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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대학 모여학생이 자퇴를 하며 대자보를 썼다.
그 모대학이 영산대, 서라벌대, 신라대라면? 시민들의 반응이 어떨까? 경향신문 1면을 장식했을까? 나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본다. 불행히도 그녀는 고려대학교란다.

물론 자기 스스로 대자보 초입에 명문대라고 분명히 명기해두었고, 그녀도 스스로 고려대학교 입학이라는 것이 꽤 그럴듯한 [관문의 통과] 내지는 벼슬의 획득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일단 그렇다치자.
그래! 됐고! 너 일단 명문대라고 그렇다치고!

후후 고려대 못 들어간 사람이 대다수일테니깐. 그녀도 그걸 잘 알아채고 있다.
마치 대자보 뒷면에는 이렇게 쓰여있는 듯하다

'이거 왜 이래. 나 고려대 다니는 여자야 니들이 잘 못 들어오는 그런 명문대'

개콘에 나오는 윤성호의 탑스타론과 비슷한 맥락이다. 뭐 누구나 다 잘난 맛에 사는 거니깐. 그걸 학술적으로 표현하면 자존심이다. 자존심, 자부심 따위는 장려되어야 마땅하다.

몇년전 호프집에 갔는데 이런 일이 있었다.
동석한 아이들 몇이서 서로 말싸움이 붙었다. 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 중앙대, 경희대 중에 누가 더 높냐는 것으로....
한 30분을 서로 피터지게 싸우면서 서로 자기나름대로 자기학교가 더 서열이 높다는 것을 주장하는데, 그 장면을 보고 있노라니 한편으로는 씁쓸하고 한편으론 어처구니도 없고...

자, 여러분이 이 상황을 목격했다면 어떤 기분이 들어야 할까.
당신이 고졸이라면?
당신이 서울대 법대 수석입학자라면?
당신이 경희대 건축학과라면?
당신이 영산대 철학과라면?
당신이 포항1대학 사무자동화과라면?

"야, 그냥 다 똑같은 하위권대학들이야"라고 외쳐주고 싶었지만, ㅋㅋㅋ (물론 난 인서울 축에도 못 끼는 찌질대학 다닌다 ㅋ)

아무튼 연세대가 명문인가? 고려대가 명문인가?
무엇이 명문대학교인가.

그것은 그 대학의 절대적인 위상이 아니라, 그 대학을 바라보는 '나'의 위상이 결정적이다.
내가 이튼에 옥스포드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 출신이라면 코려대학교야말로 정말 생전 처음 들어보는
듣보잡대학이 되고 마는 안타까운 사태가 벌어진다.
내가 경도대학 요업학과 출신이라면? 코려대학은 나의 로망. 나의 선망. 나의 명문대! 이렇게 되는 것이다.

삼성사장이 자살하면 우리는 모두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노숙자가 자살하면 아무도 그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왜 그럴까. 똑같은 자살임에도 관찰자의 위상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내가 선망하는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자살을 한다? 안타깝다. 내가 저 자리 가면 자살 안하고 더 잘 살껀데....그런데 만약 노숙자가 절망 속에 자살한다면?? 결국 관찰자의 시선의 각도가 매우 중요해진다.

그녀의 대자보는 오직 한국. 그것도 고려대학교 내에서만 겨우 존재론적 가치를 지닌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려대학교 입학 자격을 획득하지 못한 대다수의 공감을 유발하려는 장치에 불과한 종이라는 것을 간파해야한다.

연고대라는 단어는 한국에서 마치 굉장히 좋은 대학의 대명사처럼 통용된다. 물론 서울대는 두말할 것도 없고.
삼성이라는 회사에 입사하면 마치 자신의 등 뒤에 삼성이라는 큰 형님이 뒤를 봐주는것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자존감이 약한 사람일수록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강조한다. 안동대학교를 보라. 순천대 창원대 뭐 이런 대학들은 '국립'이라는 글자를 절대 빼먹지 않으려고 발악을 한다. 왜냐. 내세울 게 '국립'밖에 없거든.

내가 90년도 가을에 배웠던 서울대 법대 출신!의 학원강사도 그러했다. 그가 내세울 것이라고는 오직 서울대 법대라는 환경 뿐. 정작 그 자신은 거기 없었다.

자퇴녀 역시 마찬가지다. 고려대-경영학과-본인이름 순으로 존재감이 점점 작아지고 말앗다.
차라리 그냥 "이 땅의 대학생 김예슬"이라고만 썼어도 내가 이 정도로 태클하진 않았을텐데. 후후

자, 자퇴녀가 붙인 대자보를 보자. 대자보를 붙이는 것도 하나의 정치사회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가 만약 영산대학교 철학과 학생이라면 저런 대자보를 붙일 수 있었을까? 그럴 용기가 있었을까? 후후 경도대학교 국사학과출신이라면 어떨까?
시민들이 용기(?)있다고 공감했을까? 그들이 말하는 그녀의 용기란 무엇인가. 기득권을 내어놓는다? 고려대 재학이 기득권인가? 벼슬인가? 보는 자의 위상에 따라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누군가에는 "와우 고려대 다니는 수재가 자기 기득권을 내놓다니! 대단해"라고..
또 다른 누군가는 "어이쿠, 공부 못해서 고대 밖에 못 가는 주제에 쇼는 ..."

만약 당신이 발가락으로 원서를 끄적거려도 면접고사장에 추리닝 입고가도 붙을 정도의 사람이라면 그 학교가 명문으로 보일 수가 없다는 것.
글이 구질구질해졌지만 결론짓자면 그녀는 고려대 재학생이라는 위치가 대중다수를 내려다보는 위치라고 본인 스스로 무의식 중에 전제한 후에 그 '벼슬'에서 스스로 내려왔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외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 학생 내면에 또아리 틀고 있는 알량한 선민의식. 자신이 남들보다 앞서서 '코려대학이라는 자칭 타칭 명문대'라는 결승점을 통과했다는 계급의식.
내가 그 자리에서 내려오면서 그 자리에 돌 하나 던졌노라고. 그리고 아랫 것들에게 외친다.

"봤지? 애들아. 난 니들이 선망하는 명문대 벼슬에서 내려온 용기 있는 용녀야!"

고려대를 올려다보던 아이들은 박수친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고려대 재학생이라는 자리는 나의 시선 아래에 있는 한참을 내려다보는 자리인걸.
그녀가 대자보를 서울대 법대 정문에 붙였다고 생각해보자. 그럴 수 있을까? 하버드 법대라면 어떨까? 영산대 철학과 학생이 대자보를 써서 고려대 정경대 앞에 붙여놓는다면 고려대생들이 속으로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영산대 철학과를 바라보는 각도를 살짝 들면 거기에 고려대 경영학과가 있다. 대학생이라는 존재는 농심이나 삼양이나 다 몸에 나쁜 라면인것처럼 지나치게 PER가 과대평가되어 있는 도찐개찐의 존재일뿐.

한국에서 대학만큼 개콘스럽고 허위로 가득한 공간이 또 있나? 교수는 교수의 탈을 쓰고 있고 학생은 학생의 탈을 쓰고 있고...그런 허위의 공간 속에 붙은 대자보 한장에 온 세상이 들썩이다니.

에베레스트가 높니, 마칼루가 높니해봐도 우주에서 보면 그냥 평지거든...(난 학벌은 중요시하지만, -자신의 환경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것은 장려되어야 한다- 학연은 좀 사회발전에 장애물일 뿐....사실 학벌 이야기는 나중에 또 해야겠지만, 가난한 아이들이 한국에서 그나마 사다리 타고 살아가려면 학벌말고 의지할 게 없다. 그것도 이제 점점 힘들어져가지만...)

대자보 내용처럼 불안하고 꿈도 없고 (마치 나의 예과 1학년 시절을 보는 것 같군) 모두 다 이해한다. 공감한다.
그런데 그런건 일기에 써야지. 응?

일기는 일기장에.... 이거 국민학교 1학년도 아는 건데...^^

입신행도 양명어후세가 효지종야라 했거늘. 자기 부모님 마음조차 편안하게 하지 못할 그릇이 어찌 세상을 바꾼다는 건지......그리고 불만이 많으신 그 여학생에게 한마디 하자면 대학이라는 곳은 숟갈로 밥떠먹여주는 곳 아니고, 지 팔 지가 흔드는 데라는 거...... 니 꿈은 니가 꿔라. 코려대학교가 니 꿈을 앗아갔나? 무슨 꿈을?

(위에 언급된 영산대, 서라벌, 신라, 경도대 등등 이 학교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멀리서 보면 코려대나 영산대나 도찐개찐이라는 거. 어차피 허위로 가득차 있는데 누가 더 고급스러운 허위의 탈을 쓰고 있느냐의 차이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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