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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인 예후가 좋은 사람이 좋다. 그게 동료든, 친구든, 선배든....환자를 볼때도 의학적 예후만큼 인간적 예후가 중요하다.
얼마 전에 어떤 아가씨 환자였는데 어깨가 아파서 침맞고

"저..원장님 침맞아서 그런것 같진 않은데 허리도 더 아파요"

일단 이런 환자는 예후가 아주 좋다. 착한 환자. 상대방에 대한 감정에 대해 공감할 줄아는 환자다.
착한 사람을 잘 골라서 깊이 있게 사귀는 것이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불행히도 세상에는 안 착한 사람도 많으니깐.)


인간적인 예후를 판단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진료 전 대기하는 모습에서도 볼 수 있다.
간호사가 환자를 안내해서 배드에 누워서 기다리라고 하고 침맞기 좋도록 바지를 걷도록 한다.

그런데 꼭 가보면 누워있지 않고 나를 서서 기다리는 환자가 있다. 이거 좀 미안하기도 하고....
대부분 이런 환자의 예후도 아주 좋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절한 공간이 중요하다. 연인은 10센티, 동료는 1미터. 가족도 70센티 이상 접근하기 힘들다.
진료할때도 적절한 거리로 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환자 옆에 바짝 붙어서 팔짱을 끼고 듣거나
배드위에 깍지끼고 턱을 받친채로 눈은 말똥말똥 ㅋㅋㅋㅋ 그 자세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듣거나...
가운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넣고 배드에 기댄 채 이야기를 듣는 게 내 버릇이다.


최근 예후 좋은 환자들과 진료 중에 작별인사를 하는 경우가 늘었다.

"원장님 저 이제 직장 옮겨서 못 다닐 것 같아요. 소견서 한장만 써주세요"

챠트를 뒤적이며, 그 동안 치료받은 과정들을 되새겨보니 참 정이 많이 든 환자다. 더 잘 치료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소견서 말미에 관례적으로 고진선처라는 말을 덧붙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저께에도 작별의 시간이 있었다.

"원장님 저, 이제 파리로 다시 돌아가요. 벼룩시장 좋아하세요? 파리 오시면 저희 가게 꼭 오세요. 앤틱 가게에요"

"아, 저....몬 가요 ㅋㅋㅋ 나중에 돈 많이 벌면 한번 갈께요. 조리 잘 하시고 궁금한 점은 언제든지 국제전화로!!"

요새 부쩍 출국하는 환자들이 많다.




오늘 있었던 작별의 시간은 좀 무거웠다.

"원장님, 저 이제 못 나와요"

"네? 왜요?"

"............"

"어디 가세요?"



"오늘 검사결과가 나왔는데 자궁암이래요"


".........."

서로 말이 없다.
뭐라고 위로를 해야할지를 몰라서 묵묵히 침만 놔주었다.

"수술하면 옆에서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데, 가족 중에 누가 있으세요?"

"없어요"



".............."

또 할 말이 없다. 젠장.




"항암 하실때는 잘 드셔야 해요."



"제가 잘 챙겨먹어야죠"



"..........."



아주머니가 울려고 한다. 서둘러 침을 놓고 '의학적인 정신적 지지와 격려'의 절차에 들어간다.

"괜찮아지실거에요. 용기를 내시고, 자신감을 가지시면...."  (공허한 말들이 마구 튀어나온다)




아주머니를 접수대까지 바래다주었다. 승산이 희박한 전장을 향해 떠나는 병사를 배웅하는 것처럼...

접수대에 돈을 올려놓고 아주머니가 웃으면서 말했다.

"수술하고 다시 올께요"


"네. 꼭 오세요. 무릎 아픈거 마저 치료해야죠"

(오늘 암 진단 받은 환자에게 무릎이 안중에 있을리 없겠지만...)







만남과 헤어짐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공간. 인간적으로 예후가 좋은 착한 환자가 많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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