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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에서 소처럼 일할 때다.
어느날 보험회사 직원이 한의원으로 찾아왔다. 누구씨의 챠트를 한번 보자고 한다. 꺼내줬더니 이렇게 적혀있었다. 견비통으로 치료받은 40대 중반의 남자 환자였는데, 챠트 침구처치노트 귀퉁이에 '요즘 우협이 아프다.'라고 적혀있었다. 내원기록은 하루.

보험회사 직원의 방문목적은 이 환자가 우리한의원에 왔다가 얼마 후 병원에서 간암으로 사망했고, 유족들에게 그간 병원에서 진료받은 것을 보상해주기 위함이었다.

그땐 정말 햇병아리 한의사였는데 그 환자가 내원한 날이 하루뿐이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계속 한의원 다니고 약 먹었다면 내가 그 뒷감당을 어떻게 했을까.
그땐 한참 오행침에 빠져있어서 내가 계속 치료했더라도 그 남자의 협통은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일시적으로 진통은 되겠지만. 암종이 사라지지 않는한 그의 협통은 원천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흔히 협통으로 내원한 환자를 볼때 한의사는 다섯가지로 본다. 간화, 담음, 어혈, 기울, 식적. 동의보감에는 여기에 추가되어 적취와 비기가 잠깐 언급되어있지만, 치법을 볼때 현대의 암과 연관시키기는 어렵다.

간암 등의 구조적 병리요인으로 인한 협통에 한의학적 처치가 할 수 있는 역량에는 한계가 크다.
한의사들에게 임상메뉴얼도 없지만, 메뉴얼도 없이 진료한다는 것이 쇼킹하겠지만, 사실이다. 혹자는 동의보감이 메뉴얼이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텍스트북과 메뉴얼을 혼동하는 것.


그렇다면 한의학은 도태되어야하나? 그렇지는 않다.
이것저것 다 검사해봐도 다 정상인데 이상하게 옆구리가 계속 아프다. 그때는 내과의사도 간화, 담음, 어혈, 기울, 식적을 고려하여 한의원으로 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인은 생각하지만, 그런 내과의사가 우리나라에 존재할 수 있을까. 모든 인체 내의 통증은 '물질적 변이'에서 유발된다는 양방의 도그마를 깨뜨릴 왕따의사가 존재할까.

한의사가 처치해야할 협통이 있고, 장준혁과장이 처치해야만하는 협통이 있고, 내과의사가 처치해야만 하는 협통이 있다. 지금도 물론 환자들이 스스로 분류되어 처치된다. 하지만 좀 더 치밀한 적응증 연구가 필요하다. 모든 협통이 전부 5카테고리에 속하지는 않지않은가.

한의원에 가야할 협통은 무엇인가.

1.구조적인 병리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협통.
2.구조적인 병리원이 제거되었는데도 2주이상 소실되지 않는 협통


이 말은 곧 한의원에서 처치하다가 호전되지 않는 협통은 반드시 다른 병리적 원인이 없는지 염두에 두어야한다는 것. 이것은 두통, 복통도 마찬가지.


한의학임상을 한줄로 표현하자면
지도없이 정글에 버려졌다고나할까. 헤매다보면 선배의 발자국이나 옹달샘을 발견하기도 하겠지만, 만명의 원주민이 제각각 아마존을 헤매는 것보다 한장의 지도가 더 절실하다.

그런점에서 곧 출범할 대한임상한의학회의 의미는 크다. 늪에 빠진 공룡같은 대한한의학회에 맞서는 조직이랄까.
곧이어 발표할 한의임상메뉴얼도 기대만발. 양방꺼 짜깁기해서 펴내는 한방과별 편람과는 비교도 안 된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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