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동의 추억

Essays 2007. 4. 24.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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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때 외숙모가 아프다고 해서
야매신분을 숨기고 인천까지 왕진(?)을 갔다 온 적이 있다. 그때는 한창 혈기왕성하던 때라 처방도 지금보다 더욱 과격했는데.....(지금 생각하면 거의 소여물 수준으로다가...)

처방도 멋지게 세로로 써서 제기동으로 갔다.
좀 괜찮아 보이는 약재상에 가서 처방전을 보여주고 약재를 사서 달여줬다.

류마티스로 전신의 관절에서 뼈를 도려내는 고통을 겪으며 한숨도 못 자던 외숙모가 그 약 20첩을 먹고 그후로 7년간 아무 증상없이 살았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때 제기동에서 약재를 담는 아르바이트생의 실수로 약재가 거꾸로 계산되어 들어간 거였다.

그러니까 내가 세로로 처방을 써줬는데 이걸 가로처방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고 약재를 담은 거다.

창출 2돈 강활 독활 방기 위령선 당귀 택사 목통 1돈반 황백 7푼 감초 5푼이었는데

실제로 제기동 알바생은 뒤에서부터 담기 시작해서
감초 7푼 황백 1돈반
강활독활 방기 위령선 당귀 택사 목통 2돈
이런 식이었던 거다.

ㅡㅡ.;;;;;;;;;;;;;;;;;;;;;;;;;;;;

외숙모 죄송.ㅎㅎㅎ 그래도 나아서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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