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규홍박사님의 인간실험 프로젝트의 하나로 지볶행이 있다. 조금 더 통제된 환경에서 인간의 행동을 관찰하는 프로그램인데 여기에 남자들이 새겨볼만한 장면이 있어서 소개하려 한다.
조섹츤이 나오는데 약간 나르시스 과이다. 섹츤이 말하는 화법을 보면 논리적이고 차분하고 감정을 절제하고 있다. 본인 스스로도 정말 오랜만에 참으면서 말한다고 인터뷰했다.
이에 반해 무숙은 감정이 풍부한 화법을 쓰고 있다. 화를 내고 짜증내고...
그러면 조섹츤은 무숙이가 말하는 감정적 부분은 싹 무시해버리고 팩트만 골라내서 '너가 이렇게 말한거 맞지?'라며 조곤조곤 작살낸다. 아무 표정없이.
무숙 "나는 빈정상해서 안 갈꺼니까 묻지마."
섹츤 "(빈정상해서라는 부분은 싹 무시하고) 어? 그래 안가? 가지말자! 오케이. 묻지마? 오케이. 안 물을께."
대화가 이런 식이다.
핵심은 안가 + 묻지마가 아니라 "나는 지금 아까 사건으로 감정이 상해있어."라는 거다. 즉 핵심은 피해가면서 상대가 내뱉은 약점만 공략하는 약간은 비열한 화법이다. 나는 안간다. 묻지마라는 건 자신의 '감정'을 꾸며주는 추임새 같은건데 섹츤이는 이 추임새을 싹 골라내서 맞대응한다.
실제 무숙이는 쇼핑몰에 가고 싶어한다. 섹츤이도 그걸 안다. 그런데 의도적으로 외면한다. 이기려고 하는거다.
지금 섹츤이는 무숙이를 말빨로 제압해서 이기려고 하는거다. 항복을 받아내고 싶은 거다. "그래 오빠 말이 맞다. 오빠 하자는대로 하자."라는 말을 듣고싶어한다.
말로 여자를 이기려고 하는, 남자로서 가장 찌질한 모습이다.
그럼 섹츤이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어야 하나?????
무숙이가 "나 빈정상해서 안 가. 묻지도 마."라고 했을 때
마치 안간다는 말을 못 들은듯 언급도 안 하고
바로 사과하고(스스로 잘못하지 않았다고 느껴도) 빨리 가자 가자. 빨리 옷 입어라하고(이미 무숙이가 옷을 입고 있어도) 인도에서 제일 좋은 쇼핑몰(실제로는 아니어도) 데려가서 니 사고싶은거 다 사줄께(실제로는 아이쇼핑만 하더라도) 라고 말했어야 한다.
인간은 말의 팩트보다 태도나 뉘앙스, 화법의 재해석을 통해 실제로는 "나는 쇼핑몰 안간다."라고 말해도 그걸 뒤집어서 '나는 쇼핑몰에 가고싶다.'로 해석할 줄 알아야한다.
침맞고 나서 내려오는 환자가 "저 한약은 필요없나요?"라고 물었을 때, 그 말이 진짜 한약 지어달라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그냥 해보는 인사말인지를 해석할 줄 알아야한다.
언행불일치!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맞다. 언행불일치다. 특히 여자는 언행불일치인 경우가 많다. 이걸 직독직해하면 곤란하다.
조섹츤은 왜 이런 화법을 갖게 되었는가? 이게 남자말투다. 남자들끼리는 이렇게 대화한다. 남자들은 내가 쇼핑몰 가고 싶으면 가고 싶다고 말하지, 그걸 한번 꼬아서 "나 쇼핑몰 안 갈래."라고 말하지 않는다.남자들은 '나의 감정을 해석해줘'라는 모드가 아예 없다. 그래서 섹츤이로부터 '어? 가기 싫다고? 오케이. 안 가.'라는 답이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이번 인도편의 섹츤이의 말투를 보면 말하면 말할수록 문제가 해결되는게 아니라 더 꼬이게 만드는 화법. 누구와 대화해도 절대 져본적이 없는 자세. 아예 져주려는 맘 자체가 없는 남자화법. 문장 자체로만 보면 헛점이 없는 논리적인 화법. 논리만 있고 감정은 없으니 이기긴 이겼지만 결국 승자는 없는 화법. 일이 되도록하는 화법이 아니라 일이 망하는 화법.
남자가 큰 나무처럼 허허허허 웃으면서 손해 보고 좀 져줘야지. 져주는게 지는 게 아니다. 팩트만 쏙쏙 골라내서 맞받아치는 말싸움으로 여자를 넉다운시키려고 하니 결국 서로 감정만 더 상하고 일만 더 꼬인다.
남규홍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