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위의 도그마

Essays 2011. 10. 13.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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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의대 재학시절 멋도 모르고 교수님들에게 질문을 하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당시 양방과목(양방생리, 생화학, 약리학 등등)은 의대 교수님이 수업을 했고, 한의과목은 물론 한의대교수님이....

내가 질문을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한다.

나: a는 왜 그런가요?
교수: B때문이지.

나: 그럼 B는 왜 그런가요?
교수: 그건 C때문이야

....................

이런식으로 질문과 대답이 오고가다보면 질답을 주고받다보면
가장 최신 연구경향까지 나오게 되고 그 정도 되면.... 
결국은 질문하는 학생이 뻗어버린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이런 질문을 한의대 과목에 적용하면 교수님이 먼저 뻗어버린다.

나: 왜 간화가 들면 눈에 증상이 나타나요?
교수: 담경이 눈도 지나가고 간은 눈에 나타나잖아.

나:  간이 왜 눈에 나타나요?
교수: 뭐? 오관이 오장에 배속되잖아

나: 왜 오관이 오장에 배속되어야 하나요?
교수: 뭐야? 너 간은 눈인거 몰라? 그런 걸 왜 물어.

...................

결국 교수님이 지치거나 뻗거나 화를 내거나....파토가 난다.

(실제로 한의대 모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앞으로 내 수업시간에 질문하지마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왜 파토가 났나? 그건 당위에 관한 질문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우리 세상은 세가지로 이루어져있다.

1. 델루젼
2. 피노미넌
3. 팩트


근데 우리는 팩트와 피노미넌을 구분할 수가 없다. 왜?
아무리 노력해도 궁극적으로는 피노미넌일 뿐이다. 모든 정보는 인간의 오관을 통해 들어오므로.

아침에 해가 뜬다. 그건 팩트인가? 피노미넌인가.
피노미넌이지.

그럼 팩트는 뭐냐? 지구가 자전하는거지. 
그럼 해가 뜹니다라고 말하는 피노미넌은 팩트보다 저질의 정보인가?  거짓의 정보인가?
아니지. 그건 별개의 문제야.


한의사들이 갖는 컴플렉스 중에 한의학이 왠지 비과학적인 것 같은 스멜이 나는 물건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건 정말 멍청한 거지.
당위에 집착해서 그래.

왜 눈은 간에 배속되어야 하는가? 왜 간은 눈에 나타나는가? 라고 묻는 질문은 의미없어.
왜냐. 그건 피노미넌의 당위를 묻는거그든.

진짜로 필요한 물음은 '실제로 간이 눈에 배속되었을때 해석되는 피노미넌들이 엄청 많냐?' 라는 질문이지.

많아?
오케이.
그럼 됐어.
그럼 그걸 팩트로 간주하고 나의 델루젼에 삽입하겠어.
그럼 된거야.

왜 눈에 배속되는지는 학자의 몫이고. 임상가는 일단 확고한 피노미넌들로부터 매우 도움이 되는 델루젼(좋은 말로는 이론이라고도 한다)을 확립하는 것이다.

근데 델루젼이 문제야.
니 대가리 속에 델루젼을 함부로 꺼내어서 안돼. 한의사들은 너무 쉽게 꺼내. 신중하지 못해.
전문용어로 DIYB 라고 하지. 니 대가리속의 망상.이라는 고급학술용어.

적어도 그걸 입증할만한 500개의 피노미넌과 그것으로부터 세워진 두세개의 팩트를 토대로 하나의 델루젼을 세울 수가 있지. (한의사들은 흔히 '드라마틱'이라는 용어를 동원해서 야야야 내가 말야 얼마전에 0000탕을 어디 써봤는데 완전 기가막혀...라고 이야기하는데 그런 델루젼을 그렇게 자랑스럽게 뇌까리는 것 자체가 기가막히다.)

델루젼을 신중하게 꺼내어져야하지만, 당위성의 결여를 무기로 공격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당위성에 관한 질문에 한의사들이 대답을 못한다고 해서 한의학이 비과학이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은 아래 질문을 답해보시라.


지구는 왜 태양계에서 태어나게 되었나?

왜 bk박사님은 롯데 크런치바만 먹으면 좌측 tmj 상단 5cm 지점이 50헤르쯔로 약 2.8초간 실룩거리나?

강호동의 쌍꺼풀이 없는 우측 눈두덩에는 왜 5.2g의 지방질이 들어가 있나? 왜 10g도 아니고? 20g도 아니고?

스티브잡스는 왜 10월 5일에 사망할 수 밖에 없었나? 왜 4일도 아니고 6일도 아니고?

지난달 내수동 뚜레주르가 망한 자리에 왜 던킨이 들어왔나? 



피노미넌에 대해 당위를 찾으려고 하지마. 헛짓거리야.

실제로 그러한가? 그런 피노미넌이 절대 다수인가?에만 집중해.

그래서 한의사에게 날려야할 질문은 "왜" 그래요? 가 아니라  "그런 피노미넌이 얼마나 많이 관찰되었나요?"라고 피노미넌을 수집한 데이타를 요구해야지.

골증열에 지골피를 써.
그럼 멍청한 한의대생들이  이렇게 물어.

"왜 지골피가 골증열을 치나요?"

그럼 교수가 설명하지. 아 지골피가 생긴게 어떻고....성이 어떻고 미가 어떻고....지골피라는 게 바삭한 오징어튀김을 초코칩쿠키로 만들어주는건데 .... 이런 되도않한 비유를 끌어와서 개드립...
교수가 뭘 아나? 그냥 주니깐 되던데. 뿐이지.

한의대생이 질문해야할 것은 "지골피가 골증열이라고 분류되는 피노미넌들을 효율적으로 제거하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요?"가 되어야 한다.

왜 미토 안에 정화가 숨어있나요?

왜 숨어있긴. 그냥 숨어있는거야. 왜냐고 묻지마라니깐.ㅋㅋㅋ 


다시한번 강조하면 피노미넌은 증례이다.
델루젼은 종설이다.

피노미넌(증례) 500개당 델루젼(종설) 1개 인정해준다. 콜? 어떤 한의사는 피노미넌 서너개에 델루젼을 하나씩 생산하던데 제발 그러지 좀 말자. 정 그러고 싶으면 화장실에서 혼자 하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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