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이후 달라진 점

Essays 2010. 6. 20.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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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bk원장. 니 어데고? 니 지금 우리 집 좀 와줄 수 있나?"

창포동 호프집에서 왕골이랑 원찬이랑 순호랑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이사장 전화가 왔다.
시계를 보니 밤 11시반.

"밤에 전화해서 미안한데 우리 와이프가 좀 갑자기 안 좋은데, 내가 니 태우러 글로 가까? 니가 올래?"

-"야, 내가 가는게 낫지. 쫌 기다려봐래이. 인자 막 술 시켰는데 기가막힌 타이밍에 전화했데이 크크"

자리에서 일어났다.(일전에 말한 이용운의 법칙과 마징가의 법칙은 94년도 이후 내 삶을 관통하는 행동의 기준이었다. 가족, 친척, 지인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의사가 되는 것은 큰 기쁨 중의 하나.)

"사장님 부르신다. 내 장성동에 좀 갔다오께."


이사장 집에 도착해서 침 놔주고 정신적 격려와 지지(의학논문에 주로 나오는 용어로 의학적으로는 실제로 별 의미없다 ㅋㅋ)를 해주고 다시 호프집으로 귀환했다. 친구들 사이에 늘 있는 일상다반사.

그리고 한달 뒤쯤 우리 업장에 대화재가 발생했고, 나는 그로부터 두달 동안 이사장과 그의 부하직원인 김과장을 제대로 부려먹으면서 그간의 침값을 톡톡히 받아낸 셈이 되었다.ㅋㅋㅋ

어느날 이사장 사무실에서 수습하느라 정신없는데, 이사장이 웬 여자를 차에 싣고 왔다.

"bk야, 내 자주가는 동네 바 사장인데, 침 좀 놔주라. 야가 어제부터 허리를 몬 피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고보니 안면이 있는 여자분이다. 지난번 이사장이랑 같이 바에 갔을때, 까맣게 때가 낀 내 손톱을 보더니(그때는 한의원 한번 갔다오면 온몸이 새까매졌었다) 나보고 도대체 무슨 직업이냐고 물어본 그 여사장님.

"야 그냥 니 사무실에 그냥 오픈하까? 난 두평이면 되는데. 니 사무장하고 환자 좀 실어날라라."


파푸아뉴기니의 원톡같은 친구들. 모두 3학년때 한반이었다. 화재이후 정신놓고 사는 나를 대신해서 더 격분하고 더 열심히 싸워주었던 친구들.

"야, 광형아 나 돈 없데이. 니 오늘 3만원 들고 와서 내 맛있는 저녁 한끼 사주라"

"원찬아, 우리 한의원 밑에 실외기 하나 남아있을끼다. 그거 갖고 가서 팔아묵고 알라 분유값이나 해라. 그라고 내일 밤 8시까지 트럭 갖고 한의원 앞으로 온나."

불나고 나서 나는 그 전보다 더 뻔뻔해졌다. ㅋㅋㅋ 그리고 원톡(one talk)들과의 우정은 더욱 강력해졌다.







## 수성펜은 절대 사지 않는다.

불난 다음날 책 몇권이라도 건져보려고 한의원에 갔는데, 소방수를 얼마나 뿌려댔는지, 책이 완전 못 쓰게 돼버렸다. 그 중에서도 유성펜으로 필기한 자료들은 그나마 말려서 한번이라도 읽어볼 수가 있었지만, 수성펜으로 기록한 자료는 모두 다 뿌연 색깔로 번져버렸다.
한의원 불탄 것보다 책들과 내가 필기했던(무려 10년간!!!) 자료들을 모두 날려버린 게 더 가슴아팠다.
그 후로 나는 수성펜을 사지 않는다. 아마 평생 수성은 쓰지 않을 것 같다. 수성펜  트라우마ㅋㅋㅋ






## 책도 사지 않는다

불나기 전 집에 있던 모든 책들을 다 한의원에 옮겨놓았다. 몇천권쯤 됐을건데, 이번 화재로 대부분 다 망실되고 살아남은 책들도 그을음과 소방수 때문에 한번이상 펴보기 힘들어졌다. 화재가 나면 불타서 없어지는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그을음 피해가 훨씬 크다. 그을음은 의복과 종이에 스며들어 절대 날라가지 않는다. 지난 10년간  즐겨 입던 가운들도 그을음 때문에 모두 버려야했다.

그리고 책.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속에 집어넣는 것이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미루는 버릇이 없어졌다. 이것도 트라우마인데...왠만한 책은 다 빌려서 읽거나 서점에서 서서 읽어치운다. 그리고 딱 한장으로 정리하거나 머리속에 넣어놓거나.
절대로 그전처럼 책을 책장에 보관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강의 듣는 방식도 바뀌었다. 전에는 수업이 있으면 필기해놓고 한동안 덮어두었는데, 이제는 강의하던 날 밤에 귀가하면 바로바로 정리해서 A4 한장으로 출력하거나 머리속에 집어넣고 다음날 아침 9시에 출근하면 바로 진료패턴에 반영한다.

지식의 보관이 아니라 [지식의 체득화]. 지식이란 것도 내 몸에 익히고 내가 사는 방식과 가치관이 바뀌어야 그 지식을 비로소 획득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전처럼 책 사놓고 책장에 진열해놓고 마치 그 책들이 내것이 된양 뿌듯해하던 마음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불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한장에 정리되고 내 머리속 들어와서 궁극적으로 내 행동과 진료패턴을 바꾸지 못한다면 나는 그 책을 읽거나 그 강의를 들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

화재이후, 확실히 지식을 습득하는 방식은 훨씬 나아졌다.




## 아날로그에 대한 맹신에서 탈출

화재 이전까지 나는 아날로그적 삶을 추구했었다. 모니터보다는 인화지로 사진보기를 즐겼고, 아래아한글파일보다 직접 종이에 기록하는 걸 좋아했었다. 그런데 막상 불나고 나서 남은 자료는 모두 디지털 자료 뿐이었다. 세상에! 이런 아이러니가.
화재 이후 웹하드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모든 데이타와 기록을 온라인 아니면 디지털 매체에 기록하고 있다. 아날로그는 인간 사이의 정을 나누는 도구로 격하되고 말았다.





그리고 화재 이후, 삶은 풍요로워졌다. 겸손해졌고, 자유로워졌고, 너그러워졌고, 단호해졌고, 자신만만해졌다. 더 잃을 게 없었으니깐.
그날 오후, 검은연기가 폭발할듯이 뿜어져나오는 한의원 앞 거리에서 수 많은 시민들이 빙 둘러서서 불구경하며 검댕으로 엉망진창이 된 나를 지켜보는 가운데...
온몸이 검게 변한 곰간을 내 무릎에 누이고, 숨을 못쉬고 검은자위가 넘어가며 의식을 잃어가는 곰간을 내려다보면서 빌었다.



'제발 우리 간호사 이 녀석 죽지 않게 해주세요. 얘 죽으면 나도 죽습니다'





그날 이후 모든게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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