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읍성에서 유골 출토된 적이 있습니다 . 임진왜란 당시 유골들인데 당시 한국인 남자 평균키가 163cm 여자가 153cm로 나왔습니다. 일본인 유골은 이보다 10센터 더 작은 것으로 확인됐고요
그렇다면 bmi지수로 볼때 조선시대 남성의 평균체중은 58kg입니다
여자 체중은 51kg입니다
지금보다 많이 적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조선시대 주민들은 하루 2끼 식사를 했습니다.
하루 2첩이라는 기준도 아마 식사횟수와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조선시대 용량으로 동일한 분량의 첩약을 지어줄때 (병의 위중도를 배제한다고 할 경우)
75kg의 남성에게는 하루 3첩분량을 처방하는 것이 '조선시대와 동일한 분량의 첩약'을 의미합니다.
100kg이라면 하루 4첩을 투약해야하겠지요.
추말을 하게되면 첩수를 줄여도 동일한 효능을 낸다는 근거있는 소문이 있고요. (특히 이파리들 코팅 뿌실라카믄 꼭!)
약업사에서 약재소비를 늘이기 위해 추출이 어렵도록 굵게 절단한다는 미확인 소문도 있습니다.ㅋ
약성도 아무래도 재배가 많은 요즘이 떨어질 것 같아요.
저희 작은할배가 울릉도에서 시호농사 지었는데, 아주 땅이 작살나버렸슴다.
이건 가정인데요...
75킬로인 남성환자에게 의서에 나온 분량으로
20첩으로 45팩을 뽑아줬는데
환자가 하루 2번씩 묵다가 휴일엔 빼묵고 바빠서 몇개 빼묵고
20첩으로 한달동안 먹었다고 하면...
이 남성환자는 의서에서 목표한 첩약분량의 18%에 불과한 약을 복용한 것입니다.
그래놓고 와서 이렇게 말하기도 하겠지요.
"왜 안 낫능교?"
좀 과장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서울에서 애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