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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오전, 김씨가 자전거 안장이랑 핸들부품을 찾다가 1993년도에 작성된 일기장을 발굴하여 국내 고고학계에 큰 충격을 전해주고 있다.
이 날 기자단에게 공개된 스틸컷에는 그동안 김씨가 어떻게 한의대에 오게 되었는지, 고3 시절 생활은 어떠했는지에 대한 스토리가 모두 담겨있어, 앞으로 국내 한의학계의 현대의사학을 연구하는데 큰 보탬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


다음은 공동취재단에게 공개된 일부 캡처사진들.




양지사에서 나온 당시 최고급 다이어리.






김씨가 하루종일 무슨 프로그램을 시청했는지에 대해 소상하게 기록하고 반성하고 있다.
블루밍스틸이 한창 인기있던 시절.









비디오를 산 날. 기쁨을 표현한 내용.
이때에도 이미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구나.
좌측은 김씨를 표현하였고, 오른쪽에는 김씨의 동생 유성군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내가 왜 봉식이를 싫어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사실 봉식이가 누군지도 잘 기억이...ㅋㅋㅋㅋ)
아무튼 화판으로 농구골대를 만든 기억은 난다.
한손에 잡히는 미니 농구공으로 덩크를 해대며 마이클 조던 흉내내던 것도 기억이 새록새록...
저 농구골대를 신여사님이 내다버린 것으로 기억함. ㅠ.ㅠ







어머니가 마침내 골대를 부셔버린 날... 슬픔이 가득한 일기장.
이때 왜 나는 독일어 회화를 공부했을까? 고3이었는데...수능에 독일어는 나오지도 않는다.






밤샘을 하고 시험이 끝난 마지막날.
포항극장에 문화교실로 클리프행어를 보러 갔었네.
19살짜리 답지 않게 날카로운 관람평이 돋보인다.


고3 시절 일기장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 있는데 이석암.
석암이는 1번이고 나는 끝번.(우린 키순서대로 번호를 정한다.)
이석암은 나에게 있어 모차르트 같은 존재. 나는 살리에르..ㅠ.ㅠ 아아아...
석암이는 매일 11시에 잔다고 했고, 나는 매일 2시에 잤다. 6시에 일어나서 잼피 듣고 8시까지 학교가고 아침 보충듣고 저녁에도 자율1시간 하고 청소하고 보충듣고, 그러니깐 하루는 10교시. (수업을 10시간 듣다니!!!! 와우!)
그리고 7시반부터 야자를 10시까지 하고 남아서 공부하다가 새벽 1~2시경에 집에 가는데도....

이석암이를 도저히 못 이기겠더라. 늘 2등... 어느날 모의고사에서 딱 한번 이겼는데...의미없어!!!
이석암이는 늘 전교 1,2등을 왔다갔다했고, 서울대 전전제 갔고....대전에서 변리사.
그리고...
1993년도에 나한테 빌려간 수학경시대회 책을 아직도 안 갖다주고 있다!!
이석암씨는 그해 포항공대 수학경시대회에서 전체 2등. 자동입학자격이 주어졌는데. 서울대로 날라버림.






아마 이때부터 김씨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체질이었나보다. (한의대 졸업할때까지도 강의실에서만 공부했었네.)
1993년도 일기장에는 잤다는 이야기로 가득했다.








되도 않은 영어로 써놓은 일기도 보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등학생된 기념으로 받은 싸구려 빠이롯뜨 만년필로 쓴 것 같다.

김씨의 학창시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이 바로 '굿모닝팝스'다.
중학생시절 어느날 우연히 새벽에 라디오를 틀었는데, 그때가 막 곽영일씨가 거의 그만둘 즈음이었고, 그때부터 듣기 시작하여, 진행자가 오성식씨로 바뀌고 청취자들에게 누런 갱지를 나눠주던 시절...
그리고 정식으로 굿모닝팝스라는 책자가 발간되고, 김씨는 그 책들을 모두 사모은다.(이사하다가 모두 잃어버렸지만) 하이텔 굿모닝팝스(약칭으로 GMP)에도 가입하여 왕성한 활동을 펼치다가 (심지어 수능치는 날 아침에도 굿모닝팝스를 듣고 갔다. 그날 무슨 노래를 배우고 따라불렀는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대학에 입학하고 1~2년 듣는둥 마는둥 하다가 흐지부지 됐다.







12월 초순 경, 그냥 의대를 가기로 결정했나보다. 발가락으로 원서를 써도 아무 의대나 들어갈 수 있던 시절.
그때는 서울대 의대보다 전전제가 컷라인이 더 높았다.
이때 김씨의 상황을 정확히 말하면 가고 싶은 과가 딱히 없었다고 해야 정확하다.
이날을 전후하여 일기장에 여러 의대 이름이 드문드문 나오기 시작한다.
당시에는 울산대 의대, 아주대 의대가 특이하게 인기가 좋았다. 종합병원이라는 드라마가 엄청 인기있던 해.










대학진학에 대한 정보를 달라는 김씨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져 있다.
정보를 갈구하는 성향 때문이었을까. 훗날 김씨는 hanidae.com을 직접 개설함으로써 수많은 수험생들에게 한의대에 대한 적나라한 정보를 제공하게 된다.










유행가 가사로 시작되는 이날의 일기.
김씨의 20대를 결정지어버린 가장 중요한 날이었다.
김구영형님에게 전화를 때린 것.

신여사님이 "이왕 의대 갈거면 구영이한테 한번 물어나봐라"고 말을 던진 것이 화근이 되어
구영형님과 1시간 정도 통화한 끝에 한의대로 급선회한 날. (그 때는 구영형이 그리 유명한 한의사가 아니었다.)

이날 생생하게 기억하는 장면.
한의대를 추천하는 구영형님에게 김씨가 이렇게 말했다.

"행님요, 그거 비과학적인거 아닙니껴?"


(본문에 나오는 고릴라는 옆집 할머니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기억됨.)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김씨는 "고3때 일기장을 보니 내가 얼마나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는지 감회가 새롭다. 그날 내가 구영형님에게 전화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인생에는 가정법이 없다지만, 적어도 지금 내 상태처럼 굴곡이 심한 인생을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후회하지는 않지만, 본인의 한의대 시절 성적표를 돌이켜보건대, 의사로 사는게 훨씬 더 적성에 맞고 평탄한 인생이 되었으리라는 생각에는 변함없다."<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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