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노던라이츠

Reviews 2012. 11. 26.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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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울릉도 개척민 4세대이다.

우리 증조할아버지대의 부는 우데기 하나 짓고, 밭 서너마지기 있고 강꼬 한 척 있으면 끝이었다.

우리 할아버지대에서는 도동읍내에서 장사하는 것도 좋은 일이었다.

우리 아버지대에서는 수협에 취직하는 것이 최고로 성공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우리 세대에서 울릉도에서 사는 것은 더이상 출세가 아니었다.

 

이 책에 나오는 알래스카 원주민들 이야기를 읽고 있으려니...

7살 때 포항에 나와 성모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죽도시장에 갔는데 버스매연을 맡고 거의 기절할 뻔했던 추억.

10살 때 이사 나와서 자동차를 너무 무서워했던 기억...

내 동생 유성님이 손 잡아주지 않으면 혼자서 횡단보도를 못 건너던 형이 바로 나였다.

인디언 같은 존재.

지금도  

눈만 감으면 생각나는 울릉도...

 

사동 신리 할배집 마당에 가마때기 깔고 까슬까슬한 촉감위에 홑이불 하나 덮고 누우면

무화과 나무 가지 사이로 별이 쏟아들질듯이 눈앞에 내린다.

연변에는 파도가 리드미컬하게 치고, 아랫마을 정상댁 암소가 운다.

우두봉 위에는 보름달이 걸려있고, 그 달빛에 가닷물은 트롯가수의 우와기처럼 반짝거린다.

 

 

20년만에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다.

아이 머리만한 몽돌이 가득했던 사동해안은 항구가 되었고, 가닷물은 방파제가 가로질러 놓였다.

할배집은 무너지기 직전이고, 무화과 나무 4그루 중 3그루는 누군가에 의해 베어졌다.

그리고 그 마당에서 자던 아이는 지금 한의사가 되어 서울에 산다.

 

이 책에는 알래스카에 살던,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70-80년대에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알래스카 이야기라기 보다는 사람 이야기다.

우정.

자연.

원주민.

문명.

 

자연 속에서 원주민 친구와 나눈 우정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10년을 못 봐도 포옹 한번에 그 세월은 메워진다.

문명 속에서 도시민과 나눈 우정은 사실 우정이라고 부르기도 힘들다.

 

문명의 첨단은 전쟁이다.

베트남전에서 미군은 5만명이 총알에 맞아 죽었지만, 돌아온 군인들 중 15만명이 자살을 했다. 그만큼 전쟁은 영혼을 파괴한다.

 

 

여기 인디언타임이라는 말이 나온다.

약속시간을 정하고도 그 사람이 올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인디언 타임'이라고 한단다.

이게 어리석은걸까? 지혜로운 걸까...

 

레이드백 여행이라는 말도 나온다.

한가롭고 느긋하게 여행한다는 알래스카 사람들의 말.

인생도 레이드백 스타일로 살아가야하는 것 아닐까.

야구연습장처럼 당장 눈앞에 날아오는 볼을 쳐내다가 인생을 허비할 수는 없지 않은가.

 

 

조만간 데날리 캠프에 한번 다녀와야겠다.

 

이 책 끝에 실린 역자의 글은 최근에 읽어본 책 중에 가장 인상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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