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백성을 만나다

Reviews 2011. 8. 9.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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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 사이에서 환자를 KBS(개백성), 통닭 등의 은어로 비하하는 경우가 있다.

분명 나쁜 일이다.




"선생님, 지금 이게 뭡니까? 물리치료하고 찜질하고 그런거 왜 안 해주는데요?"





오늘 오후 4시 40분 경 환자가 노크도 없이 내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정확히 25초 전에 침을 맞고 배드에서 내려온 환자다. 양말을 신자마자 내 방으로 들이닥친 것이다.

나도 벌떡 일어섰다.

"뭐가요?"

"아니, 이게 지금 침인가요? 원래 물리치료하고 찜질하고, 아픈데도 침맞고 그래야 하는거 아닙니까? 지금 이게 치료한 겁니까? 내 다리 지금 그대론데요?"

환자가 제자리 걸음을 하기 시작한다.

너 지금 침맞은지 30초 됐거든...아놔...(월드컵하던 2002년도에 수납하면서 다 안나았다고 지랄발광을 하던 아줌마 이래로 니가 신기록이다.)

"아니, 지금 이게 치료 다 한거냐고요? 그대로라고요! 그대로! 왜 물리치료는 안 해주나요?" 

오호라, 그거 때문이었구나.

"여긴 물리치료 안 해줍니다. 없어요. 침만 놓는 곳입니다."

"내가 몇년전에 왔을때는 물리치료 해줬잖아요! 왜 오늘은 안 해주는데요?"


환자가 핏대가 오른다.


엥?

"몇년전에 여기서 물치를 받았다고요? 한번 확인해봅시다"



환자를 데리고 접수대로 나가서 오래 일한 간조와 3자대면을 시켰다.

"문샘 여기 환자가 물치 받았다는데 전에 해준적 있나요?"

"아뇨, 저희 병원은 아예 물리치료기 자체가 없어요."

핫팩도 없다. 이놈아. 




"아이 그래도 이게......"

한참 버벅거리고 식씩거리던 환자....



"그럼 제가 잘 못 알고 왔나보네요."

비꼬는 목소리다.

지갑을 꺼내는 녀석의 손이 분해보인다. 천원짜리 몇장이 나왔다.

돈을 주고 받고 사건은 싱겁게 끝났다.

내가 천원짜리 몇개 받을라고 이 짓을 해야 하나.


왜냐면 나는 여기 피고용인이니깐. 이정도로 끝난 것이다.

만약 내가 오너였다면?

"그래서? 뭐가 불만이죠?"

"왜 아픈데 침 안 놔주고 물치 안 해주나요?"

"그럼 눈 아프면 눈에 놔드려요?"

 "그래도 물치는 해줘야죠"

"환자분 지금 다리 아파서 온거죠? 제가 그 다리 치료한거죠? 물치 중에 뭘 해달라는건가요? 핫?  아이스? 고주파? 저주파? 중주파? 초음파? 컵?"

"아니 그건 의사가 알아서 해주셔야죠. 그걸 환자가 어찌 압니까?"

"그렇죠. 치료방법은 의사가 정하죠. 환자는 뭐가 뭔지 모르니깐."

"그래도 이렇게 침 금방 놓으면 왜 어떻게 치료되는지 설명해줘야 되잖아요"

"알아들을 수 있으면 설명해드립니다. 오늘 맞은 침은 태백 태계사 경거 부류 보하고 다시 소부 대도 사 음곡 음릉천 보 한 다음에 태백 태계 사하고 경거 부류 보하고 다시 태백 어쩌고 저쩌고.....여기서 태백 소부 음곡은 천부혈이고 모두 음경의 본경에 해당하는 기가 가장 응축된 혈자리로 경기를 흘려보내는 역할을 컨트롤하기 위해 보사를 다르게 한 것이고 지금은 일단 가장 가벼운 이 처방부터 시작하고, 내일 자고나서 호전도를 체크하여....어쩌고..... 지금 이해가십니까?"

"......"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왜 설명해달라고 하죠?"

"그래도 의학적으로 어려워도 환자에게 쉬운 용어로 설명을 해줘야하지 않나요?"

"침맞으세요. 낫습니다. 지금 이것 이상 쉬운 설명이 필요합니까? 저는 원래 설명에 집중하는 시간 대신 환자 치료에 집중하는 스타일입니다. 원래 그래요. 설명이 충실한 의사를 찾으려면 다른 한의원을 알아보시죠. 저는 맥진하거나 침질할 때 환자가 말시키면 아예 말대답도 안 합니다. 치료에 집중하기 위해서죠. 아이스브레이킹 잘하고 서글서글한 원장 많습니다. 환자지시혈에 시키는대로 침놔주는 한의원을 원하면 원하시는데로 가시죠. 난 환자지시혈 경멸하는 사람이니깐요."

"침은 내가 모르니깐 그렇다 치고 물치는 왜 안 해주나요?"

"의학적 판단으로 침치료에 도움이 안되기 때문에 안 해줍니다. 저는 가족은 물론 저 치료할 때도 물치 안 합니다. 물치하는 기계도 없고요. 물치 받으러 왔나요? 그럼 접수할때 물치받으러 왔다고 해야죠. 접수할 때 다리 고치러 왔다고 했죠? 내원동기가 물치인가요? 치료인가요? 치료받겠다고 접수해놓고, 물치 안해준다고 짜증내면 너님 잘못인가요? 나 잘못인가요? 내원동기가 뭐나요?"


내가 오너였다면 그 환자는 오늘 내 방에서 1시간 안에 못 나갔을 것이다. 오늘 내 몸 컨디션이 아주 나빴다는 점도그 환자에겐 행운으로 작용... 어제 급체로 오늘 점심도 걸렀구만, 왠 개백성이가 와서 오후에 저 지라르를....


다시 초입으로 돌아가서 개백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나쁜 일이다.

그런데 개백성은 더 나쁜 놈들이다. 왜냐면 그런 개백성이 한번 훑고 지나가면 선량한 뒤차순 환자에게 악영향이 미친다. 의료에서 의사의 컨디션이 차지하는 비중은 갱장히 중요하니깐. 특히 손재주로 벌어먹는 영역에선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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