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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6일 김씨가 노무현 대통령 추모사진전을 찾았다.
다음은 김씨가 직접 촬영한 노무현의 선거벽보 시리즈
1988년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의 제의로 정치에 입문, 부산 동구에서 제13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됨.(사진전에 가면 88년 당시 노무현이 사용했던 명함을 재판하여 나눠준다.)
여기까지는 그냥 잘나가는 변호사출신 국회의원일 따름...그리고....이런 노안이 있을 수 있나..ㅋㅋㅋㅋㅋ
1990년 통일민주당·민주정의당·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에 대하여 '부도덕한 야합'이라 비난하며 정치적 후원자였던 김영삼과 결별하고 민주당 창당에 동참하였다. 이때 따라온 사람이 김정길이 유일함. 김정길은 노무현 옆 지역구로 나중에 선거구가 통합되면서 노무현을 종로로 밀어올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로서 정국은 공룡같은 민자당(김영삼, 김종필), 평민당(김대중), 꼬마민주당(노무현 외 떨거지들)로 정리된다.
(그때 노무현이 민자당 갔으면 부산시장은 3판은 해먹었을 거고...지금쯤 한나라당 대선후보군 중의 1인이었을 터...)
이듬해 통합민주당 대변인으로 활동하였으며,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함. 아래가 그 벽보임.
1992년 총선 낙선.
역시 김영삼의 파워는 컸다. 김영삼이라는 큰형님이 사라지자 노무현은 그저그런 패기어린 초짜 정치인일뿐.
90년 3당 합당 직후부터 영남은 야당이 아니라 그냥 퍼런 지역으로 자리매김했다. 퍼런 작대기만 보면 당선!!
원래 대선 직전에 군소정당들은 모두 통폐합되는 전통이 있다. 꼬마민주당도 예외가 아니었다.
꼬마 민주당도 92년 9월 평민당과 합당하고 통합민주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그 해 대선에서 김대중이 낙선하고 김대중은 정계은퇴를 선언한다.
노무현은 1993년 통합민주당 최연소 최고위원이 되었고,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열었다.
이 연구소에서 이광재, 안희정과 함께 배고픈 시절을 보낸다. 이 두사람은 20년 뒤 도지사에 나란히 당선된다.
안희정이 그 시절 이야기를 쓴 책을 읽어봤는데, 노무현이 참 인복은 많다는 생각. 그만큼 덕이 있었기에 모을 수 있었겠지만.
김대중이 사라진 정치권.
지역주의 청산과 정치적 재기를 노리던 노무현 1995년 첫 부산시장 선거에 도전했다.
정당마크를 잘 보라. 깨톨만한게 민주당이라고 써놨지만 이때 영남에서 민주당이 얼마나 선전했냐면 당시 실제로 포항에서 박기환 시장이 민주당 간판으로 당선됐었다.
노무현도 부산시장에 승산 있다고 자신했었다. 지역주의가 사라지고 민주당이 전국정당이 되리라 믿었다.
그때 노무현에게 서울시장 부시장후보로 나가보라고 하는 제의가 있었다.
당시 서울시장 후보는 조순.
산신령할배 인기는 소녀시대에 맞먹을 정도였고 나가기만 하면 당선!
그런데 노무현은 안 나갔다.
그리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아, 시발 노무현만 바라보는 보좌관이 몇명인데, 당선만 되면 걔들도 다 월급나오는 자리 꿰차는데...
야, 부시장 하다가 서울시장 나가면 되잖아!!!!!!!!!!!!!!!!!형아!!!!! 왜 그래!!!!!!
내가 노무현 보좌관이었어도 미치고 팔짝 뛰었을 꺼다.
그때 노무현은 이런 말을 남기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민주주의라는 게 내가 잘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찍을 칸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리고...그때 영국에서 디제이가 돌아왔다. 시발. 참 타이밍 잡는데는 귀신이다.
지역등권론. 즉 민자당만 해먹지 말고 전라도도 같이 해먹자!! 우리도 해먹을 권리가 있다.
이 논리는 부산에서 분투중이던 노무현의 귀빵맹이를 사정없이 갈겼고
결국 또 지역주의 바람이 불었다.
그때 민주당은 37%의 득표를 했다. 그리고 노무현은 또 낙선한다. 총선에 이은 두번째 낙선.
그리고 호남바람 일으키기에 성공한 디제이는 서울과 호남에서 석권한다.
그는 1995년 가을 복귀한다. 그리고 민주당을 깨버린다.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지만, 노무현은 김대중을 비난하고 따라가지 않는다.
대부분 의원들이 국민회의로 갈아탔다. 노무현만 빼고.
그리고 한해가 지나...총선이 다가왔다.
그리고 다시 도전.
이번엔 민주당 대표주자로 종로구에 출마한다.
민자당의 후신인 신한국당, 김대중의 국민회의, 그리고 노무현의 민주당.
아이구, 이 어리석은 사람아. 국민회의 간판만 달았어도 당선인데...
넥타이 색깔봐라. 아이쿠야.
1996년 15대 총선에서 민주당 간판주자로 종로에 출마했지만....
신한국당 이명박, 국민회의 이종찬에 이어 3위로 완패한다.
위 벽보의 정당명을 잘 보시라...기억도 나지 않을 민주당 마크다.
이때는 의원 빼가는게 엄청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민주당으로 당선된 15명중 5명이 어느날 갑자기 신한국당에 입당해버리기도 했다.
집이 가난하면 부부싸움이 잦은법...결국 민주당도 내분에 휩싸이고...
노무현은 민주당에서 짤리다시피ㅣ 한다. 그리고 지역주의 타파를 내세우고 김홍신, 제정구, 이미경, 이부영, 박계동, 이철 등과 통추를 결성한다.
김영삼 김대중을 영원히 따라가지 않은 찌짐쪼가리들이 결성한 정치단체.ㅋㅋㅋ 나는 이 시기 통추가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진보 인사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해에 대선이 있었다.
당시 신한국당 이회창의 대세론이 판을 치고 있었고, 김대중은 마지막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통추 내에서도 양쪽으로 갈렸다.
결국 김홍신, 이철, 이부영은 신한국당으로....김원기, 이미경, 김정길, 노무현은 김대중으로...
노무현은 1997년 11월. 대선 직전 전격적으로 국민회의에 입당한다.
자신이 부산시장 할때 그렇게 고생시켰던 디제이가 만든 당에... 고개 숙이고 들어갔다.
그는 깨끗이 패배를 인정할 줄 알았다. 지역주의에 대항한 그의 분투는 훌륭했지만 실패했고 노무현은 인정했다.
나는 2002 대선보다 97년 전라도당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하고 있던 국민회의 입당을 결정한 노의 결정이 더 대단했다고 본다.
그리고 김대중이 대통령 되고 난 이후 1998년 이명박은 노무현에게 재기의 기회를 가져다준다.
선거법 위반으로 인해 후보 사퇴를 한 것.
그래서 종로에서 보궐선거가 치뤄지고 노무현은 다시 도전한다.
그런데 아래 벽보를 잘 보시라.
국민회의 간판.^^
거대정당으로 가니 벽보부터 다르다. 얼굴도 88년보다 더 젊어보인다. 포토샵 마사지를 받았나보다.
그는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한다.
1988년 당선되고 무려 10년만에 당선이다. ㅠ.ㅠ
그리고 당선된지 6개월만에 노무현은 다음 총선엔 부산에 내려가겠다고 선언한다.
아니!! 이 무슨 ....!! 탄탄대로를 걷어차고 사지로 내려간다니...노망났나. 아이구 두야...
(유시민이라면 만약 종로구 국회의원하다가 경주에 출마하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난 절대 불가하다고 본다. 유시민은 편의점 알바가 어울리는 계산에 능한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약속대로 노무현은 부산에 내려간다.
2000년 총선 벽보....귀퉁이에 정당마크가 아주 작게 보인다.
원래 동구는 김정길 의원이 출마하였고 노무현은 강서을로 옮겨서 출마.
초반엔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했으나..
결국 허태열에게 개박살나고 만다.
총선에서 낙선한 노무현을 김대중이 보듬는다.
바로 해수부 장관으로 앉힌 것!
김대중이 차기 대권주자로 이미 이때 점찍었다고 본다.
그리고 2년뒤...
2002년 국민경선.
그리고 대선.
당선.
노무현은 총선에 5번 나와서 3번 떨어지고 2번 당선되고, 1번의 대선에서 당선되었다.
부산시장에도 한번 떨어지고...
승률로 따지자면 7전 3승(88년 부산, 98년 종로, 2002대선) 4패(92부산, 96종로, 2000부산 총선, 95부산시장)
지역으로 그의 궤적을 그려보자.
88부산-92부산-95부산 -96종로 -98종로 -2000부산 2002청와대
그는 96년도에 통합민주당 대표로 종로에 나올때를 빼고는 늘 부산맨이었다.
그는 인생을 통틀어 딱 3번 당선되는 기쁨을 가졌지만
88년은 김영삼의 후광이 있었고 98년은 김대중의 후광으로 당선된 것이었다. 치열한 접전 끝의 당선이라기보다는 그냥 김영삼, 김대중이 뱃지를 달아서 국회의원 자리에 거의 앉혀주다시피한..^^
어찌 보면 노무현 인생에서 진정한 선거승리는 딱 한번 뿐이다. 2002년 대선.
김씨는 노무현이 당선되는 그날밤, 감격했고, 한국이 마침내 일본, 중국, 그 어떤 나라도 능가하는 아시아 최고의 민주국가로 당당하게 반석에 올랐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기념으로 노무현이 텔레비전에서 당선소감을 발표하는 그 장면을 필름카메라에 담았다.^^)
이날 사진전에는 이런 사진이 붙어 있었다. 노무현은 그림이고 문재인은 실제 인물.
김씨가 생각하기에 가장 유력한 차기 대통령후보는 문재인이다.
이미 김씨는 노무현의 저서를 거의 다 구입해서 읽어본 적이 있다. 마누라를 팼다고 책에 쓸만큼 강박적으로 솔직했던 사람.
낙선 이후 궁핍한 생활 중 돈이 없어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야했고, 오죽 그 짓이 싫었으면 제발 국민여러분 기부금 좀 달라고 자기 책에다가 써놓았을까.
그는 명분을 지킬 줄 아는 의리의 부산 사나이였지만.
그와 동시에 일을 되도록 할 줄 아는 융통성 있는 정치인이었다.
그는 늘 일을 되도록 만들어냈다. 대우자동차였던가. 노조파업이 한참일때 노무현이 내려가서 해결했던 기억이 난다. 언젠지는 모르지만...
정몽준과의 단일화 역시, 결국 정몽준이 하자는대로 했다.(유시민이라면 절대 그런 통큰 물러섬을 보여줄 수 없다. 계산기 갖고 들러붙어갖고 지한테 뭐가 유리한지 엄청 두들겨댔을 테다. 그리고 유시민은 이렇게 말할테지. '공정하게 해야죠' 시장통에 가서 콩나물 값 깎는 이미지의 정치인.)
노무현이 만약 97년도에 김대중과 손잡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저그런 정치인 중 한명으로 지금도 살아있긴 할테다.
과거 자기가 비판했지만, 대의를 위해 물러설 줄 아는 인간.
사진전을 둘러본 김씨는 "퇴임 후 노무현은 그냥 시골 할배의 모습이네. 이 사람이 무슨 권력형 비리를 저지르고 큰 돈을 받아챙겼다고, 불러다가 수모를 주고 모멸감을 주었는가. 서거 당시 내가 공언한대로 삼세판 안티한나라 투표를 하겠다고 했고, 이미 1판은 지나갔다. 내년에 남은 대선에서 다시 한번 문재인 당선을 위해 한표 행사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진보고 보수고를 떠나서
1. 의리와 명분의 지사
2. 일을 되도록하는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정치인
3. 졌을 때는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고 솔직하게 잘못은 사과할 줄 아는 성인
이게 바로 노무현의 매력이고 후인들이 배울 점이다.
영원한 부산 사나이...
영원한 기호 2번....<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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