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원장이 되다

Essays 2010. 7. 19. 10:03

반응형
내 동기 중에 이상한 놈들이 많다. 대표적인 인물로 전장훈이라는 놈이 있는데, 이 녀석이 본3때부터 내 인생에 끼어들기 시작하더니 아직까지도 질척질척거린다.

강의실에 분단이 3개가 있었는데, 1분단은 모범생들이나 형님들, 여학생 위주로 채워지고 2분단에서 3분단으로 갈수록 자유로운 영혼들이 앉았다. 나는 2분단에서 3분단 넘어가기 직전 자리에 즐겨 앉았는데...3분단 J리거들과 친하지는 않았다.(편집자주: J리거라함은 김씨의 동기들 중에 정용재 전장훈 장재윤 장재식 정윤관 조호직 조성규 전권수 등의 아이들로 출석 부를때 얘네들 몽땅 다 결석하여 교수를 공황에 빠뜨리는 짓을 밥먹듯하던 씩씩한 아이들을 칭함.)

어떻게 하다가 인생이 꼬이는 바람에 전장훈이가 본3때 양재동에서 외로이 지낼때 그의 자취집을 드나들기도 하고, 그가 끓여준 맛없는 꼬리곰탕을 먹다가 토하기도 하고...그렇게 별로 안 친하게 지내다가 본4 겨울, 그때 국시가 한달인가 남았을 때였을 거다. 전장훈이가 찾아왔다.

"bk야 나 국시 어떡하냐?"

라며 막 울려는거다. 그래서 내가 최단기간 내에 국시합격할 수 있는 비법을 전수해주었다.



"의련 의맥 중심으로 열심히 봐"

ㅋㅋㅋㅋㅋㅋㅋㅋ 수능치는 애한테 맨투맨 기본부터 열심히 보라는 말과 같다!


그런데 한달 후 대참사가 일어났는데, 이 전장훈이라는 놈이 나보다 성적이 더 높게 나온거다.
한의사국가시험의 공신력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추락하다니!
이 사건으로 이후 약 8년간 전장훈이가 국시성적 이야기를 꺼내면 나는 이상하게 막 의기소침해진다.


아무튼 졸업 직후 악연은 계속되는데, 전장훈이가 어느 한의사 모임에 나가서 화장실에 갔다가 어떤 선배랑 같이 오줌을 누는 바람에 급작스럽게 취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성품상 오래 일하지는 못했고, 그 자리를 나한테 물려주고 이 녀석은 공보의 가버린거다.
막상 그 곳에 출근을 해보니, 전장훈이가 얼마나 지각하고 농땡이를 부려놨는지 일하는게 너무 편한거다. 야, 그래서 어른들이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하셨구나.

그리고 그 이듬해 내가 공보의 배치받던 날, 그날 아침 그냥 아무 생각없이 전장훈이한테 전화를 한통 했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

"야, 칠곡군 와라. 여기 분위기 너무 좋아. 후회하지 않을거야. 널 위해 좋은 자리 만들어줄께."

난 당시 경북 공보의 54명 중에 1순위라서(토너먼트 시험에 엄청 강한 모습 ㅋㅋㅋ) 도내 아무데라도 갈 수 있었는데, 결국 전군이의 꼬임에 넘어가서 칠곡군을 써내고 말았다.


그때 해욱이형이 도청에서 나를 데리고 장훈이가 일하는 지소까지 데려다주었는데, 그 곳은 햇볕이 잘 들지 않는 마추픽추같은 곳이었다.

'이런 곳에 사람이 살면 우울증 안 걸리나?'
(나중에 알려진 바로 그 동네 예비군 동대장의 하루 일과가 바로 멧돼지사냥을 주로 한다고 했다.)

그리고 3일 후 보건소로 출근해서 상견례를 하는 자리에서 사납게 보이는 보건소 계장이 이렇게 말했다.

"어이, 공보의들은 다 군인이야. 이제 내가 다 전화해서 지각하는 놈들 다 군대 보내버릴꺼야!!"

"뭐요? 계장님. 지금 우리랑 뭐 하자는 겁니까?"

"야, 너희들 다 내 아랫사람이야. 근무 똑바로 해"

서로 욕만 안 했지, 이건 최악이다. 전장훈이 이 자식을 그냥!! 나중에 전군이 나한테 공식사과했던가?? 내가 이 놈 때문에 집에서 1시간 반이나 떨어진 칠곡에 와서 밤마다 황소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얼마나 많은 만두를 녹여먹으며 외로움에 울어야 했던가!
특히 전장훈이와 같이 밥먹으려고 실컷 저녁밥해놓고 오고 있냐고 전화해보면 아직 출발도 안 했다. 두 지소 간의 거리가 약 1시간인데...!!! 망할 놈.


그렇게 장훈이랑 칠곡군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내는데 이 녀석이 네이트를 하면 어느날부터 나를 고노레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내 이름을 거꾸로 하면 성병인데, 여기서 우리는 전장훈씨의 상상력의 한계를 볼 수가 있다.. (참고로 나의 초딩때 절친은 김교성이라고, 왜 내 친구들 이름은 다 이런걸까? ㅋㅋㅋㅋ)

아무튼 전군이가 고노레아라고 부르기 시작한 이후로 동기들이 나를 그냥 '고노'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나도 그 분위기에 전염되어 내가 스스로를 고노라고 자칭하게 되었다. 발음하기도 쉽다. 'ㅇ' 받침이 두개 들어간 이름을 발음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대표적인 이름으로 이용양이 있다. 'ㅇ'이 무려 5개.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ㅇ'이 많이 들어간 이름을 본 적이 없다.

어느날, 강기완이네 한의원에 전화를 했더니 간호사가 받길래

"저 포항에 고노 원장이 전화왔었다고 전해주세요"라고 메모를 남겼는데

그 간호사가 강군에게 전해준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포항 권호 원장님 전화옴]






방금 조호직이가 네이트온에서 말을 건다

'고노 하잉'


내 이름을 돌려줘...!  이거뜨라..ㅠ.ㅠ
반응형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