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톰의 번개주먹

Essays 2010. 6. 5.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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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치원때부터 맨 뒷줄에 섰다. 알게 모르게 그게 스트레스인데, 일단 짝이 없을 확률이 50%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인원수가 홀수로 끝나면 나는 늘 제일 뒷 구석자리에 혼자 앉게 되는 대참사가 일어난다. 그 자리엔 출입구가 있거나 아니면 청소도구(그 중에서도 냄새나는 밀대!!!! 스멜이 쩐다)와 1년을 같이 보내야 하는 것이다.

"임시반장"

어쩌면 나의 청소년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이 단어가 아닐까싶다.

학기초만 되면 제발 나보다 키 큰애가 한 놈이도 있기를 바랬건만 그런 기적은 중고등학교를 통틀어서 일어나지 않았다. 가장 최악의 새학기는 고교 1학년때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수업첫날부터 나는 반장역할을 해야 했다. 특히 교련시간은 거의 공포의 시간.

교련선생은 나에게 따로 경례하는 법(지금 생각해보니 군대식이다)을 가르쳤다. 일단 교련선생(퇴역군인)이 복도에 걸어오고 출입구에 서는 순간 스프링처럼 튀어 일어서서 복도가 다 울리도록 외쳐야 한다

"전체~~~~~~~~~~차렷!!!!!!!!!!!" (리듬이 중요하다. 한 호흡이 이 네음절을 리드미컬하게 뿜어내야한다. 체~~~ 찻!!! 이라고 들리기도 한다)

그러면 교련선생이 비로소 문을 열고 나를 슬쩍 한번 쳐다본다. 정전이 된듯 조용한 교실...
뚜벅뚜벅뚜벅.
교련선생이 교탁에 앞에 서서 차렷자세로 선다. 이제 인사받을 준비가 됐다는 신호다.

경롓!!

성~~~~~~~~~실!!!!!!

55명의 학우가 모두 앉아서 거수경례를 한다. 완전 병정놀이다.ㅋㅋㅋㅋㅋㅋㅋㅋ
교련선생이 거만하게 답경례를 하고 손을 치우면, 비로소 의식이 끝난다.

인사만 담당하면 다행이지만, 늘 그렇듯이 교련시간에는 가끔 장기자랑 같은걸 시킨다. 새학기라 모두 서먹서먹하니 당연히 지목되는건 임시반장!

으악!!
미쳐버릴 것 같아!!!! (지금 생각해도 오글오글하다)

교련뿐 아니다. 수학시간에 시범으로 문제를 풀 일이 있다든지, 체육시간에 누가 뜀틀 시범을 보여야 한다든지...
국어시간에 책을 읽는다든지...
무슨 노역작업을 해야할때 끝에서 5명 나와!!! 라든지...(나 히매가리 없는데)

그렇다!! 임시반장은 훈련소 조교같은 거였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정식 반장에 선출되고, 반장 취임 기념사를 하는 자리에서

"저 반장 안 할랍니다"라는 폭탄발언을 하여 학우들을 모두 황당하게 만들어버렸다.
(지금 생각해도 잘 한 것 같아)


1학년때 담임은 아톰이었다. (본명은 박용근 선생님이었는데) 머리가 아톰머리였다.
주무기는 주먹으로 학생 머리를 쿵 내리치는 '번개주먹'
우리는 선배들로부터 번개주먹에 대한 소문만 들었지.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학기가 시작된 어느날 자율학습시간에 아톰이 들어왔다.
교탁 옆에 책상을 놓더니 끝번부터 불렀다.

으익...!!!!

소위 말해서 학습상담이라는건데...별 내용은 없는 그저 형식적인 격려가 대부분이었다.


"음...그래...병성이... 요즘 몇시에 자노?"

"네. 10시반에 잡니다"

"뭐야?"라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갑자기 쿵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이 아득해지면서 정수리쪽에서 뻐근한 통증이 울림과 동시에 다리가 휘청거렸다. 한 3초 정도 앞이 안 보였다.

번개주먹!

그렇다. 새학기 첫 희생자가 바로 나였던 것이다. 애들이 모두 눈이 똥그래져서 나를 쳐다봤다.

그 당시 야자가 10시에 끝났는데, 내가 10시 반에 잔다고(사실이었다) 했으니 집에 가자마자 잔다는 거 아닌가!
아톰은 용납할 수 없었던거지. 내가 휘청거리는 다리를 끌고 자리로 돌아갔고, 54번 녀석이 나갔다.

54번은 12시 반라고 대답했고
53번은 2시
52번은 1시.

참 인간의 적응력이란 놀랍기도 하지.

결국 우리 반에서 12시 전에 자는 놈은 나 뿐으로 밝혀졌다.(물론 진실과는 거리가 멀거다.) 그리고 아무도 번개주먹을 맞지 않았다. 나 빼고!

아무튼 나에게는 씁쓸한 기억인데, 언제 한번 박용근 샘을 찾아가서 그때 왜 때렸냐고 한번 물어보고 싶다.

꽤 시간이 흘러, 요즘에야 이런 저런 인물의 전기를 보다보니...




드라마 보고, 서핑도 하고, 친구랑 술마시고, 잠도 푹자고 그렇게 살면서 뭔가를 이루겠다는 생각은 '만용'이 아닐까싶다. 특히 구글드를 읽고 내가 받은 충격은... 그 옛날 번개주먹보다 더 했다. 새벽3시에 일어나서 학교에 컴퓨터하러가는 빌 게이츠가 상상이 가나. 모두가 잘 시간에!

뭔가를 이루려면 범부들의 생활패턴과는 확연히 달라야 한다. 10시반에 자다니! 말도 안되는 거야!
하루 3끼먹고 9시 출근하고 7시 퇴근하고 뉴스보고 서핑하고 드라마보고 이래선 범부밖에 안되는거야!
책은 언제보고 정리는 언제하고 페이퍼는 언제 쓰나.

지금 나에게 필요한건 번개주먹! 쾅!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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