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시험 이야기

Essays 2003. 8. 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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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중에 땡시험이라는 요물이 있다. 주로 해부학과목에서 행해지는데, 어쩌다가 본초학에서도 시행되기도 한다.
땡시험에 시달릴 때는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짜증도 났는데, 몇년 지나고나서 돌이켜보니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런 말이 있잖는가. "과거는 모두 아름답다"

본과 1학년 해부학 땡시험이 있던 어느날.
교수님이 들어왔다. 조교도 같이 들어왔다. 조교의 살찐 목에는 빨간 초시계가 대롱대롱 걸려 있었다. 어...초시계 갖고 뭐하자는거야?

교수님이 주섬주섬 시험지를 분류하고 있을때 학생들은 한 글자라도 더 머리 속에 넣으려고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조교가 B5용지를 한 장씩 나눠주었다.

"책은 모두 집어넣으세요. 오늘은 상지를 할 차례죠?"

얼굴가득 흐뭇한 웃음을 머금은 교수님은 칠판에 문제를 적어나갔다.

'1번: SCAPULA를 설명하시오.'
'2번: 상지의 관절부분을 설명하시오.'

에게게, 달랑 두 문제다~!!!!


"자, 시작하세요.!!"

교수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열심히 답안지를 채워나갔다. 누가누가 빨리 써내나 시합이다.(가족오락관 스피드 퀴즈를 연상하세요..)

필자의 답 : Scapula는 3개의 Boar동의와 2개의 Surface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Contal Surface는 concave하며 subscapular fossa와 muscular line들 이 있습니다. 그리고 동의orsal Surface에는 Spine이 있고, 이를 중심으 로 ……… 주절주절

이렇게 한국말인지 영어인지 모를 문장을 구사해가며 열심히 답안지를 메꾸어나갔다. 한참 중간쯤 쓰고 있는데, 조교가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1분 남았습니다."

동시에 학생들이 내뱉는 신음소리...으으~~
하지만 이내 조용해졌다. 볼펜소리와 종이 끄적거리는 소리만이 강의실에 울릴뿐.

아! 이제 30초 남았겠구나. 마음은 더 급해지는데 손가락이 따라주질 않는다. 급할수록 글씨는 더 안 써지는 법. (막판에는 글자들이 마구 날아다니게 된다.)

으이구, 이 놈의 영어는 오늘따라 왜 이렇게 안 써진대? 으아, 갑자기 철자가 생각이 안 난다. 에라 모르겠 다. 한글로 적자. 아웅, 어제밤에 외울 때는 잘 생각 나더만, 다 까묵었네. 망했다! 아아..(주로 이런 식이다.)

이윽고 정해진 5분의 시간이 지나고 교수가 '그만하세요~'이라고 외치면 모두 볼펜을 놓아야했다. 그러나 놓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끝까지 악착같이 한자라도 더 쓰려고 발버둥을 친다.

학생들이 답지를 내지 않고 끄적거리면서 답안지 제출을 지연시키면 조교가 다가가서 은근한 압력을 주게 되고 답안지는 순식간에 걷혀지고 만다.

이게 바로 그 놈의 "땡시험"이라는 것이다. 다른 시험보다 고통의 시간이 아주 짧다는 것이 유일한 장점인 시험.

우리는 매주 같은 시간에 땡시험을 쳐야만 했다. 땡시험이 있는 날은 밥맛이 뚝 떨어지고 이 땡시험을 치고나면 두통을 선물받곤 했다.

그 날도 땡시험이 끝나고 뒤에서 어느 학생의 탄식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악! 문제가 스카풀라를 적는 거였어??? 난 휴머러스인 줄 알고 적어냈는데. 으악!"

이런게 땡시험의 묘미랄까?? 으흐흐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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