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의사, 약사와 상의하라는 문구가 이채롭다. 의사나 약사가 경옥고에 대해서 뭐 아는게 있을까만은.

영조가 오래산 비결로 황교익은 경옥고를 꼭 챙겨 먹었다고 광고를 한다.


실록을 한번 보자.

영조실록에 경옥고가 몇번이나 나오는고.


영조나이 63세되던 해....
영조실록 90권, 영조 33년 7월 27일 정사 2번째기사 1757년 청 건륭(乾隆) 22년

약방 도제조 신만이 경옥고를 조제해서 들일 것을 청하다

임금이 약방(藥房)의 여러 신하를 소견하였다. 도제조 신만(申晩)경옥고(瓊玉膏)를 조제해 들일 것을 청하니, 임금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전에는 위로 자성(慈聖)을 모시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 몸을 보호하려는 마음을 가졌었지마는, 지금은 자성이 계시지 않는데 어찌 혼자 내 몸을 위하여 먹을 수 있겠는가? 옛날 은(殷)나라 고종(高宗)은 3년 동안 양음(亮陰)177) 에 있었는데, 내가 효건(孝巾)을 벗지 않은 것은 효도하는 생각을 간직하기 위함이다." 하였다.



여기서 자성은 임금의 어머니를 말한다. 어머니를 모실때 내 몸이 아프면 불효이므로 내 몸을 더 챙겨야 한다는 영조의 효심을 볼 수 있다. 부모든 자식이든 안 아픈게 장땡이여...

양음은 상중을 말한다.

우리 엄마 돌아가시고 없는데 내가 경옥고 먹고 건강해지면 무엇하냐는 63살 먹은 할배의 코멘트.



영조가 죽기 1년 전 기록에 경옥고가 나온다.

영조실록 125권, 영조 51년 8월 3일 무인 2번째기사 1775년 청 건륭(乾隆) 40년

유생들에게 탕제 복용 여부를 묻다

임금이 집경당에 나아가 부관(部官)122) 에게 명하여 유생(儒生)들을 거느리고 들어와 입시하게 하고, 탕제(湯劑)를 들여야 되는지의 여부를 하순(下詢)하였다. 유생 중에 경옥고(瓊玉膏)를 드시기를 청하는 이가 있어서 임금이 약원(藥院)에 약을 지어올리라고 명하였다. 유생을 전조(銓曹)에 명하여 조용(調用)하게 하였다.



조선왕조 실록에 경옥고를 검색하면 모두 9번 나온다.

명종 1번 영조2번, 정조 6번

정조실록의 6번은 모두 3일사이의 기록이므로 횟수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용 역시 경옥고는 약빨이 약하므로 조리할 때나 드시라는 내용들.




영조의 질병력과 사망원인: 승정원일기를 중심으로
The Medical History and the Death Cause of Young-Jo Based on the Seungjeongwon Ilgi PDF icon

의사학

2010, vol.19, no.2, 통권 37호 pp. 299-341 (43 pages)

발행기관 : 대한의사학회



이 논문을 살펴보자


깜짝놀랄만한 내용이 나온다.

영조는 60대부터 거의 20년간 건공탕이라는 이중탕가감방을 매일 복용하였다.

영조는 어릴때부터 한증과 담음이 많았고 소화력이 약해서 늘 음식섭취에 문제가 있었다.

이중탕 가감방을 매일 복용했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황교익이 광고에서 말한 것은 신빙성이 낮다. 영조는 경옥고를 챙겨먹은 기록이 없다. 대신 이중탕가감방을 매일 챙겨먹었다.


자기 체질과 증에 맞는 한약을 처방받아 장복하는 것이 장수에 도움이 되지 증도 맥도 없이 덮어놓고 경옥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영조도 자기가 어릴때부터 비위질환으로 고생했고 말년에는 이중탕증이었기 때문에 효과가 있었던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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