거 따라하지 마세요. 인기 있는 책이나 강의가 있을 겁니다. 무작정 따라하지 마세요. 내 스타일에 맞냐 내 수준에 맞냐부터 체크하세요. 예전에 수학의 정석이라는 책이 있었어요. 기초편이랑 실력편이 있는데 기초편 문제도 제대로 못 푸는 애들이 실력편 사서 풀고 다녔어요. 멍청이들이죠. 그런 허세 부리면 망해요. 어떤 책이든 상관없어요. 부끄러워하지 말고 본인 수준에 맞는거를 골라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점은 '내가 못 푼 문제'를 대하는 방식입니다. 저는 아주 어릴때부터 어떤 문제집이건 별과 동그라미로 문제를 평가하면서 풀이를 했어요. 건방진 자세죠.
문제집을 풀 때 '어? 이 문제 좀 어려운데?"라고 느껴지면 별표를 해요. 그리고 나중에 채점해서 그 문제를 틀리면 별표테두리에 동그라미표식을 해요. 그리고 풀이한 흔적을 지워놔요. 나중에 동그라미+별표 쳐진 문제들만 다시 싹 풀어봐요. 또 틀리잖아요? 그럼 별표 동그라미를 하나 더 그려놔요. 그리고 나중에 또 그 문제들만 다시 풀어요. 또 틀리면 이제는 별표동그라미가 3개가 됐죠? ㅎㅎㅎ 그리고 다시 나중에 풀어봐요. 내가 한번 풀어서 맞춘 문제는 (기분은 좋지만) 엄밀히 따지면 시간낭비에요. 그런 문제는 안 푸는게 나아요. 고3이 구구단 문제 풀어봐야 뭐 도움이 돼요? 어차피 시험나오면 맞추니까. 공부는 내가 틀린(혹은 틀릴만한) 문제들로 시간을 꽉 채우는 겁니다. 틀리면 기분 나쁘죠? 두번 다시 그런 문제 꼴도 보기 싫죠? 멍청하고 공부 못 하는 애들은 틀린 문제는 쳐다도 안 봐요. 그냥 지 감정대로 사는 거에요. 그런 애들은 나중에도 어떤 직업에서도 성공 못해요. 내가 틀렸을때 분한 마음이 있어야 해요. 그 문제는 내가 반드시 조진다. 내가 한번 틀렸던 문제는 두번 다시 틀리지 않는다는 복수심으로 푸는 거에요. 틀린 문제 계속 틀리면 분해서 잠이 안 와야 정상이에요. 그런 분심을 동력으로 삼아요. 나중에 노가다를 해도 도움이 되는 삶의 태도에요. 에르난데스의 봄날에 행운을 빕니다.<b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