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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목은 원래 네버기법이다. 처칠의 좌우명이기도 하지. 그런데 우리나라 번역본에는 처칠 스타일로 승부하라, 라고 번역했는데....맘에 안든다.

본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고르라면 세 분이 계시다.

이순신.
리처드 파인만.
윈스턴 처칠.

특히 처칠은 20세기를 만들어냈다고 할만큼 영국, 아니 세계 역사에 위대한 일을 해냈다. 나는 처칠에 열광한다.

9살의 처칠. 학교에서 엄청 두들겨맞는다. 규정을 따르지 않고 캐묻기를 좋아하며 지가 맞다고 생각하는대로 행동하다가 전학도 3번이나 가야했다. 그는 왕따였다. 자유로운 사상가로서의 왕따.
친구가 없었고, 축구과 크리켓을 싫어했다. 오, 맙소사! 이건 한국인이 김치를 싫어한다는 것과 같은 것!
반면 도박을 엄청 좋아했고 포도주와 위스키도 엄청나게 마셔댔다.
명문가의 자제였으나, 고교성적은 꼴찌였고, 옥스브리지는 고사하고 대학도 못 갔다. 완전히 맛간 것이다.
천하의 탕아.!!!

"어떻게 처칠 가문에서 저런 개쓰레기가 나왔을까!"
귀족가문들 중 가장 맛간 애들만 들어간다는 육사 기병대에 겨우 들어가서 인도로 파병간 처칠은 스스로 무식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날마다 책을 독파한다. 손정의 역시 병상에서 3천권을 읽었지.

처칠은 열광, 열정이 없는 일은 전혀 하지 않았다. 반면 자신이 철저하게 재미를 느끼는 것은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나는 오직 내가 좋아하는 일만 했습니다.
이름하여 "재미의 마력"

자신이 재미없고 재능도 없는 일에는 결코 시간을 낭비하는 법이 없었다.
처칠은 결국 인도에서 엄청난 분량의 책을 읽어치우고 스스로 문필가로서 변태하는데 성공한다.
젊은 처칠은 휴가기간에 전쟁터를 찾아다녔다.  참전수기도 쓰고, 소설도 쓰고, 처칠의 완벽한 변신성공.
대영제국이 지구의 1/4을 삼킬때 처칠은 그 최전방에서 책을 팔아 명성과 부를 쌓아나갔다.

그가 수단식민지 전쟁에 꼽사리끼기 위해 총리빽까지 동원하는 장면을 보노라면 처칠 이 사람 완전 미친거 아냐??
그 즈음 처칠은 완벽한 저널리스트 자리에 오른다.
처칠은 이렇게 말했다.

'너무 멀리 내다보는 짓거리는 하지마라. 어차피 우리가 이순간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운명이라는 긴 사슬 중에 한마디 뿐이거든'
그는 아주 목표지향적이었고, 그 목표는 매우 단기적이었다.

처칠이 처음 반한 파멜라 플라우든과는 끝내 신분차이로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그들은 서로의 가정을 꾸린 후에도 훌륭한 친구로 남았다. 아니 처칠이 이렇게 시크한 녀석이었다니!!! 그의 고백편지는 9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손발이 오글오글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구를 정복해서 당신께 바친다는둥...ㅋㅋㅋㅋ

처칠은 늘 미래에 낙관적이었따. 이렇게 말했지
'인생은 네가 기대한 것만큼 잘 풀려나가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나쁜 상황으로 치닫치도 않아'
처칠은 단문체를 좋아했는데 ' 오래된 술처럼 묵은 말이 최고이고 그 중에서 최고의 말은 짧은 말이다'라는 명언을 남김.

처칠은 정말 쏘 쿨했는데 '나는 사생활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언제든 정치적 공격과 모욕은 토론 후에 용서할 준비가되어있다'라고...진정한 페어플레이 정신....싸울때는 죽을만큼, 싸움이 끝나면 승리자는 아량을 패배자는 승복과 존경을....
그는 히틀러 외에는 그 누구도, 자신의 정적마저도 자신의 책에서 미워하거나 모욕하지 않았다.
페어플레이 정신~~은 개개인의 인생에도 필요하다. 졌으면 승복하자. 이겼으면 아량을..
처칠의 아이콘은 페어플레이다. 싸울때는 늘 평화주의자들의 적이었지만, 전쟁이 끝나면 애국주의자들의 적이 되곤 했다. 후후 처칠은 늘 패자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복수는 달콤해 보이지만 그 대가는 엄청나게 비싸다" 노동자들의 파업을 군대까지 보내 진압하고 난 후에는 그 노동자들의 고통을 덜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싸울때는 가차없이.. 굴복한 자들에게는 자비를...패배자에게 굴욕을 안기지 않고 공동체 안으로 끌어들이는 처칠식 페어플레이. 그것의 바탕은 신의.

처칠은 싸우는 걸 좋아했다. 정치건 자신의 삶의 영역이건. 병마건 간에.

그런데말이야.
처칠은 인생의 향락을 즐기는 걸 매우 옹호했어. 도박, 근사한 식사, 화려한호텔, 비싼 술, 유흥에도 한가락했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솔직해.
처칠은 일단 쓰고나서 메우는 식으로 살아갔다. ㅋㅋ

최고만 추구하는 버릇은 향락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이 필요한 사항이 있으면 그 분야의 최고권위자를 찾아가곤했다.

언제나 불타는 야심을 가졌으면서도 엄청난 유머를 잃지 않았다. 지나칠 정도로 자기자신감, 자기확신, 내가 역사의 주인공이다와 자신으로부터 거리 두기, 적절한 농담즐기기. 이게 처칠의 핵심이다.

선거에 참패하고 처칠이 한 말 "추호의 과장없이 말하건대 나는당시 아주 훌륭한 후보였어" ㅋㅋㅋㅋㅋ
처칠이 선거에 지고 보어전쟁에 종군기자로 따라갔다가 적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는데 처칠은 어이없게도
수용소를 탈출할 계획을 한다. 그리고 모두가 주저할때 혼자 성공하고 만다.

이일로 그는 영웅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보어전쟁으로 들어가 맹렬히 싸운다.
물론 저널리스트였으므로 책을 두권 펴내고...

그는 늘 환경에 적응하려기보다는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기를 원했다. 승부사 처칠.
보수당에서 자유당으로 당적을 옮긴 처칠. 그리고 다시 보수당으로 옮겨 당수까지 된다. ㅋㅋㅋㅋ
당에 대한 충성심보다는 그냥 지 꼴리는대로 !!!!
"나는 한길로만 가는 사람이 아니라 옳은 길로만 가는 사람이야!"
그에게 정당이나 집단은 수단일뿐. 자신의 목표를 위해 당을 이용했으며 당에 대한 충성심을 자신의 가치와 구분했다. 그는 당에 대한 충성심보다는 늘 전체의 목표를 먼저 생각하곤 했다.

열정이 넘친 처칠은 내각과 군부를 오가며 영국해군을 일으켜세운다.
처칠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즉각실현해보거나 아니면 변경하거나 둘중 하나였다. 일을 되도록하는 사람.
모험에 가까운 행동주의는 좌절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안트베르펜 전투 패배.
처칠이 말했다. 위기가 닥쳤을때 "망설임없이 즉각 대처하면 위험을 반으로 줄일 수 있다. 결코 그 어떤 것에서도 도망치지 말라. 절대로!!"

이 사람, 매력있다. 좌절하는 법이 없었어.
그는 집요하면서도 끈기가 있었따. 갈리폴리반도에서 대패하고 우울증을 겪었지만, 그는 놀랍게도 그림을 그리면서!!!!! 우울증을 극복한다. 미술치료사 처칠...그의 영역확장은 어디까지 나간단말인가.
그는 다시 소령으로 군대에 간다. 깊은 추락 끝에도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빈둥거리는 걸 주고록 싫어하지만서도, 하고싶은 것을 성취해내기 위해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일에도 스스로를 내던지는 융통성을 가졌다.

그는 선거에 참패하고 왕따당하고 아웃사이더가 되어 야인으로 살아가면서도 십수년동안 결코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인적 네트워크를 가꿔나갔고 마침내 2차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멋지게 재기했다.
그의 당시 나이가 65세!
지금 누가 늦었다고 불평하는가.


그냥 기다리는 게 끈기가 아니다. 끈기 속에서 언제나 행동해야한다. '넘어지는 것보다 한번 더 일어나는 것이 비결이다'  '용은 바람을 타고 오르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거스르며 오른다.'

처칠이 1941년 그의 모교로 돌아가서 역사에 남을 명언을 남겼다.
바로 이 책의 제목.
네버기법.

네버기법은 사생활에도 포괄된다.

그는 우선 확고한 목표를 천명하고 모든 조직은 이에 따르도록 했다. 그는 저돌적인 선장이었다.
그러나 같이 일하는 사람을 가족처럼 대우하며 결코 그들을 궁지로 몰지 않았다.

일단 행동부터 하고 세부적인 것은 저절로 나중에 따라온다며...
완벽한 준비 후에 행동에 나서는 것은 전신마비와 다름없다.
처칠에게는 현명하고 사려깊은아내가 있었다.

그는 남들로부터 악평을 듣지만 실력이 뛰어난 사람을 친구로 사귀고 중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처칠은 항상 데이타를 갈구했는데 그것도 최신데이타만을!! 일목요연하게!!! 가져오라고 호통치곤했다.
결정이 떨어지면 즉시 행동개시하고 항상 진행상황을 보고하도록. 물론 짧고 간결하게!!

그는 영국이 패전하리라는 분위기 속에서도 낙관주의를 퍼뜨리고 위기를 돌파하려는 의지를 독려했다.
목표는 확고하게 하되, 거기로 가는 길은 부하들의 판단에 맡겼다.
처칠은 업무처리는 매우 신속하게 채찍질했지만, 풍성하게 식사하고 가족과 휴가를 즐기며 오래 자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다. 밥먹고 오후에 자고 사우나하고 그리고 지각은 다반사 ㅋㅋㅋㅋㅋㅋ그는 환경에 자신을 맞추는 법이 없었다.  자신의 욕구에 환경을 맞추었다.
완전 지멋대로였어!! ㅋㅋㅋㅋㅋ낮잠자고 술마시고 도박하고 그림그리고...완전...

그는 불행히도 전쟁막판에 오판을 몇개 했고, 시대의 흐름상 선거에서 다시 참패한다.
그리고 77살에 다시 총리에 오른다. 으하하하하하.
처칠은 서서히 맛가기 시작했지만...


처칠은 전달할 내용은 핵심을 찔러야한다고 "남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자신의 생각을 압축하지 못하는 것은 게을러서다'라고 일갈. 그는 첫총리시절 "모든 공문은 짧게 작성하고 문제의 핵심사항을 중심으로 간략하게!"라고 말했으며 간혹 긴 보고서가 올라오면 이렇게 주석을 달았다.

"이 보고서는 길이부터 읽고싶은 맘이 들지 않아"

처칠은 연설문을 시나리오처럼 꼼꼼하게 짰따. 나중에 시간이 되면 처칠의 연설문들을 읽어보고싶다.
처칠은 수사학의 달인이었고, 엄청난 명언들을 많이 남겼다. 그의 의사소통의 기본 스타일은 가식없는 솔직함이었다. 부하들에겐 불같은 호통과 칭찬과 격려, 암울한 시기 속에서도 끝없는 옹달샘같은 낙관주의를 설파하는 종잡을 수 없는 별종총리.

처칠의 말빨은 21세기 최고였다. 버나드쇼를 압도하고도 남았어.

1961년 빅토리아시대부터 살아온 이 노인은 결국 중풍으로 쓰러지고 만다. 나이는 91세.
그가 혼수상태로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세상에 내뱉은 말은

"모든 게 너무 지루했어."


아, 그런데 백만배 더 지루한 것은 바로 나의 인생 아닌가. 마른종이를 씹어대는듯한 일상의 연속...<201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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