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김구영

Essays 2010. 9. 12.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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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1993년 12월 하순이었을 거다. 의대 간다고 원서 사놓고 어디로 갈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신여사가 이러는 거다.

"구여이한테 전화나 한번 해봐라"

김구영.
형님의 할머니와 우리 할아버지랑 남매지간이니깐 나랑 6촌지간이다.
아마 그때 전화를 안 했다면 지금쯤 나는 어느 동네에서 내과나 소아과 하고 어쩌면 전투력 높은 '한까'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ㅎ

"형님, 한의학 그거 비과학적인 거 아닙니까?"

이게 나의 첫 마디였다.

1993년은 내 인생의 절정기였다고 보면 된다. 거침없었고, 무서울 것도 없었고, 내 머리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고등학교 교사보다 내가 더 잘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안하무인이던 시절 ㅋㅋㅋㅋㅋ

한시간 쯤 통화했었나. 형님은 무조건 한의대 가라. 나는 그 비과학적이고 고리타분한 걸 왜 하느냐. 한약방에 평생 갇혀지내는 거 아니냐. (그땐 한약방이랑 한의원도 구별 못하던 시기 ㅋㅋㅋ)


결국 형님이 승리했다.

예과 1학년 여름방학 때 울릉도 놀러갔다가, 형님 본가에 인사하러 갔는데, 그날 저녁 우연히 만났다.

"그래, 1년은 놀고 예2 때부터 의서 좀 봐야지."

"네."



라고 대답만 했다. 의서는 무슨...ㅋㅋㅋㅋ 내가 왜 한의대 왔을까하는 생각으로 거의 2년을 보낸 것 같다 ㅋㅋ
(실제로 bk박사님은 재학시절 7년간 모든 양방과목을 올A+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왜냐면. 양방은 그냥 다 외우면 되니깐...양방약리학 병리학 이런건 정말 공부하기 쉬웠다.. 양방수업은 깔끔했으며, 시험은 더 깔끔했다. 근데 한방은 작가가 되어야 했다. 소설가. 수필가.....이해가 안 되는데 뭐라도 써야만 하는 고통. 실제로 한의학개론은 C+을 맞고 그나마 재시는 면했다.)

어떻게 하다보니 나도 졸업이라는 걸 하게 됐다.


그리고 형님을 찾아갔다. 아는 게 없었으니깐.

그때가 2001년 봄이었나. 내가 (한상구씨와 같이) 군대 현역 가려고 맘먹고 있던 시기였다. 형님 한의원이 그때 구리시 돌다리 시장인가에 있었던 기억이 난다.

"청량리에서 000번 타고 돌다리사거리에 내려서 시장 안쪽으로 들어오면 0000 2층에 있다"


시장골목을 헤매다가 겨우 찾아갔는데, 한의원 문을 여는 순간 충격에 빠져버렸다.

(오늘 이글을 쓰는 이유가 바로 이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들어가는 순간 느낀 것.

'앗! 이건 한의원이 아니고 그냥 원룸인데???????'

'한의원이 너무 작아'(사진이 없어서 잘 전달이 안되는데, 햇빛도 잘 안 들어오고 진짜 대학생 원룸 분위기!)

대기실 쇼파도 3명 밖에 못 앉고, 거기다가 쇼파가 굉장히 오래 돼 있었고 그나마도 북 찢어져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허름할 수가 있지? (당시에도 형님 이름이 여기저기 조금 나던 시기였음.)

거기다 더 충격적인 것은 원장 책상 위에 가득 쌓여있는 각종 판본들의 동의보감들.
그 중 남산당 원본동의보감은 거의 걸레 수준이었다. 빈틈없이 빼곡하게 필기돼있는데다 얼마나 들춰봤는지 다 떨어져서 거의 낱장으로 표지 사이에 종이들이 얹혀있다(!)고 봐야 할 정도로...

챠트도 깔끔했다. 왜냐면 별 내용 없고 그냥 동의보감 페이지만 적혀 있는 경우도 있었다.
환자가 오면 증상을 듣고 고개 좀 끄덕여주다가 동의보감을 편다. 한번 폈을때 그 환자 증상이 실려있는 페이지가 나와야 한다고. 그리고 그 페이지 번호만 챠트에 적어놓는다고.

접수대도 가관이었다. 간조는 약 달이고 전화받는다고 정신없고, 약박스가 어찌나 많이 쌓여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인지부조화의 상황!


그날 형님이 참치를 사주시고 던킨도나스에 가서 커피 사주시면서 딱 세가지 이야기를 하신 기억이 난다.

"한의학 전공 외의 책을 많이 읽어라. 의사가 전공책만 봐서는 안된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빚 무서운 알아야 한다. 빚내지마라. 작게 개원하고. 욕심내지말고."

"군대 가기전에 동의보감 열번 읽고 가래이."


불행히도 세가지 다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 내가 그 작고 허름한 '원룸한의원'에서 본 충격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한의원에서 중요한 게 인테리어가 아니구나. 원장실도 없는 저런 허름한 곳에서....형님은 아무 개의치도 않으시구나. 거기다 동의보감이 저렇게 걸레가 될 수 있다니...(난 그 이후로도 그렇게 지저분하게 작살난 동의보감은 본 적이 없다.) 환자 증상 듣고 한번에 해당 페이지를 펴다니....(이런건 생활의 달인에 나와야 하지 않나?)


공보의 갔다 오고 나서 다시 찾아갔다. 서초동으로 이전하셨다고 해서 갔더니......
 


또 한번의 충격을 받고 말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이런 접수대가 나타났다.


접수대도 그렇지만 리셉션하는 간조의 미모가 강남 성형외과 코디들 싸다구 날릴 정도였다.




침구실 모습이다. 이태리에서 날아온 배드. 아마 우리나라 한의원 배드 중 최고가이지 싶다.
침은 부원장님이 놓으신다. 이런 배드가 방마다 딱 1-2개만 있다.




원장실 모습이다. 아무것도 없다. 동의보감 몇권만...


bk박사님은 빙빙 돌려 말하는 것보다 단도직입적인 거 좋아한다.

"형님, 구지 이렇게 럭셔리하게 오픈하신 이유가 있나요?"

"우리나라 최상류층은 우리나라 병원 안 간다. 양방이든 한방이든 거의 약도 안 먹고 아프지도 않아. 가끔 건강검진이나 받지. 그런 사람들도 한약 먹고 병 고치고 해야지. 누군가 해야할 일이고."


그 후에 내가 개원할 때 꽃 보내주시고, 책 나오면 책도 싸인해서 보내주시고, 환자 몇명 보느냐고 전화도 가끔 주셨는데...

개원할 때는 연락드렸는데, 불나고는 연락 안 드렸다. 일부러 연락 안 드린 분이 딱 두분 있는데-그 분들 모두 나중에 그걸 알고 굉장히 화를 내셨다- 한분은 형님이고(이야기하면 금전적으로 도와주실 게 뻔하니깐), 다른 분은 길건너 선배님(그 선배님께서 점심때마다 짜장면 사주고 임상특강을 해주신 김원장님이시다. 그때 한참 불나고 소송에 휘말렸는데 하필 소송 걸어오려는 당사자와 선배님이 친하시다는 소문이 들려 찾아가면 괜히 중간에서 입장 곤란할까봐 안 갔는데 나중에 엄청 혼났다.ㅋㅋ)

지금까지 워낙 내 실력이 개발새발이라 어디가서 형님이랑 안다고 이야기도 못했다 ㅋㅋㅋ 괜히 형님 욕멕일까봐...그래도 내가 20대를 한의대의 바다에 허우적거리게 만들어주신 분이시고, 구리돌다리에서 보여주신 충격이 워낙 커서 그것도 소개할겸 염치불구하고 올린다...
원래 형님집안이 형제가 많고(그 중 한분은 스님되셨다) 비하인드 스토리도 많은데.... 어느 날 포항에 일이 있어서 나오신 형님 모친께 대충 형님이 지금 이러이러하게 잘 나가신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처음 듣는단다.  집에도 전혀 이야기를 안 하신거다. ㅋㅋㅋ
형님께 개인적인 바램이 있다면 이제 골프웨어 좀 그만 입고 진료하셨으면 ㅋㅋㅋ 너무 자유롭게 진료하신다. 막힘이 없고... 진짜 프로선수의 모습.



지금까지 울릉도에서 태어난 한의사가 3명있다.

김구영
bk
태양목욕탕집 아들(누군지 성함은 잘 모른다.)


언젠가 다시 개원한다면 또 찾아가뵈야지. ㅋㅋㅋ 그땐 또 어떤 충격이 기다릴짘ㅋㅋㅋㅋ<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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