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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 일본은 미국의 군함에 무너졌다.

그리고 1867년 모든 제도를 서구식으로 바꾸는 메이지유신을 단행하고 모든 전통의학 교육을 금지시키고 전통의학으로 사람을 치료하는 행위까지 금지시킨다. 1867년 일본의 한의학은 사망했다.

그리고 서양을 받아들인 일본은 30년만에 아시아 최고의 강대국이 된다.

 

한국을 침략하고 한국의 제도까지 메이지유신 정신에 맞춰 모두 개종시킨다. 한국의 한의학도 총독부칙령으로 사망했다. 역사적으로는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이것이 bk박사님이 규정한 한의학 격리의 시초이다.

 

1. 일본 메이지유신에 의한 강제적 격리

 

고종이 만든 왕립병원에서 한의학 진료파트가 쫓겨나고 한의사는 의생으로 격하되어 교육과 진료에 막대한 핸디캡을 안게 되었다. 공중파에서 갑자기 아프리카방송이 돼버린 격이었다. 왕족의 주치의에도 퇴출당하고 교육기관도 모조리 폐쇄당했다.

 

메이지유신의 쓰나미가 몰고 온 한의사 흑역사 50년이 지나고....

 

1950년 부산에서 5인동지회에 의해 국민의료법에서 한의사는 기사회생한다. 다시 제도권에 들어왔지만 이미 헤게모니를 잃어버린지 50년. 국가에서 한옥, 판소리, 국악, 국궁, 한식 등과 함께 한의학은 이미 '무관심의 영역'으로 나가떨어진지 오래였다. 인재는 모두 떠나고 남은 영감들도 기력이 쇠했다.

 

2. 효율의 시대에 밀려난 비효율적인 전통유산의 어쩔 수 없는 비자발적 격리

 

어정쩡하게 제도권에 들어온 한의학의 두번째 격리는 자연스러웠다. 몰락한 양반가처럼 집도 재산도 없이 족보 하나 덜렁 남은(쓸데도 없는) 신세였다.

 

한복, 한옥과 한의학 같은 전통의 가치들은 근대화라는 효율중시의 시대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몰락과 침체의 시기로 빠져들었다. 밥먹고 살기 바빴기에 한약은 더이상 저렴하면서 복약도 간편한 양약에게 경쟁상대가 되질 못했다. 효과면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인재는 더욱 모이지 않고, 하나밖에 없는 한의대의 열악한 교육과정. 거기에서 배출되는 어설픈 한의사의 임상은 '보약 몇첩'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악순환!!!

 

한의학을 가르치는 정통 교육기관 역시 동양의약대학, 서울한의과대학, 70년대 경희대 한의대를 거칠 때까지 의대에 비해 수준이 떨어지는 인재들이 입학하고 교육 수준 역시 질이 낮았다. 체육특기생으로 입학한 학생들이 한의학을 전공할 정도였으니.

(동양의약대학이 경희대로 넘어갈 때 동양의약대학 재학생들이 회기동 경희대 정문까지 카퍼레이드를 하고 경희대 여학생들이 대학'빳지'를 꽂아주는 행사까지 벌였다고 하니 동양의약대학의 당시 수준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988년 올림픽.

한국사회는 그간 독재정권에 의해 잠재되어있는 사회적 욕구가 폭발해버렸다. 엄청난 경제성장으로 기업에게 돈이 쏟아졌고, 노동자들은 돈을 나눠달라는 욕구를 폭발시켰고, 가파른 경제성장은 곧 사회민주화를 촉발시켰다. 더불어 국민소득의 가파른 상승은 건강에 대한 관심을 폭발시켰고 그 행복한 유탄을 한의사들이 맞았다.

 

건강에 도움이 되는 뭔가를 먹고 싶은데 1988년 즈음 한국에서 그런 포지션의 물건은 오직 '한약'밖에 없었다.

 

공교롭게도 1988년은 한의대가 의대 입시성적을 앞지른 첫해이다. 이후 15년간 한의대 성적은 줄곧 의대 위에 있었다. 소위 한의대 황금세대들이 들어온 15년 간의 르네상스.

 

그리고 혜성처럼 나타난 한의학계의 혁신적인 물건 두가지.

1. 대용량 약탕기

2. 레토르트 파우치

 

한의학 근현대 역사 100년에 전기약탕기와 파우치의 도입을 능가하는 혁신은 없었다.

(치과의 임플란트에 버금가는 경제적 혁신이었다.)

 

이 두가지 물건으로 인해 첩단위 소량 가정탕전에서 제단위 한의원탕전이 자리잡았고, 파우치의 도입은 한약의 복용공간을 가정에서 직장과 야외까지 확장시켰다. 소위말해서 한약의 '테이크아웃'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그 이후 자연스럽게 이어진 한의사들의 전성시대.

당시 한의원당 약매출이 90% 침매출이 10%이던 시절이었고, 당연히 노동강도는 현저히 낮았고, 한의원 1개소당 평균 연매출이 4.5억을 찍고, 더군다나 신용카드도 없고 간호조무사 4대보험도 없던 시절. ㅋㅋㅋㅋㅋㅋㅋ 한의사들이 가장 잘 나가던 시절이었다.

 

한의원 1년하면 임대로 들어간 그 빌딩을 산다던 전설의 시기.

한의사들의 막대한 부의 축적은 주변 의료업종들의 시기와 질투를 샀고, 1993년. 정점을 찍었다.

 

바로 약사들이 한약을 조제하겠다고 나온 한약분쟁이 그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약사법상 한약은 한의사들의 흑역사 50년에 걸맞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찌질한 영역이었다. 약대 나와서 한약 연구하면 찌질이 취급받던 시기였고, 한약은 정규의약품의 타이트한 규정을 갖지 못했고, 관련법령도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그러다가 한의사들이 한약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자 약사들이 그 빈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의사들이 경제적으로 가장 잘 나가던 시절에 업권을 향한 가장 처절한 투쟁이 몰아닥쳤다.

도둑은 늘 부잣집을 노린다는 것을 명심하라.

이 세상 그 어떤 소매치기도 노숙자의 주머니를 털려는 놈은 없다.

 

하지만 한약분쟁 이후 약사들에게 파이를 뺏기기는커녕 한약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한의사들의 수입은 더욱 증가추세를 걸었고, 당시 투쟁과정에서 정부가 내놓은 당근책-국립한의학연구소와 공중보건한의사 제도-는 한의계가 제도권에 뿌리내릴 수 있는 확고한 발판이 되었다.

한약분쟁이 절정에 달하던 그해, 바로 한약조제자격 약사시험이 있던 1996년에 한의사들의 비급여 한약매출은 사상 최고액을 찍게 되었다.

 

결국 한약분쟁은 '한약'에 대한 약사들의 공격에 대해 명확한 사회적 해결을 보지 못하고 의약분업을 한다는 원칙을 세우는 선에서 봉합된다. 그리고 실제 2000년도 양방의약분업의 기폭제가 된다. (현재도 일부 양의사들은 의약분업의 원흉으로 한약분쟁을 꼽고 있으면 그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는 이 시기를 주목해야 한다.

한의사들이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수요를 독점하고 엄청난 부를 쓸어담고 있을 때 세번째 격리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3. 잘나가던 한의사들에 의한 자발적 격리

 

우린 양방과 달라. 한방병원은 독자생존할 꺼야!

이 시기에 잘나가던 한의사들은 양방병원에 한의과가 들어가는 것을 굴욕이라 생각했고, 한의대 교수들 역시 양방이랑 맞짱 뜰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근거없는 자만심이 한의계를 지배하던 시기였다. 우후죽순으로 한방병원이 생겨났고 돈도 짭짤하게 벌었다. 한방은 양방과 대등한 줄 알았던 시기.

중풍걸린 부모를 가진 지방 효자들에게 경희의료원 한방병원은 최고의 효자상품이었다.

 

bk박사님이 한의대에 진학한 시기가 바로 이 시기이다. 사회의 초엘리트 인재들이 한의대로 빨려들어가던 시기. 수능 200점 만점에서 한의대는 의대보다 컷라인이 늘 10점이상 높았다. 의대생들과 같이 교양수업을 들으면 자존심 상하던 시기.

카이스트를 나오고 서울대 박사를 마치고도 한의대에 다시 입학하던 시기.

주간지, 일간지 할 것 없이 '한의대 열풍'을 보도했다.

 

모든 양의 극점에는 음이 시작된다. 로마도 외침이 없었던 오현제 시대 이후 몰락했다. 적절한 긴장이 없으면 모든 조직은 패망한다.

 

한의사들이 한약으로 쌓던 막대한 부를 노리던 것은 약사들만이 아니었다. 산업자본이 가만둘리 없었다. 국민들이 갖는 건강에 대한 열망. 그리고 그 열망을 보약이라는 아이템으로 한의사들이 독점하는 현상을 놓칠리가 있나.

한약분쟁이 가물가물해질  즈음인 2000년 드디어 건강기능식품법이 통과되고, 식품에 대해 의학적 효능을 광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공교롭게도 2000년은 드라마 허준이 방영되어 한의대 입시열풍이 최고조에 달했던 바로 그 해이기도 했다.

한의사들은 모두 쾌재를 불렀다. 수능 만점자가 들어오기 시작한 한의대.

연대 의대 합격하고 신입생오티 가는 버스 안에서 경희대 한의대 추가합격 문자통보를 받고 오티 버스에서 내려 회기동으로 달려가던 시절.

 

건강기능식품법.

한의사들은 이것이 얼마나 큰 쓰나미가 될지 몰랐다. 한의학이 시대를 잘 타고나서가 아니라 한의학 자체의 임상적 효과가 대단해서 자신들이 부를 창출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건기식 쯤이야 우습게 봤다.

실제로 한의사들 사이에서는 한의원에 건기식까지 팔면 한약 외에 비급여 매출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건기식 자격증 교육을 받으러 다니는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았다.

 

하지만 건기식은 한약의 보완제가 아니었고 대체제였다.

이는 그 동안 한의사들이 처방한 한약의 포지션이 딱 건기식 수준이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처절한 결과였다.

 

그리고 한의계를 덮친 또 하나의 쓰나미.

바로 2001년 요양병원 제도 도입.

당시까지 한방병원은 주로 바이탈이 안정적인 노인들이 주로 장기입원하던 포지션을 갖고 있었다. 이것을 의료자본이 그냥 둘리 없었다. 양방에서도 그런 환자를 나눠먹자고 들어온 것이 바로 요양병원이다.

초창기에 이런 트랜드를 간파하고 요양병원에 뛰어든 한의사들은 큰 돈을 벌고 나왔고, 멍때리고 있던 한방병원은 모조리 도산했다.

 

건기식의 공습, 요양병원의 침공. 그리고 이어진 한의사 집단의 침체는 진실을 드러냈다.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한의사가 처방하는 한약의 메디칼적인 수준과 한방병원에서 제공하는 메디칼적 서비스의 질을 반증하는 바로미커가 됐다.

 

 

하지만 모든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

 

Failure is Education.

 

박사님이 가장 좋아하는 말씀이다.

실패는 반드시 교훈을 낳는다. 실패는 가르침이다.

 

 

확실하게 인정하자. 지난 10여년동안 한의사는 몰락했다. 실패했다. 비급여는 절반으로 줄었고, 모두 보험 올인 전략으로 달려갔다. 한약을 공부하려는 한의사들도 점점 줄어들고 어떻게하면 침매출로 한의원을 '안 망하게 할까?'가 개원컨셉이 돼버렸다.

불과 10년 만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한의사로 성공한 분야도 있다. 비만, 피부, 탈모 등등 빠르게 유행이 지나가지만 지난 10년간 [수요]를 정확하게 간파한 원장들은 모두 부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로컬의 재빠른 움직임에 비해 협회의 대응은 미숙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한의사협회는 급속도로 보험 올인 전략으로 돌아섰다.

한의사가 1차진료의가 되어야 한다는 구호도 보인다.

의료보험이 안돼서 첩약 매출이 떨어졌다는 논리도 나온다.

이왕 첩약이 망해버렸으니 국가적 통제로 밀어넣어서 진찰료라도 몇푼 더 올려받자는 움직임도 보인다.

 

한약 매출은 여전히 반등하지 않고 있고, 한방병원은 여전히 몰락 중이다.

보험올인 전략도 새로운 비전으로의 개척이라기보다는 굶어죽지 않으려는 발버둥에 가깝다.

우리는 좀 더 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왜 몰락했을까?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더 큰 재앙은 실패로부터 아무 것도 못 배우는 것이다.

 

한의사들은 정신 바짝 차려야할 타이밍에 와 있다.

 

지난 100년간 한의사는 총 3번의 '격리'를 겼었다. 일제시대 총독부의 강제적 격리를 거쳐, 1950년의 국민의료법에서 비자발적 격리, 그리고 90년대 황금기에서 자발적 격리까지 철저하게 한의사는 주류 현대의학에서 격리되는 방향으로 달려왔다.

 

1988년 올림픽과 국민소득 증가, 건강에 대한 욕구.

대형 약탕기의 발명, 파우치 도입은 단지 운이 좋았던 케이스였고, 실제로 한의사들의 임상적 포텐셜이 업그레이드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자만했다.

 

1990년대 막대한 인재풀을 흡수했음에도 지금 배출된 한의사들을 보라. 처참하다.

한의대 교육은 파탄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수재들을 실망시켰다.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 수재들은 입학 직후에는 피해자였으나, 졸업하고 임상을 거듭하면서 점점 후배들에게 가해자로 변해갔다. 스스로 파탄의 책임을 나눠지게 된 것이다.

 

임상에서 감기환자 보는 법을 가르친다는 한의사가 출현했고 더 충격적인 것은 그 강의를 듣겠다는 한의사들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감기 환자에게 보험가루약을 주는 방법에 대해서 신문연재까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침봉지를 까는 방법, 부항컵 땡기는 법에 대해서는 왜 강의가 없을지 의아할 정도다. 이런 현실에도 해당 한의대 교수들이 자진사퇴하지 않는 것은 양심의 부재라고 밖에 볼 수가 없다. 도대체 학교에서 뭘 가르친 거야?

 

나에게 있어 한의대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어느새 외화내빈, 거품, 인내, 갑갑함, 이해불가, 교육파탄이 돼버렸다. 한의대 교수님들은 제대로 못 가르치겠으면 사표쓰는 게 한의학을 살리는 길이다. 엉터리 교수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 학문적 재앙이다. 아마추어도 이런 아마추어들이 없다. 부속병원이 학문적으로 공허하니 결국 양방에서 안 좋은 악습 -의국장 군기잡기, 인턴 길들이기, 과장 가오잡기-만 잔뜩 배워와서 거대한 병원소꿉놀이 공간으로 만들어버렸다.

 

최근 15년간 의대를 압도하는 엄청난 인재들이 1만명이나 한의계로 들어왔다. 그런데 결과가 어떤가? 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것은 마치 변소 똥통에 0.3% 1급 삼다수를 들이부은 것과 같다. 묽은 똥물이 됐을 뿐 똥물은 똥물일 뿐이다. 삼다수들이 입학 직후에 코를 찌르는 똥내에 깜놀하지만, 곧 후각이 마비되고 현실과 타협하고 서서히 '묽은 똥물'들로 변해갔다. 그리고 똥물이 되어 졸업하고 또다른 새로운 삼다수들이 들어오고 똥물이 되어 졸업하는 그 짓을 15년 동안 반복했다.

지금도 똥들은 건재하다!

 

서양의학은 플렉스너 보고서가 나오고 난 뒤 교육의 혁신을 이루어냈다. 한의대 교수들은 플렉스너 보고서를 다시 읽어보기 바란다. 한의대생은 보고 읽고 듣고 암기해서는 안된다. 반드시 '직접 해보는' 교육을 받아야만 한다. 그리고 지금 수능상위 2%대로 내려간 커트라인을 0.5%대로 다시 끌어올려야 한다. 이렇게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을 한의대에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의대보다 더 높은 지능과 통찰력과 인품을 가져야 한의대를 다닐 수 있다. 이미 기반이 잡혀있어 암기능력과 성실함만 있으면 되는 의대와는 다른 환경이다.

플렉스너가 말하길 임상 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insight와 sympathy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인품이 중요하다. 착하면서 성실하고 번뜩이는 통찰력있는 인재를 한의대에 더 유입시켜야 한다. 그리고 개소리하는 교수들 모두 몰아내고 팩트를 가르치도록 분위기를 바꾸어야 한다.

만약 한의대에서 플렉스너 보고서가 나온다면 아마 경희대와 부산한전원 빼고는 모조리 다 폐교시켜야할 것이다. 한의대 교육파탄에 대한 진실되고 양심적인 보고서가 조속히 나오길 기대한다.

 

 

한약이 비싸서 환자들이 안 먹는다고 생각하는 한의사는 많지만, 한약처방의 포지션이 건기식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냉정하게 말하면 효과없고 비싼데다 최근 양방의 폄훼로 찝찝하기까지한- 위치라서 한약 매출이 타격을 받았다는 반증에는 동의하는 한의사가 드물다.

환자들이 비싸서 약을 안 사먹으니 첩약의보를 통하면 한약 매출이 늘어날 것이라는 망상에서 벗어나라. 불과 10년전만해도 보약은 원래 지금의 임플란트와 같은 레벨이었다. 어버이날 부모님께 녹용보약해드리는 것이 크루즈여행, 임플란트 해드리는 것처럼 효도의 아이콘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어떤가? 한약이 비싸서 몰락했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원래 한약은 비싼 거였어. 그런데 한약이 망한 건 다른 이유가 아니야. 비싼데 그만한 가치를 못 보여줬고, 찝찝한 느낌마저 들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싸고 좋은 물건은 없다. 싸서 좋은 물건보다 비싸서 좋은 물건이 더 많다. 니들이 20년간 전국민이 한약에 지지와 성원을 보내줄 때 처방을 정말 졸라 잘 내서 지금 이 지경이라고...ㅋㅋㅋㅋ

이런 상상을 한번 해봐. 감기환자가 내과에 갔어. 그리고 진찰을 받았지. 근데 환자가 나간 뒤에 원장이 환자에게 무슨 약을 줘야할지를 몰라. 그래서 동료 원장들에게 물어봤는데, 10명에게 물어봤는데 처방이 10가지가 나왔어. 그 중에 골라서 주는거야. 제일 마음에 드는 처방으로! 이거 뭔가 이상하지 않아?

결국 질낮은 교육으로 배출된 질낮은 임상가들이 한약이라는 브랜드를 지키지 못했고, 니들이 후배들 먹을 환자까지 다 쫓아버린거라고! 운 좋게 시대를 잘 만났는데 거기에 취한 나머지, 배를 갈라서 황금알을 다 꺼내먹었다고.

그런데 이제와서 뭐라고? 나는 처방을 졸라 잘 냈는데 비싸서 안 먹는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니들 과거 처방전을 다시 꺼내서 읽어봐라. 냉정하게 선배들이 남겨놓은 유산이 뭐 있나? 한약은 효과가 나중에 나타난다는 유언비어. 한약 먹을때 닭,돼지,기름기,술 먹으면 안된다는 어이없는 금기.

현대인에게 술 먹으면 안된다고 하면 술을 안 먹겠니? 한약을 안 먹겠니? 차라리 밥을 먹지 말라고 하지.


첩약을 버리고 제제화해야

그래야 살아남는다고? 이건 마치 짬뽕을 만들줄 모르는 중국집 주방장이 왜 짬뽕라면이 안 나오냐고 투덜거리는 것과 같다. 첩약과 엑스제 중에 어떤 제형이 투약하기 어렵냐? 당연히 엑스제다. 이해가 안 되냐? 니가 전쟁터에 나가는데 칼 종류가 30가지인 것과 1가지인 경우 어떤 경우가 더 대처가 쉽겠냐?

요리를 할 줄 모르면 공부를 하고 배워야지 자꾸 라면처럼 만들어달라고 하면 어떡하냐. 의학을 자꾸 피코크처럼 할라고 하지마. 환자를 죽이는 길이야. 컨텐츠와 컨테이너를 헷갈리면 안돼. 컨텐츠가 망삘인데 컨테이너만 바꾸면 뭐하냐?

 

가격과 가치를 혼돈하지말라.

아산병원에서 간이식 받으면 1억이 들어. 그게 비싸? 싸? 가격이란 아무 의미가 없는거야. 천박한 자본주의가 몸에 밴 사람들이 비싼 것 = 나쁜 것으로 받아들인다. 사실은 비싸고 질나쁜게 가장 나쁜거야. 가격만으로 판단하지말라.

제일 나쁜 건 비싼 한약이 아니라, 효과없는 약, 가치없는 약이야. 환자로부터 한의사집단 자체의 신뢰를 붕괴시켜버리는 효과없는 한약! 그걸 인정하라고. 효과 없으면 "한약은 효과가 나중에 나타나요~" 패증 나면 "일단 1/2로 줄여서 드셔보세요"라는 개소리나 늘어놓지 말고.

지금 당신이 받는 첩약의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이 들고, 첩약의보로 가격이 내려가면 환자가 더 많이 찾겠다고 생각이 드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이 긁는 처방전의 수준이 낮다는 반증에 다름 아니다.

 

 

양방에서 의약분업을 주도한 김용익 같은 분은 임상의가 아니다. 한의사 중에서 첩약의보를 주장하는 애들 역시 한약을 제대로 구사하는 경우가 없고, 대부분 성공한 임상의가 아니다. 

왜 한약을 기가막히게 쓰고 성공한 한의사들은 첩약의보를 주장하지 않을까? 그들은 자신들의 성공이 가격덤핑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 의료 관련 정책들이 임상을 하지 않는 한의사들에 의해서 나온다는 점이다. 임상을 할 줄 모르니 엉터리 정책이 쏟아져 나온다. 작년에 나온 첩약의보 가안을 보자. 20개 상병에 대해 처방을 정하고 그 처방을 보험급여를 해주자는 내용인데, 이런 발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한약을 다룰 줄 모른다는 반증이다. 한약은 굉장히 소프트하고 세심해서 특정 상병에 무슨 탕 이런 공식이 성립할 수가 없다. 얘네들이 구사하는 한약의 수준이라는 것이 발삐면 당귀수산, 교통사고는 당귀수산, 체하면 평위산, 기운없으면 보중, 할머니는 십전 딱 이런 수준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예과 2학년 정도 레벨로 임상을 하니 당연히 한약매출이 지지부진하고,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자기가 쓴 처방이 개판이라는 생각은 미처 못하고 한약이 비싸서 안 사먹는 줄 안다.


여기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건강보험에서는 약가마진을 인정하지 않는다. 처방료라는 항목도 없다. 오직 진찰료 뿐이다. 도입 첫해에는 관행수가를 인정받지만 바로 원가적정성 조사에 들어가서 수가는 엄청나게 인하된다. 수양명검사 수가가 얼마나 내려갔는지 확인해보라.

더 나아가 건보 기준이 자보기준에 우선한다. 따라서 건보에서 첩약수가가 내려가면 자보도 동시에 내려간다.

본초선택료, 방약선택료, 방약구성료 등의 수가신설로 관행수가를 보전할 수 있다고? 양의사들도 못 해낸 일이다. 과연 가능할까?

 

 

국가에서 정책을 입안할 때는 딱 하나만 본다. 의사, 약사, 한의사, 치과의사 이 새끼들을 어떻게 써먹지? 공무원들에게 자비란 없다. 공무원이 좋아하는 직능도 없고 싫어하는 직능도 없다. 오직 하나만 생각한다. 이 놈들을 어떻게 써먹을까?

국가 정책이 공정하지 않아도 된다. 정책이 깡패면 더 좋다. 세금이 적게 드니깐. 지금 의료수가를 보라. 의사들에겐 재앙이지만, 공무원들에겐 굿굿굿이다.

정부에서 볼 때 의사 한의사는 그냥 부품이다. 정책을 교묘하게 잘 구사해서 적은 국민부담으로 의료서비스만 적절히 뽑아낼 수 있으면 된다. 국가에서 한의학 니들 발전시켜주려고 첩약의보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모든 전문직은 국가운영에 응용되는 소모품이다. 한의사도 소모품이다. 빌빌거리는 애들 코꿰서 돈 몇푼 쥐어주고, 전체 한의원 비급여 시장의 수가증가를 컨트롤 할 수 있다면 정부 입장에서는 최고의 정책이 된다. 우리를 국가운영하는데 써먹는 소모품 정도로 생각한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라.

한의사 출신 의료정책 입안자는 어떨까? 마찬가지다. 한의사들 매출 내려간다고 그 사람 수입이 줄어드나? 아니다. 그들은 오직 적은 인풋으로 많은 아웃풋만 나오면 된다.

 

 

한의학 격리의 100년.

독립한의약법, 독립한의사법 이런게 과연 도움이 될까? 나는 오히려 더 격리의 시간만 늘일 것이라고 본다. 격리되면 될수록 한의사의 앞날은 어둡다. 지금 우리가 뭐 독립운동하냐? 여기가 체첸이냐? 상해임시정부야? 무슨 독립한의약법이야? 독립같은 소리하네. 의료를 이데올로기로 접근하면 망한다.

국립한방병원? 만들면 안된다. 왜 우리가 자꾸 스스로를 셀프격리시키려고 하는가. 차라리 서울대병원에 한의과 설치하는게 백만배 낫다. 격리되면 죽는거다.


과연 현대를 살아가는 학문으로 격리가 옳을까? 도움이 될까?

모든 학문은 오픈마인드를 가져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것은 자존심이 아닌 생존의 문제이다.

 

후배들이여, 한의사가 1차의료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얼치기 사회운동가나 제약회사 대표의 말에 속아넘어가지말라. 건기식 판매상과 같은 포지션으로는 더이상 한의사의 미래는 없다.

진입장벽이 없는 전문직은 언젠가는 외부 침탈로 몰락하게 돼 있다. 모든 상행위가 인터넷으로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유통'으로 부를 얻겠다는 망상을 버려라. 클릭만 하면 누구나 홍삼, 경옥고, 공진단을 사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1980년에는 일반인이 녹용을 구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누구나 홈쇼핑, 인터파크에서 구할 수 있다. 더이상 유통으로 부를 만들어낼 수 없는 세상이 됐다.

 

한의사 2만명 모두가 진입장벽이 약한 소프트한 질환을 다루는 구조에서 탈피하여 상급종병, 종병에서 배타적 능력과 독점적 존재가치를 보여줄 수 있을 때 의료인으로서 품위를 지킬 수 있고, 경제적 부를 다시 창출할 수 있으며 제도적으로도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다. 물론 1차 영역에서도 한의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한의사들의 목표가 개원이되고, 그들이 추구하는 의료의 행태가 100% 1차진료가 될때 한의사 집단의 종착지는 결국 파라메디칼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착각하는 게 쉬운 질환을 다루는 메뉴얼만 배우면 1차진료를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사람 몸은 교과서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2,3차 진료를 할 수 있어야 1차진료를 잘 할 수 있다. 많은 의사들이 1차진료를 하는 이유는 '의원의 열악한 시설'의 문제이지 원장의 '의학적 능력'이 아니다. 내가 붙잡아도 되는지 보내야하는지 감별이 안되는데 무슨 1차 진료 운운인가. 의학적으로 1,2차 따위로 나누는 게 의미가 없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뭐 한의사 중에 지금 2차가 있긴 한가? 대학부속 한방병원 과장님도 1차의료인이다. 내가 주는 한약이나 경희의료원 과장님이 주는 한약이나 똑같다. 모든 한의사들이 1차의료를 못 벗어나고 있는데 그걸 더 고착화하자는 캐치프래이즈가 나온다는 게 이해가 되나? 한의사는 훨씬 더 어려운 질환을 훨씬 더 잘 다루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쉬운 병을 많이 보는 방향으로 나가면 미래가 없다. 많은 원장들이 주물럭을 욕하지만 자신의 한의원이 주물럭 따위에 환자를 뺏길 정도의 포지션이라는 것은 정작 깨닫지 못한다.

 

한의사로서 시대를 잘못 타고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것은 운이다.

아무리 똑똑한 수재라도 1940년에 태어나면 학교다닐 시간에 한국전쟁이라는 난리를 겪어야 한다. 내가 왜 80년대 학번이 아닌지 한탄하지 말라.

 

보다 멀리 볼 줄 아는 눈으로, 솔직하게 진실을 마주하는 오픈마인드를 갖고 실패를 인정하고, 그 실패에서 가르침을 찾을 줄 아는 지성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인재가 집단을 이끌 때 그 집단의 미래가 보장된다.

 

우리의 목표는 더이상 전통유산 한의학을 지켜달라는둥 국민정서에 호소하거나, 처방능력은 형편없으면서 한약이 좋다! 한약은 간을 해치지 않아요!라는 소극적인 캐치프래이즈만 열중하거나, 한의학을 주류의학으로부터 격리하거나, 2-3차의료로부터 격리하여 1차의료에 머물게 하거나, 쉽고 가벼운 질환으로 박리다매로 나가는 어리석은 우를 다시 범해서는 안된다. 당장 뱃돼지 곯아도 먼 길을 봐야 한다.  경쟁력 있는 독점적인 시술능력을 트레이닝받을 수 있는 타이트한 교육시스템을 만들고, 스스로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여 진보하는 학문, 오픈된 학문으로 양방병원 내에서도 존재가치가 있는 존경받는 고신뢰집단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현대는 양의학이 주류임을 인정하라. 북한이 남한의 존재를 인정해야하는 것처럼, 이제 우리의 현실이 이만큼 왔으면 한방병원에 양방의원을 넣는 구조가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인정할 때도 됐다. 입원환자 중심으로 한의학 임상을 교육하는 것이 얼마나 교육파탄적인 시도인지 인정할 때도 됐다. 외래중심으로 임상교육체계를 변혁시켜야한다는 점을 인정하라.

환자를 받으려면 양방과 한 지붕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라. 그리고 같은 공간 아래에서 환자를 긴밀하게 주고받으며 독점적인 술기와 약처방으로 한의학의 존재가치를 입증하라. 천연물신약을 양방의사랑 공용하면 통합이 되는 것처럼 혹세무민하는 놈들도 있는데, 장사치들의 그런 말장난에 절대 넘어가지마라.

 

한의사가 품위와 경제적 부를 획득하려면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술기능력과 처방권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며, 그것을 발휘하는 공간을 현재처럼 한방병원, 한의원같은 의료의 마이너 공간에 계속 격리시키면 안된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이다.

 

잊지마라.

 

Failure is Education.

 

<논설실장 bk>

 

 

(본 사설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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