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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해보고싶다는 나의 어렴풋한 소망을 갈기갈기 찢어서 쓰레기통에 쳐박아버린 책이다. 그동안 수많은 자전거 여행기를 읽었지만, 이 책만큼 리얼하게 묘사한 건 없었다.

이 남자의 세계여행은 크리스마스 일주일전 애인한테 차이는 사건이 발단이 됐다. 그로부터 만 4년 동안 페달질만 했다고.
여행기를 쓸때 사람들은 '시간의 순서'라는 암묵적인 틀에 스스로의 기억과 사고를 끼워맞추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은 매우 독특한 포맷으로 글을 풀어나간다.

50가지의 질문에 대한 답변 형식. 거기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즉 글을 쓸 줄 알고 독자로 하여금 공감의 공명을 불러일으킬 줄 알고, 무엇보다 따옴표를 적절하게 쓸 줄 안다.

멋진 놈처럼 보이지만, 우리랑 다를 바 없는 고민을 한다.

"아, 내가 지금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내 또래의 여자들은 모두 결혼했거나 이혼했거나, 아이를 키우고 있거나 임신한 상태일텐데...."

저자는 태국과 이집트에서 젊은 현지 여성으로부터 '섹스'와 '미국 시민권'을 결혼이라는 폼나는 형식으로 거래하자는 제의를 수도 없이 받았다.

"삶은 어떤 면에서 보면 선물이다."는 말은 맞는 것 같아. 이 녀석처럼 배나오고 못 생긴 아저씨가 단지 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실제로 미국인 기준으로 보면 가난한데도 불구하고) 그런 멋진 여자들로부터 구애를 받다니!!


그동안 세계여행기를 읽다보면 좋은 이야기, 낭만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한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는 진짜 더러운 이야기, 읽다가 아예 덮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역겨운 이야기도 많이 실려있다.

'아니 자전거 여행이 이렇게 힘든 거였어?'

아후, 난 그럼 안 할래. 그냥 다혼 해머해드 같은 거 한대 사서... 잠깐 잠깐씩 단거리로 다닐래..
이거 완전 세계명작전집을 1권부터 100권까지 순서대로 읽는 것 같잖아!!

하긴 약간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는 게... 자전거를 한 100km 정도 타다가 자동차를 운전하게 되면 오르막에서 깜짝 놀란다. "아니 엑셀을 이렇게 살짝 밟았을 뿐인데 이런 오르막을 이렇게 쉽게 오르다니!!!" 그리고... 바이시클 라이더들이 절대 공감하는...

"물의 소중함!!"

깨끗한 화장실. 음식물로 가득한 냉장고. 뜨거운 샤워물. 텔레비전과 인터넷...
우리는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으로 (불평은 늘어가는데 반해) 8단합체를 하고 있을지도 몰라.


세계일주라는 대위업(?)을 달성하고도 불안과 우울과 방황을 거듭하던 저자가 마지막으로 쓴 문장은

인생에서 가장 큰 즐거움은 인생을 즐기는 것.

(다음에 또 꺼내 읽어보고 싶은 독특한 자전거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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