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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남이다. 형이 없다.
인간이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인간과의 관계인데, 그 중에서도 각 인생의 단계마다 큰 영향을 미치는 관계들이 있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우선 유년기에는 자애로운 어머니가 가장 중요하다
20대에는 인생을 방향을 바로잡을 형과 아버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30대에는 아내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고
40대에는 동생과 후배들과 동료들
50대 이후부터는 자식들이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근데 이게 맞나 모르겠다 ㅋㅋㅋㅋ 어디서 이런걸 읽은 거 같은데)
아무튼 내 인생에서 '형의 부재'는 큰 핸디캡이었는데, 대학와서 너무 좋은 형들을 많이 만났다.
먼저 용운이형님
내가 스무살이던 어느날인데 용운이형님의 고물엑셀을 타고 병일이형(당시 포스텍 교수아파트에 거주)과 같이 포항에 간 적이 있었는데, 용운이형이 이랬다.
'병일아, 너 기숙사 몇동이냐"
그리고 병일이형 기숙사 바로 현관 앞까지 운전해서 내려주었다.
당시 스무살이던 나는 약간의 충격이었는데....아, 사람이 살려면 저렇게 살아야겠구나. 내가 줄수 있는게 100이면 100을 다 해주어야겠구나. 사실 기숙사 입구까지만 내려다줘도 되는 일인데, 용운이형은 끝까지 차를 몰고 갔다. 나도 그 후로 누군가를 바래다주어야 할때면 늘 끝까지!!! 간다..ㅋㅋㅋ 누군가 나에게 자료를 80을 달라했는데 내가 가진게 그것보다 더 많고 그게 그에게 필요하다면 서슴없이 100을 주고 살았다. 전부 그날, 내가 뭘 모르고 살던 스무살의 어느날 용운이형님한테 배운거다.
(개원하면서도 이 '이용운의 법칙'은 그대로 적용되었다. 원래 개업인사는 분회장, 동문회장, 총무 이렇게만 가는게 관례다. 그리고 동네 인근 서너곳. 그런데 뭐 짜다리 시간도 많고 해서 동문선배들 한의원을 다 찾아갔다. 35곳 정도 됐나. 사흘 밖에 안 걸렸다. 마신 커피만 수십잔.. ㅋㅋㅋㅋ아무튼 선배들이 약재도 내주고 너무 좋아해주셔서 그 다음번 동문회에 나갔더니, 완전 다 아는 사람들이고....대박 귀여움 받았다는......포항을 떠나올때도 모든 동문선배들에게 다 찾아가서 감사의 인사와 작별을 전하고 올라왔다. 선배들도 떠나는 날 붙들고 진료시간 쪼개서 정말 좋은 충고들을 많이 해주셨고, 그걸 정리한 파일은 지금도 가끔 꺼내서 읽어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고 마징가 최병준.
병준이형은 나에게 인맥이 뭔지 가르쳐준 형이다.
96년도였을 거다. 봄날이었던 것 같은데 병준이형이 등교하는 나를 붙들고 뜬금없이 내일부터 비대위 좀 도와달라고 했었던 것 같다. ㅋㅋㅋㅋ 그 다음날부터 1년동안 비대위실로 출근했는데(그리고 그 다음해에 나는 결핵에 걸렸었다.) 어느날인지는 기억 안 나지만 병준이형이 나한테 그랬다.
"병성아, 인맥이라는건 말야. 다른게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아주 어려운 일이 너에게는 아주 쉬운 일일 수가 있어. 그럴때 니가 그 사람을 위해 그 일을 해주면 그게 진짜 인맥인거야. 니가 지금 비대위에서 나와서 일하는 것도 우리가 하면 어려운 일을 니가 하면 아주 쉬운 일이 될 수 있어서야."
누군가에게 너무 힘든 일이 나에게 쉬운 일일지도 모르고 나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 누군가에는 쉬운 일이 될수 있다는 사실....스무두살짜리였던, 그때까지 세상사는게 뭐가 뭔지 잘 모르고 살던 나에게 병준이형이 가르쳐준 것.
그리고 작년 화재사건에서 나를 구해준 진성이형님.
나는 원래 파국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진성형을 지켜보면서 아 사람이, 특히 남자가 일을 할때는 저렇게 '일을 되도록' 끌고 나가야하는구나하는 걸 배웠다. 깽판치지 말고. 아니꼬와도 판을 깨지말고 끝까지 가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가는 능력. 100점이 안되더라도 말이지. 본4때 '뭔 부장이 이리 많노'라는 말에 격분해서 깽판친거 지금까지 진성형한테 미안하다. ㅋㅋㅋ 나중에 꼭 진성형이랑 사직구장 스카이박스에서 옛날 이야기하면서 야구응원할 날이 오리리...
그리고 공보의 갔을때 원욱이형과 해욱이형과 용규형....
양방형들과 어울리면서 늘 형들이 나에게 충고를 해줬었다.
솔직히 말하면 세명다 좀 특이한 ㅋㅋㅋㅋㅋ 의사다!! 근데 형들이 나한테 해준 조언들은 대부분 다 들어맞고, 내가 흘려들으면 꼭 후회하는 일이 생기곤 했다.
원욱이형은 일년 내내 영어공부하고 미국으로 훌쩍 갔다왔고. 늘 엑센트를 타고 다녔는데, 플스매니아였다. 뭔가 오락과 풍류를 제대로 즐길줄 알면서 또 아주 정확한 타이밍에 버럭 화낼줄도 알고 일에 매진할 줄도 아는....그리고 은실이 뽑았을때 기념으로 시디를 구워다준 완전 자상한 사람!
"김샘 노래 뭐좋아해?"
"저요 더더 완전 좋아하죠 ㅋㅋㅋ"
그 다음주인가 더더 시디 전집을 다 구워오셨더라는... 그리고 모친이 아프셨을때, 원욱이형이 보여준 배려는 평생 잊지 못할 거다.
그리고 해욱이형은 늘 날카로운 조언......돌려서 말하는 법이 없다. ㅡ.ㅡ;;;;;;;;;;;;; 늘 본받을 게 많은 형이다. 특히 내가 포항 구석에서 매너리즘에 푹 쩔어지낼때....교수자리를 박차고 포항으로 내려온 형을 보고 '아, 시...나는 지금 뭐하고 있나'싶고, 아무튼 암때나 전화해서 내가 지금 제대로 가는건지 물어보면 바로바로 궤도를 수정해주는 인간 네비게이션같다고 할까. 내가 불나고 정신 못 차릴때. 형이 그랬다.
"너 지금 그거 복구하려고 서두르다가 더 큰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그리고 용규형....'호감'이라는 게 뭔지 제대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솔직하고, 진지하고, 따뜻하면서, 편안한 사람이다. 어느날 지소에서 낮잠을 자는데 용규형이 들어오더니
"병성아 일어나라. 이거 함 잡아봐라."하면서 골프채를 쥐어줬다.
그리고 원래 처음 배울때는 이렇게 하는거라면서 그날 오후에 바로 파쓰리로 데려갔다. (물론 용규형의 바램과 달리 내가 별 흥미를 못 느껴서 흐지부지됐지만)
그리고 늘 대구에서 회식이 있으면 용규형 집에 가서 잤는데, 아, 사람이 집에서 저렇게 살아야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완전 배울점 많은 형이다.
공보의 말년차때 용규형이랑 지소에서 마음껏 놀았는데, 지금도 그립다. 아마 우리나라 의사들이 모두 용규형같다면 완전 천국일텐데! 대구가면 맨날 집에 자고 가라고 하는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인데, 나도 닮고싶어!!!!!!!!!!!!!!!!! 육아도 완전 달인!!!!!!!!!!!!!! 로컬의로서의 모든 덕목을 갖춘 '완성형 비뇨기과의사'라고 해야할까..ㅋㅋㅋ 의사가 환자에게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옆에서 지켜만 봐도 배우게 되는....
(참고로 해욱이형과 용규형은 의대 산악부를 했었다. 산좋아하는 사람 치고 악인이 없다는 옛말.)
그리고 포항의 동문형님들...
내가 작년에 불나고 정신 못 차리고 있을때, 미친놈처럼 격전을 치르고 있을 때면 전화가 왔다.
"병성아, 장성동으로 넘어온나. 니 사줄라고 개고기집 왔다."
가면 늘 조은원장님과 우석형님이 계셨고, (당시에 사실 목구멍에 체판이 놓인것처럼 국물밖에 안 넘어갔는데) 개고기국을 내 앞에 놓으시더니 다 먹고 힘내서 내일부터 정신차리고 싸우라고 하셨다.
내가 지치고 맛갈때 쯤 되면 또 전화온다.
"북부해수욕장 조개구이집이다..."
"오늘은 막창집 가자"
그때를 돌이켜생각해보면 나는 최전방 전투병이었고, 형들은 보급병이었다.
특히 우석형님은 진짜 와... 나의 내밀한 사적인 부분까지 일일이 다 끌어준 뭐랄까. 멘토같은 형이랄까. 늘 형님 한의원에 가면 마음이 편하다. 아무때라도 "형님 저 병성인데요.."라고 찾아가면 "어..그래...요새 좀 어떻노"하고 받아주시고 내가 힘들때 하루에도 몇번씩 전화해도 꼭 다 받아주시는 (아, 얼마나 귀찮게 했던가!) 한의사가 어떻게 살아야하고 지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그리고 한의원 경영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확실하게 가르쳐주는 형. 그리고 아주 직설적인 내용을 아주 부드럽게 표현하는 능력의 달인.ㅋㅋㅋㅋ
모두 친형들은 아니지만, 내가 20대 이후를 살아오면서 '형의 역할'을 해준 진짜 형들인데, 지금까지 늘 받기만 한 것 같다. 지나칠 정도로.
늘 감사하다. 나는 언제 형들처럼 될까. ㅋㅋ 반의반의반도 안되는 것 같다. 아직 인생 제대로 사는 법을 모른다..
포항 떠나기 전에 우석형이 그랬다. "니 진짜 인복은 많다고" 완전 동감.<2010.5.27>
인간이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인간과의 관계인데, 그 중에서도 각 인생의 단계마다 큰 영향을 미치는 관계들이 있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우선 유년기에는 자애로운 어머니가 가장 중요하다
20대에는 인생을 방향을 바로잡을 형과 아버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30대에는 아내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고
40대에는 동생과 후배들과 동료들
50대 이후부터는 자식들이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근데 이게 맞나 모르겠다 ㅋㅋㅋㅋ 어디서 이런걸 읽은 거 같은데)
아무튼 내 인생에서 '형의 부재'는 큰 핸디캡이었는데, 대학와서 너무 좋은 형들을 많이 만났다.
먼저 용운이형님
내가 스무살이던 어느날인데 용운이형님의 고물엑셀을 타고 병일이형(당시 포스텍 교수아파트에 거주)과 같이 포항에 간 적이 있었는데, 용운이형이 이랬다.
'병일아, 너 기숙사 몇동이냐"
그리고 병일이형 기숙사 바로 현관 앞까지 운전해서 내려주었다.
당시 스무살이던 나는 약간의 충격이었는데....아, 사람이 살려면 저렇게 살아야겠구나. 내가 줄수 있는게 100이면 100을 다 해주어야겠구나. 사실 기숙사 입구까지만 내려다줘도 되는 일인데, 용운이형은 끝까지 차를 몰고 갔다. 나도 그 후로 누군가를 바래다주어야 할때면 늘 끝까지!!! 간다..ㅋㅋㅋ 누군가 나에게 자료를 80을 달라했는데 내가 가진게 그것보다 더 많고 그게 그에게 필요하다면 서슴없이 100을 주고 살았다. 전부 그날, 내가 뭘 모르고 살던 스무살의 어느날 용운이형님한테 배운거다.
(개원하면서도 이 '이용운의 법칙'은 그대로 적용되었다. 원래 개업인사는 분회장, 동문회장, 총무 이렇게만 가는게 관례다. 그리고 동네 인근 서너곳. 그런데 뭐 짜다리 시간도 많고 해서 동문선배들 한의원을 다 찾아갔다. 35곳 정도 됐나. 사흘 밖에 안 걸렸다. 마신 커피만 수십잔.. ㅋㅋㅋㅋ아무튼 선배들이 약재도 내주고 너무 좋아해주셔서 그 다음번 동문회에 나갔더니, 완전 다 아는 사람들이고....대박 귀여움 받았다는......포항을 떠나올때도 모든 동문선배들에게 다 찾아가서 감사의 인사와 작별을 전하고 올라왔다. 선배들도 떠나는 날 붙들고 진료시간 쪼개서 정말 좋은 충고들을 많이 해주셨고, 그걸 정리한 파일은 지금도 가끔 꺼내서 읽어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고 마징가 최병준.
병준이형은 나에게 인맥이 뭔지 가르쳐준 형이다.
96년도였을 거다. 봄날이었던 것 같은데 병준이형이 등교하는 나를 붙들고 뜬금없이 내일부터 비대위 좀 도와달라고 했었던 것 같다. ㅋㅋㅋㅋ 그 다음날부터 1년동안 비대위실로 출근했는데(그리고 그 다음해에 나는 결핵에 걸렸었다.) 어느날인지는 기억 안 나지만 병준이형이 나한테 그랬다.
"병성아, 인맥이라는건 말야. 다른게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아주 어려운 일이 너에게는 아주 쉬운 일일 수가 있어. 그럴때 니가 그 사람을 위해 그 일을 해주면 그게 진짜 인맥인거야. 니가 지금 비대위에서 나와서 일하는 것도 우리가 하면 어려운 일을 니가 하면 아주 쉬운 일이 될 수 있어서야."
누군가에게 너무 힘든 일이 나에게 쉬운 일일지도 모르고 나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 누군가에는 쉬운 일이 될수 있다는 사실....스무두살짜리였던, 그때까지 세상사는게 뭐가 뭔지 잘 모르고 살던 나에게 병준이형이 가르쳐준 것.
그리고 작년 화재사건에서 나를 구해준 진성이형님.
나는 원래 파국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진성형을 지켜보면서 아 사람이, 특히 남자가 일을 할때는 저렇게 '일을 되도록' 끌고 나가야하는구나하는 걸 배웠다. 깽판치지 말고. 아니꼬와도 판을 깨지말고 끝까지 가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가는 능력. 100점이 안되더라도 말이지. 본4때 '뭔 부장이 이리 많노'라는 말에 격분해서 깽판친거 지금까지 진성형한테 미안하다. ㅋㅋㅋ 나중에 꼭 진성형이랑 사직구장 스카이박스에서 옛날 이야기하면서 야구응원할 날이 오리리...
그리고 공보의 갔을때 원욱이형과 해욱이형과 용규형....
양방형들과 어울리면서 늘 형들이 나에게 충고를 해줬었다.
솔직히 말하면 세명다 좀 특이한 ㅋㅋㅋㅋㅋ 의사다!! 근데 형들이 나한테 해준 조언들은 대부분 다 들어맞고, 내가 흘려들으면 꼭 후회하는 일이 생기곤 했다.
원욱이형은 일년 내내 영어공부하고 미국으로 훌쩍 갔다왔고. 늘 엑센트를 타고 다녔는데, 플스매니아였다. 뭔가 오락과 풍류를 제대로 즐길줄 알면서 또 아주 정확한 타이밍에 버럭 화낼줄도 알고 일에 매진할 줄도 아는....그리고 은실이 뽑았을때 기념으로 시디를 구워다준 완전 자상한 사람!
"김샘 노래 뭐좋아해?"
"저요 더더 완전 좋아하죠 ㅋㅋㅋ"
그 다음주인가 더더 시디 전집을 다 구워오셨더라는... 그리고 모친이 아프셨을때, 원욱이형이 보여준 배려는 평생 잊지 못할 거다.
그리고 해욱이형은 늘 날카로운 조언......돌려서 말하는 법이 없다. ㅡ.ㅡ;;;;;;;;;;;;; 늘 본받을 게 많은 형이다. 특히 내가 포항 구석에서 매너리즘에 푹 쩔어지낼때....교수자리를 박차고 포항으로 내려온 형을 보고 '아, 시...나는 지금 뭐하고 있나'싶고, 아무튼 암때나 전화해서 내가 지금 제대로 가는건지 물어보면 바로바로 궤도를 수정해주는 인간 네비게이션같다고 할까. 내가 불나고 정신 못 차릴때. 형이 그랬다.
"너 지금 그거 복구하려고 서두르다가 더 큰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그리고 용규형....'호감'이라는 게 뭔지 제대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솔직하고, 진지하고, 따뜻하면서, 편안한 사람이다. 어느날 지소에서 낮잠을 자는데 용규형이 들어오더니
"병성아 일어나라. 이거 함 잡아봐라."하면서 골프채를 쥐어줬다.
그리고 원래 처음 배울때는 이렇게 하는거라면서 그날 오후에 바로 파쓰리로 데려갔다. (물론 용규형의 바램과 달리 내가 별 흥미를 못 느껴서 흐지부지됐지만)
그리고 늘 대구에서 회식이 있으면 용규형 집에 가서 잤는데, 아, 사람이 집에서 저렇게 살아야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완전 배울점 많은 형이다.
공보의 말년차때 용규형이랑 지소에서 마음껏 놀았는데, 지금도 그립다. 아마 우리나라 의사들이 모두 용규형같다면 완전 천국일텐데! 대구가면 맨날 집에 자고 가라고 하는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인데, 나도 닮고싶어!!!!!!!!!!!!!!!!! 육아도 완전 달인!!!!!!!!!!!!!! 로컬의로서의 모든 덕목을 갖춘 '완성형 비뇨기과의사'라고 해야할까..ㅋㅋㅋ 의사가 환자에게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옆에서 지켜만 봐도 배우게 되는....
(참고로 해욱이형과 용규형은 의대 산악부를 했었다. 산좋아하는 사람 치고 악인이 없다는 옛말.)
그리고 포항의 동문형님들...
내가 작년에 불나고 정신 못 차리고 있을때, 미친놈처럼 격전을 치르고 있을 때면 전화가 왔다.
"병성아, 장성동으로 넘어온나. 니 사줄라고 개고기집 왔다."
가면 늘 조은원장님과 우석형님이 계셨고, (당시에 사실 목구멍에 체판이 놓인것처럼 국물밖에 안 넘어갔는데) 개고기국을 내 앞에 놓으시더니 다 먹고 힘내서 내일부터 정신차리고 싸우라고 하셨다.
내가 지치고 맛갈때 쯤 되면 또 전화온다.
"북부해수욕장 조개구이집이다..."
"오늘은 막창집 가자"
그때를 돌이켜생각해보면 나는 최전방 전투병이었고, 형들은 보급병이었다.
특히 우석형님은 진짜 와... 나의 내밀한 사적인 부분까지 일일이 다 끌어준 뭐랄까. 멘토같은 형이랄까. 늘 형님 한의원에 가면 마음이 편하다. 아무때라도 "형님 저 병성인데요.."라고 찾아가면 "어..그래...요새 좀 어떻노"하고 받아주시고 내가 힘들때 하루에도 몇번씩 전화해도 꼭 다 받아주시는 (아, 얼마나 귀찮게 했던가!) 한의사가 어떻게 살아야하고 지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그리고 한의원 경영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확실하게 가르쳐주는 형. 그리고 아주 직설적인 내용을 아주 부드럽게 표현하는 능력의 달인.ㅋㅋㅋㅋ
모두 친형들은 아니지만, 내가 20대 이후를 살아오면서 '형의 역할'을 해준 진짜 형들인데, 지금까지 늘 받기만 한 것 같다. 지나칠 정도로.
늘 감사하다. 나는 언제 형들처럼 될까. ㅋㅋ 반의반의반도 안되는 것 같다. 아직 인생 제대로 사는 법을 모른다..
포항 떠나기 전에 우석형이 그랬다. "니 진짜 인복은 많다고" 완전 동감.<201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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