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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아저씨
아저씨가 만들어주고간 아이폰으로 이 글을 쓰고있어요. 일요일아침 이불에 누워서.
아저씨는 저를 잘 모르시겠지만, 저는 아저씨에 대해 관심이 아주 많았어요. 아저씨는 유명한 사람이잖아요. 저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쓰레기같은 수준의 진료행위로 서울시민들의 건강을 해치는데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전에야 자각한, 크리에이티브한 일과는 전혀 거리가 먼 업종의 저소득 전문직에 종사하는 독자입니다.

저는 친구가 없어서 늘 통화요금이 2-3만원을 넘지 않았는데요, 얼마전 최고급 아이폰이 너무 써보고 싶어서 아부지 동생까지 끌어들이고 팩스로 등본 보내고 뭐 이것저것 지랄을 한 끝에 3만5천원짜리 요금으로 2년 쓰는 걸로 한국통신 사장님과 전격적으로 합의를 봤어요. 사실 제가 워낙 없이 자라다보이 돈 쓰는데는 좀 찌질한 인간이에용. KT사장님도 "아 이거 아이폰은 35요금제 못 해주는데...갤레기는 어때?  애국해야지."하시면서 얼굴빛이 안 좋으시더라구요.

아저씨. 근데 아이폰은 끝내줬어요. 내 친구 윤기포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요. 아저씨 회사 때문에 기포는 작년에 매일 야근하고 추석 당일날만 쉬었는데, 사장님도 짤리고 주가도 내려가고, 요즘 옵티머스가 잘 안 팔려요. 물론 아저씨 책임은 아니지만요.


문득 아저씨가 해줬건말이 생각나네요.

혁신은 비용보다 방향이 중요하데이. 내가 애플로부터 고소당할 때 넥스트컴퓨터의 직원은 6명이었다.
R&D는 돈이 얼마나 드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가 중요하다고....매킨토시는 아이비엠의 연구개발비의 1%의 금액을 갖고 만들어냈데이.

큰 돈 들여 병원을 차린다고.. 큰 돈 들여 광고한다고...임상을 오래 한다고 좋은 임상가가 되는건 아니더라고요.
오래하기만 하면 저절로 좋아진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아마 온 세상이 온통 청국장 같겠죠.

어제 뉴스에 아저씨 유산이 어디로 갈까에 대해 나왔어요. 화가 났어요. 머저리들 같으니. 아마 아저씨 본인은 정작 자기재산도 몰랐을텐데.
아저씨의 암 종류가 뭐고 어떻게 오래 살았고, 친구들이 뭐라했고, 삼성이 경쟁자였고(도대체 언제부터?) 등등 온갖 가십기사를 쏟아내고 아저씨가 마치 이제 금방 세상에 나타난 사람처럼 호들갑스럽게 설치는 게 불편해요.

지금 사람들이 김병현을 대하는 걸 보세요. 진짜 팬이라면 이럴순 없죠. 세상엔 정말 머저리 아메바들이 많아요. 달면 삼키고 자웅동체 무한번식... 그리곤 금방 식어버리죠. 아마 한달 뒤면 아저씨 이야기는 하나도 안 나올테고 몇년만 지나면 '으음? 스티브가 2010년에 죽었나 2011년에 죽었나' 가물가물할 거에요.
사람들이 지금 프레디 머큐리가 몇년도에 죽었는지 잘 몰라요..

아저씨는 늘 실패가 두려울 때가 가장 좋은 징조라고 하셨죠. (로이스터 할아버지도 노피어!를 강조하셨고요) 참 어려운 부분이에요. 특히 저처럼 로칼에서 먹고 살아야하는 침쟁이한테는...

가끔 아저씨가 한의사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어요. 아마 일주일도 안돼서 자퇴하셨을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
만약 한의대에 아저씨같은 키노트가 있었다면 저의 20대는 그렇게 어둡진 않았을 거에요. 그래서 얼마전에 아저씨 흉내를 내보았어요. 참 어렵더라고요. 제가 아직 많이 멍청한가봐요.

아저씨는 저에게 아버지뻘의 세대였어요. 아직도 생각나는데 국민학교 다닐때 큰교실에 나무상자에 자물쇠가 달린채로 애플투 컴퓨터가 있었어요. 물론 써보지는 못했죠. 그걸 아저씨가 만든 줄도 몰랐고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가 스컬리 누나한테 이렇게 물었어요

"누나 도대체 아이폰이 뭐가 좋아 ??"

그러자 누나가 한심하다는듯

"아이폰이 있으면 집에 귀가해서 컴터를 안 켜게돼."

아저씨 제가 요새 정말 그렇게 되더라고요. 아저씨가 저의 씰데없는 웹방황시간을 얼마나 절약해주고 다른 더 중요한 일에 시간을 투자할 기회를 줬는지는 너무 자명해요. 이 글도 누워서 쓰고 있어요.

돌이켜보면 아저씨때문에 망했거나 망해가는 것들도 많아요. ㅎㅎㅎ 벨소리업체, PDA 회사, 네비회사. 핸드폰 자판만드는 회사, 통신회사들도 데이타이용료 장사를 이제 더 못하네요. 아저씨가 이렇게 말씀하셨죠.

사람들은 만들어서 보여주기 전까진 자기가 뭘 원 하는지 모른다고...

띵 디퍼런!

참 말은 쉬운데 참 하기 어려워요. 아저씨는 늘 수요가 있는 시장을 따라간(삼성처럼) 게 아니라, 늘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버렸어요. 경쟁자들은 늘 따라하기 바빴죠. 없는 걸 만들어내는건 진짜 힘들어요.
아저씨. 남이만들어놓은 도그마에 빠지지 말라고 하신거 요즘 저의 화두에요. 풀기 어려운 숙제입니다.

이순신
리처드 파인만
랜디 포쉬
이제 아저씨까지!

좋은 사람들-특히 유머와 실력을 겸비한-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건 슬픈 일이에요.
죽음이라는 이벤트가 한 사람의 인생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주고 광채를 보태어주는 건 맞아요. 전 아저씨가 아프기 전부터 쭉 아저씨의 책(정확히 말하면 아저씨에 대해서 남들이 쓴)에 관심도 많았고, 아저씨가 어떻게 키노트하는지, 아저씨가 어떻게 그 굴욕적이고 비참했던-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자기가 해고당하는- 시기를 헤쳐왔는지 궁금했어요. 그 절망감이 어느 정도였을지 아직도 잘 상상이 안돼요.

사람들은 아저씨가 이루어놓은 업적, 제품, 결과에만 관심을 갖고 있죠. 지금도요. 그런데 정말 관심을 가져야할 포인트는 아저씨가 아이폰을 내놓던 시절이 아니라 애플에서 해고당하고 몇달동안 아무일도 못하고 아저씨의 약력에서 공백으로 남아있는 90년대 초중반일거에요. 어떻게 재기했을까.

노무현도 마찬가지죠. 그가 대통령이 된 게 포인트가 아니라 꼬마민주당후보로 부산시장에서 떨어졌을때, 그 암울했던 시기에 정치계에서 영원히 나가리 되는 듣보잡 정치인이 될 뻔한 그 시기를 어떻게 헤치고 다시 부상했느냐.
이순신도 한산대첩이 아니라 어떻게 사형선고를 받고 서울로 압송되어갔을때, 어떻게 그 절망감을 극복해냈을까.


어떻게 '다시' 이륙했을까?

아저씨는 모든 걸 잃고 가벼워졌을때, 중압감 없이, 다시 가슴 속에서 뭔가 피어올랐다고 하셨죠. 비록 애플에서 해고됐지만 내가 하고 싶던 일, 내가 하던 일은 전혀 변하지 않았노라고. 전 불행히도 그런 일을 못 찾았어요. 죽기전에 찾을 수나 있을까요.

무엇보다 아저씨가 대단한건, 재산이 얼마니, 뭘 만들었니가 중요한게 아니라, 어떤 특정한 분야에서 깜짝 놀랄만한 일을 할 때, 돈의 양이나 투입된 시간, 연구인력의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걸 보여주신 거여요. 한왕용 아저씨도 나관주 아저씨랑 단 둘이 700갖고 낭가파르밧에 올라갔자나요. 이순신 아저씨도 그랬고요.
그런거에 비하면 전 그동안 너무 외부환경에 집중하고 탓했던것 같아요. 정작 문제는 저한테 있는데요..

아저씨 아이폰이 좋아도 이만큼 치니깐 그래도 키보드보다는 불편하네요. ㅎㅎㅎ 아저씨 전기가 나오면 꼭 사서 읽어보려고해요. 원서로는 말구요.^^..
음...무엇보다 아저씨의 기능이 융합된(명실상부한) 심플한 디자인은 최고였어요. 안녕히 계세요. <김병성 / 서울 종로구>



** 본 투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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