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불호

Reviews 2016.09.16 22:43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건 호불호를 확실히 정하는거다.

1. 호

빈한한 집안에서 성장하게 되면 '호'를 주장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뭘 해봐야 지가 뭘 좋아하는지 알지. 해외여행을 가봤어야, 피아노를 배워봤어야, 낚시를 해봤어야, 스키를 타봤어야, 지가 뭘 좋아하는지 알게된다. 상상력만으로 본인이 뭘 좋아하는지 절대 알아낼 수가 없다. 이것저것 많이 해봐야 한다.

2. 불호

을의 입장에서 '불호'를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참게된다. 좀 거슬려도 참는다. 문제는 참는다고 '불호'가 호로 바뀌지 않는다는 점. 내가 싫어하는 걸 확실하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이기심과는 별개다.) 내가 짜장을 싫어하면 싫다고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한다.(무례와는 별개의 문제다.)

 

성인이 되면 '호불호'를 표현할 줄 알아야한다.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이건 인간의 기본 중의 기본인 전제다.

명절 지나면 시댁에 다녀온 며느리와 아들은 왜 싸우게 되나?

결혼전에 서로 간의 호불호를 명확하게 정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시댁 가는게 정말 너무 싫을 것 같아. 나는 정말 제사가 싫어. 난 한국의 이런 풍습이 너무 싫어.!!!!!!

이런 '불호'의 가치관이 명확하다면 프랑스, 미국, 네팔, 인도, 일본, 짐바브웨, 남아공, 이란 등의 출신인 외국인과 결혼하거나 부모형제없는 고아와 결혼하거나 개종의 여지가 없는 독실한 기독교인과 결혼하면 깨끗하게 해결된다. (어떤 여원장님은 제사가 싫어 제사 안 지내는 남자만 골라 만나서 결혼하심)

연애할 때 미리 서로 사인을 주고 받아야 한다. 연애라는 건 길고 지루한 자기소개의 과정임. 나는 이런 이런 사람이야. 난 결혼하면 이런 식으로 살아갈테야. 물론 결혼하기 전에 나는 시어머니를 증오할꺼야라고 표현하는 여성은 아무도 없다. 나는 장인어른을 아주 우습게 볼꺼야라고 하는 남성도 없다. 다만 냄새를 풍길뿐. 하인리히 법칙처럼 아주 미세한 신호를 내뿜는다. 그 신호를 놓쳐서는 안된다. 방귀가 잦으면 똥이 나온다. 이 새끼가 똥쌀 놈은 아닌지 최대한 모든 오감을 동원해서 정보를 취합해서 나의 배우자가 어떤 '호불호'를 갖고 있는 사람인지를 최대한 알아내야 서로 편하다.

결국은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함은  '시댁문제' '부부문제'  ''처가문제' 등의 단어로 단순화되어 유통되지만 실상 그 내용을 디테일하게 까놓고 보면 특정한 상황에 놓인 특정한 인관관계에 대한 독특한 이야기일 뿐이다. 일반화될 수가 없다.

이 세상에 남자가 만명이 있으면 만가지 성향이다. 여자가 만명있으면 만가지 환경이 다른 여자가 있는 셈이다. 한의사가 만명이 있으면 만가지 다른 한의사가 존재하는 것이다. 한달에 1억씩 통장에 꽂아주는 남편과 한달에 150만원씩 겨우 넣어주는 남편. 둘의 공통점은 음경과 고환을 갖고 있다는 점 외에는 없다. 완전히 다른 존재인 것이다. 사실 남자 여자라는 보통명사로 표현되기에는 우리 인간의 군상은 변수가 너무 많다. 차라리 a라는 인간, b라는 인간으로 특정화해서 파악하는 것이 맞다.

인간은 원래 본인의 현실이 시궁창같고 졸같으면 그 원인을 외부에서 찾기 시작한다. 멋진 방어기제다. 내가 공무원시험에서 떨어지잖아? 그럼 아, 시바 내가 존나 공부 안 해서 대가리가 나빠서 떨어지는구나라고 생각하면 너무 힘들어진다. 그래서 독립유공자 가산점 받는 놈들 때문이야!!! 군대 안 가고 그 시간에 시험공부한 여자들때문이야!! 라고 나의 외부에 화살을 돌리면 마음이 조큼은 편안해진다.

돈벌어서 성공한 자산가가 있다면, 아 저 새끼는 뭔가 구린 꼼수로 부자가 됐을꺼야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훨씬 편하다.

사실 제사, 명절 이런 문제는 한국의 유교습관, 남성과 여성 사이에 벌어지는 거대한 가치관의 충돌이라기보다는 그저 a라는 남성, 그리고 그 집안, b라는 여성과 그 집안 사이에 벌어지는 아주 특수한 이벤트에 불과하다.

a라는 며느리가 명절에 시댁에 갔는데 차가 너무 막혀서 늦게 간거지. 시어머니가 왜 이렇게 늦게왔냐고 핀잔을 줬어. 며느리는 자기 딴에는 새벽에 출발했거든. 밥도 안 먹고 미친듯이 달려왔건만.

누가 나빠? 모르지. 왜냐면 다른 조건을 모르잖아. 이런 건 결국 인간관계인데 아주 디테일한 상황을 모르면 제3자는 판단을 내릴 수가 없지.

만약 그 시어머니가 말기암환자이고 혼자서 요리를 못하는데, 마침 그 제사가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첫 제사야. 거기다가 평소에 시어머니가 며느리부부에게 100억짜리 건물을 물려주고 아들은 놈팽이인데 매달 시어머니가 아들한테 생활비까지 부쳐줘. 거기다가 며느리가 아들과 룸싸롱에서 돈보고 만난 사이에. 명절 전날에도 둘이 클럽갔다가 숙취에 늦잠자다가 늦게 온거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져버리지.

그런데말야. 알고봤더니 그 시어머니가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보름전에 의식이 오락가락할 때 혼인신고한 사이이고, 그 며느리는 어릴때부터 아버지로부터 학대받고 고아원에서 자랐는데 남동생 대학학비를 대기 위해서 룸싸롱에 나간거라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명절 지나면 남편도 아내도 서로 자기가 활동하는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지. 얘들아 결혼은 지옥이다! 절대 결혼하지 마라.!!!!!!!!!! 결혼이라는 것에 위험신호를 보낸다. 그런데 대개 이런 신호는 왜곡돼있다. 왜냐면 무난하게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대다수의 남성과 여성은 그런 글을 올리지 않거든. 운전으로 설겆이로 피곤해서 인터넷할 시간도 없기도 하지만 그럭저럭 매번 명절이 만족스럽거든. 시부모님도 괜찮고 장인장모님도 괜찮고.

결혼은 천국이 될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다. 10만 커플이 결혼하면 10만가지 상황이 생기니까.

미혼자들은 어떻게 해야하나. 레이다를 최대한 뱅글뱅글 돌려봐야한다. 결혼 전에 최대한 나의 '호불호'에 대해 명확하게 표현하고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상대방의 '호불호'에 대해서는 최대한 모든 정보를 취합하여 서로 다른 호불호를 가진 두 사람의 객체가 서로 한 집에서 24시간 생활하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결국 도전이다. 미래에 펼쳐질 상황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 결혼식이라는 출발점으로(결혼은 골인이라든지 목표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다. 도전, 시도, 스타트, 출발 같은 단어가 어울리는 이벤트이므로) 본게임으로 고할건지, 스탑할 건지 결정하면 된다.

 

모두에게 굿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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