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님, 서대문구에 사는 브라이언입니다. 공부를 해야하는데 핸드폰 확인하고, 메일 확인하고 물도 마시고 책상에서 딴짓하다보면 결국 단 1장도 공부를 못하게 됩니다. 왜 이렇게 자꾸 미루게 되는 걸까요? 너무 자책하게 됩니다. 저는 왜 이렇게 미루면서 살 게 될까요?
- 안녕 브라이언. 어떤 상황인지 알겠어요. "뇌는 본능적으로 회피본능이 있어서 스트레스 상황이 오면 무조건 회피하도록 설계되어있다. 본능적으로 인간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미루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그래도 너무 죄책감은 가지지 마라. 당연한거다. 너는 잘못이 없다." 이런식으로 달콤한 말을 누군가 속삭인다면 그 놈을 조심하세요. 인간이 무언가를 미루는 건 뇌의 회피본능이나 두려움, 불안감, 지루함, 스트레스 때문에 일을 미루는 게 아닙니다. 그런 달콤한 말로 합리화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건 진실을 외면하는 거에요.
일을 미루는 건 동력이 없어서 그래요. 오늘 3시간 공부하면 통장에 10억 꽂아준다고 하면 안 할꺼에요? 핸드폰 확인하고 빈둥거릴꺼에요? 3시간 공부하면 10억인데? 당연히 하죠. 왜 해요? 돈 때문에 하죠. 엄마 식모에 아버지 노가다하는데 나는 노가다 하면서 사는게 죽기보다 싫다면 공부 안 할 것 같나요? 당연히 하죠. 지금 목 마른데 2킬로 전방에 샘물이 있어요. 귀찮다고 안 걸어갈거에요? 스트레스 때문에 못 걷겠어요? 회피본능 때문에 그냥 주저앉을거에요? 당연히 샘물까지 걸어야죠.
무언가를 안 하는 것은 지금 안해도 눈에 띄는 보상과 벌이 없기 때문이에요. 즉 현 상황 대비 <티>가 안 나기 때문에 안 하는 거죠. 뭔가 피드백이 바로 나타나지 않으니까 안 하는 겁니다. 수학공부 하루 안 한다고 수학실력에 티가 나나요? 안 나죠. 3시간 핸드폰 보면서 빈둥거렸다고 내 영어실력이 쳐지나요? 안 쳐지죠. 오늘 동의보감 공부한다고 내일 약환자가 나타나나요? 안 나타나죠. 1시간 핸드폰 보면서 시간낭비해서 인생이 망하나요? 안 망합니다. 티가 안 나요. 그런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티가 나긴 나는데 눈에 안 보이는 겁니다. 지 눈에 안 보이면 똑같다고 생각하는 멍청함. 그것 때문에 미루는 거에요. 오늘 하루 이빨 안 닦는다고 이가 다 썩나요? 아, 안 썩네? 그러면서 매일 매일 안 닦아요. 그게 지금 브라이언의 상황이에요.
<티>가 안 나는 상황은 언제 생길까요? 목표를 지나치게 크게 잡으면 오늘 하나 내일 안 하나, 티가 안 납니다. 내가 등산을 해요. 목표가 8천미터 오르는 거에요. 그럼 오늘 10미터 오르나 안 오르나 티가 하나도 안 나죠. 7990미터랑 8000미터랑 티가 하나도 안 납니다. 하지만 목표를 20미터짜리 우리 동네 언덕으로 잡으면 10미터 안 오르면 티가 확 납니다.
살이 안 빠지는 이유도 그런 거에요. 목표를 대충 크게 잡아요. 45KG!!!!!! 근데 오늘 98KG 나가는 언니가 오늘 치킨 먹으면 어때요? 아무 일도 없지. 오늘 98킬로, 치킨 먹고 내일 98.5킬로면 뭐가 차이나요? 아무도 못 알아보죠. 그런데 1년 내내 치킨 먹어봐요. 큰일나죠. 티가 안 나는 게 무서운 거에요. 인간의 동력을 잃어버리게 하거든요. 티 안 나게 움직이는 것들의 무서움을 알아야해요. 삼성전자가 하루에 100원씩 내리면 아무 느낌 없어요 피드백이 없는거죠. 그런데 하루에 만원 내리면 정신이 번쩍 들죠. 피드백이 없으면 우리는 그 일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해요. 매일 신문 칼럼을 읽는 중학생이 있다고쳐요. 티가 안 나지만 그런 놈이 제일 무서운 놈이고 그 짓을 6년 하면 6년뒤에는 그 학생을 따라잡을 수가 없어요.
동의보감 다 읽어야지. 이런 목표를 세워봐요. 아마 1장도 못 읽을 겁니다. 그런 허황된 목표는 아, 에베레스트 올라가야지. 이거랑 같아요. 오늘 정확하게 담음문의 무슨 처방 조문을 읽어야지. 이렇게 티가 나는 목표를 설정하는 버릇을 들여야 합니다.
인간인 이상 이런 티가 안 나는 일을 매일 하기가 힘들어요. 그런데 우리 인간에게는 습관이라는 놀라운 스킬이 있어요. 우리가 밥 먹고나서 굉장한 <의지>를 갖고 양치질을 하러가지 않아요. 그냥 습이지. 화장실에 바로 칫솔과 치약이 놓여져 있고 꼭지를 들면 바로 물이 나오는 <시스템>과 인간의 특징인 습관이 결합되면 티 안 나는 일을 <의지없이> 꾸준히 잘 하게 됩니다.
한번 상상해봐요. 양치질 한번 하려면 칫솔 제작해야하고 치약 배합해서 우물에 가서 물 길어오고 2시간 준비해야한다면 누가 할 수 있나요? 바로 맘만 먹으면 10초 안에 칫솔질할 수 있게 시스템화가 되어 있어요. 무언가를 하려면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도록 주변환경부터 시스템화해놓으세요. 공부를 하려면 정말 공부에 최적화된 환경부터 만드세요. 그리고나서 티가 안 나는 행동을 계속 반복적으로 하세요. 언제까지? 인이 박혀서 습관이 될때까지. 자기도 모르게(=의지가 개입하지 않고) 저절로 하게 될때까지.
예를 들면 이런 거에요. 아파트 다른 방들은 냉난방이 안 되고 거실쇼파는 다 무너져가고, 쾌쾌한 냄새가 나고 벽지에는 곰팡이가 피고 있는데 내가 있는 공부방은 벽이 대리석이고 뷰가 탁 트여서 굉장히 좋고 24시간 쾌적하게 냉난방이 잘 되고 책상은 오크나무 원목에 90만원짜리 의자로 세팅되어 있어요. 그러면 웬만하면 공부방에 앉아 있으려고 하죠. 공부해라고 소리지를 필요가 없죠. 그 방에는 공부와 관련되지 않은 단 하나의 물건도 놔두면 안돼요. 심지어 침대도 있으면 안됨. 오직 100% 공부에만 도움되는 물건만 놔야해요. 그게 시스템이에요. 한눈 팔고 싶어도 한눈 팔 물건이나 공간이 없어야해요. 핸드폰 책상에 놔두고 "아, 핸드폰 안 봐야지"하면 그게 되나요? 인간은 절대 의지로 시스템을 이겨낼 수 없어요. 아예 처음 애들에게 핸드폰을 사줄 때 서핑하기 더럽게 힘든 폰을 사줘야합니다. 그것보다 좋은건 아예 안 사주는 겁니다.
살 빼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집안을 한번 휘 둘러보고 내 비만을 악화시킬만한 모든 물건 음식들을 다 갖다 버리는 겁니다. 그게 출발이에요. 그리고 내가 가장 쉽게 시스템적으로 운동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좋은 식단을 먹을 수 있도록 주변 환경을 시스템화해서 마치 양치질하듯이 아무 의지없이 실행할 수 있게 환경부터 만드는 겁니다.
애들 공부시키려면 거실 티비가 좋아야 겠어요? 고물이어야겠어요? 당연히 브라운관 티비 갖다놔야죠. 시스템이 인간의 의지를 압살합니다. 핸드폰을 갖고 있어야겠어요? 아니면 멀리 던져버려야겠어요? 당연히 던져야죠. 무언가를 꾸준히 해내고 싶다면 티가 안 나는 행동들이 모였을 때 나에게 돌아올 보상과 벌에 대한 피드백을 잘 생각해보시고 그 일을 하는데 <최적의 시스템>을 갖춰놓으세요. 핸드폰을 손에 쥔 채로 아, 오늘은 핸드폰 안 봐야지 의지로 이겨내야지. 그게 될 것 같나요? 인간은 그럴만한 의지가 없어요. 피드백에 대한 각성을 깊이 해보시고. 그게 <티가 안 나는 목표>라면 더 정신 바짝 차리고 동력이 생길때까지 목표를 소분하세요. 그 다음에 인간의 의지를 갖고 돌파하기보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으로 돌파하려는 자세를 가지세요.<b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