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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부 이거 먹으면 진짜 죽어요."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것처럼 이모부가 봉지를 뜯어서 입으로 조금씩 들이킨다.

배는 이미 호피티 말처럼(어떤 장난감인지 궁금하시면 검색해보시라.) 부풀어 있다. 지금 이모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복어를 통째로 달인 전탕액이다. 얼마전 구룡포에 모업자가 말기암에 특효라고 복어독을 약하게 달여 먹으면 몸안의 면역세포들을 활성화시켜서 암을 고치는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놈(!)에게 무려 50만원이나 주고 한박스를 사온 것이다.

이모부가 나를 찾아온 것은 그 몇주 전...그때 내가 불난 직후라서 정신없이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며 하루에 전화를 수십통씩 받으면서 수습하러 다닐 때였는데, 어머니가 빨리 좀 와보라고 해서 덕수동에 갔더니 얼굴이 까만 왠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어, 김원장 왔나"

누군지 잠깐 못 알아봤는데, 이모부였다. 몇달전에 한의원에 오셨을때는 멀쩡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5월에 간암 진단을 받고 서울대에서 색전을 하다가 그만 터트려버렸다는 거다. 온동네 다 퍼지고 결국 다 포기하고 포항에 내려왔는데, 요즘 허리가 너무 아파서 (그 전에도 침 맞으러 오신 적이 몇번 있었다.) 예전에 침맞았던 기억이 나서 들렀다는 것이다.

근데 문제는 내가 하던 한의원이 불타버렸다는 것이다. 침맞을 공간이 없는 것.

그래서 근처에 개원해 있던  H형한테 전화했다.

"형, 배드 좀 잠깐만 빌려주심 안되나요? 이러이러해서 이런데"

그러자 H형이 좀 어렵겠단다. 원장 아닌 사람이 와서 침을 놓는게 다른 환자들 보면 좀 그렇다고...
뭐,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내한테 그런 부탁해왔더라면 난 흔쾌히 내 배드를 내줬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이모부 보고 집으로 가자고 했다.
아파트에 도착하니깐 이건 뭐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엘레베이터가 수리 중이다.
우리 집은 7층.
건강한 사람도 7층을 걸어서 올라가면 다리가 휘청거린다. 이모부가 그래도 올라가서 침 맞고 가겠단다.
2계단 올라서서 1분 쉬고 그러길 한시간 쯤 해서 7층을 올랐다.

이모부 침놔드리고 기계면 집까지 태워다 드리고 시간나는 틈틈이 찾아가서 침도 놔드리고 했는데, 결국에는 괴물같이 커지는 창만을 컨트롤 할 수가 없었다. 모든 복부 장기들이 기능을 서서히 멈춰버리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파도를 손바닥으로 막고 있는 느낌. 이모부는 거의 하루종일 두손으로 배를 받치고 살아야햇다.

이모부는 끝까지 복어독을 입에 놓지 않고 계셨다. 반드시 살아서 암을 물리치겠다고. 그 복어독에 생명수라도 담긴 양. 이모부는 아직 해야 할일이 너무 많았다. 이모부 집에 가면 서울대교문을 본따 만든 나무대문이 있다. 이모부 아들이 서울대에 입학하고 너무 기뻐서 기념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시골집을 사서 전원주택 짓고 보일러도 직접 깔고 황토방도 만들고, 텃밭에 정원, 거대한 축사까지, 여러모로 벌려놓을 일이 많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모부가 성모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래서 이드형님네 커피집에 가서 카페라떼 두잔을 사서(케잌은 형이 공짜로 줬었다. 그때 이드 형도 건물주한테 쫓겨나서 대이동 구석에서 절치부심할 때)

"아이구 김원장이 고급커피를 사왔네."

(이모부가 목숨이 달랑달랑하는 그 와중에 내가 어서 빨리 재기하라고 자기가 아는 사람들에게 수소문해서 한의원 자리 봐준다고 어디어디 찾아가서 누구를 만나보라고 주선까지 해줬었다.)

아무튼 커피 두잔 사드리고 서울 올라온지 얼마 안돼서 이모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포항까지 내려가는 와중에 분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모부에게 복어독이 좋다고 50만원받고 팔아먹은 구룡포의 그 개새끼한테 너무 화가 나는 거다.

살고싶다는 욕망 때문에 복어독까지 들이켜야만하는 환자의 약한 마음을 이용해서 지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고 업을 쌓는 개새끼.

근데 이런 개새끼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 거지.
집안에 암환자 한번 생겨봐바. 온갖 친척들이 어디서 주워들은 되도 않은 이야기에 온갖 음식물과 약을 다 사들고 찾아온다. 그렇게 밀물처럼 한번 들이닥치고 난 후에 그들이 떠나고 나면 쓰잘데기 없는 파우치가 집에 가득하다.
환자들은 뭘해야할지를 모르고, 뭘 먹어야할지를 모른다. 어디다가 물어봐야하는지도 모른다.

원래 이런 정황에는 국가로부터 면허를 받은 의료인들이 나서서 가장 적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런 유해한 정보들로부터 환자들을 격리하고 보호해야하는데, 한의사들 중에 이런 정보를 찾아서 분류하고 데이타를 찾고 암환자들 곁에서 그들이 허무맹랑한 민간요법에 쉽게 희생되는 것을 막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있었나.

몇년전에  bk박사님이 이런 현실을 개탄하고 암환자들을 위한 올바른 민간요법 정보를 제공하자는 취지의 움직임에 단 한명의 한의사라도 동조한 적이 있었나. 거대한 직무유기!
적어도 협회나 한의과대학 어느 작은 공간이라도 암환자들의 투병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인력과 공간이 있어야 하지 않나? 한의사들조차도 지인이 암에 걸리면 빈의협 고상방에다 물어본다. 이게 말이 되나. 환자들은  오죽하겠나.

오늘 본 sbs 뉴스추적에 개새끼들이 여럿 나왔다. 그 개새끼 중에는 안면이 눈에 익은 개도 있고... 어떻게 저런 개새끼들은 처벌을 받아도 또 쳐나오고 죽지도 않냐...

실제로 김남수같은 오리지날 순도 100%의 돌팔이보다 더 무서운게 면허증 갖고 있는 작자들이다. 얘들은 가려내기가 쉽지 않고, 이미 국가로부터 종이를 받아버렸기 때문에 솎아내기가 너무 어려운 것이다.
얘들을 솎아내고 한의사들 집단이 오염으로부터 생존(!)하려면 분리수거에 나서야 한다. 내가 썩은 손가락을 내 손으로 자르지 않으면 결국엔 팔을 잃게 된다는 것을 왜 모를까.

아, 근데 얘들을 어떻게 분리수거해야하나. 진짜 답 안 나온다.


아까 낮에 무우 위에 침놓는 빵상아줌마를 감옥에 보내야 하지 않냐고 하니깐 참치원장이 이렇게 말했다.


"그 아줌마 서커스단에 보내야 하는거 아이가?"


아, 내가 어쩌다가 스무살때 원서 한번 잘못 쓴 죄로 이런 우사를 당할꼬...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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