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와 축구 사이

Essays 2012. 2. 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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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가 좋나? 야구가 좋나? 사람마다 다르지.

축구는 변수가 너무 많아. 아무리 감독이 작전을 잘 세우고 밀어부쳐도 결국 스트라이커나 윙의 발재간 한방에 망가지기도 하는게 축구지. 2002년 미국전에서 홈런날린 최용수 봐바. 그리고 감독은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해. 경기장 전체를 놓고 공간을 인식할 줄 알아야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기본기가 아주 중요하지. 패스. 드리블. 트래핑.
패스가 안되면 그냥 끝장이야. 끝. 한번에 트래핑이 안되고 두세번 터치해야 볼이 멈춰진다면, 아무리 히딩크가 와도 작전이 안 먹혀. 백날 2:1패스에 돌파연습 슛 연습 열심히 해도 트래핑 같은 기본기가 있어야 골문까지 갈거 아니냐.

야구는 축구보다 변수가 적어. 룰이 거의 정해져있지. 안타 - 번트 - 안타.. 상대도 알고 나도 알아. 1점차로 리드하는 8회말 무사 1루면 당연히 번트를 대지. 그건 암묵적인 룰이야.
만약 1사 2루에 공이 우익수 앞으로 날아가면 포수가 달려가야할 지점도 거의 정해져있어. 모든 선수가 공의 방향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달려야할 지점이 정해져있어.
왠만한 변수가 모두 야구메뉴얼 안에 들어가있지.
2사 주자 1루에서 우타자에게 큰 2루타성 타구를 맞으면 투수는 맞는 즉시 달려가서 커버플레이를 해야할 곳이 정해져있지. 이견이 없어. 1루수 2루수 모두 마찬가지야.
타이레놀은 1알 먹어보고 진통이 안 되면 2알 먹으라고 메뉴얼에 나와있지. FHPM로 25 이상 올라가면 3단위로 투약하라고 다 나와있어. 그냥 글자만 읽을 줄 알면 외워서 그대로 하면 되지. 해보고 안되면 그냥 거기서 끝이야. 중계플레이했는데 주자가 홈에서 살면 그걸로 끝이지. 다음에 또 그 상황이 와도 또 그렇게 중계플레이를 해. 다른 작전을 쓰지 않는다구!! 변수가 없다구.
공이 오면 쳐. 그리고 달려. 이게 다야. 간단하지. 직관적이고.
감독이 뛰라고 하면 2루를 향해 전력질주해. 아무 생각할 필요가 없어. 죽으면 죽는거야. 1루주자가 생각하고 처리해야할 변수라는 건 없어. 투수의 투구모션 이후에 2루를 향해 뛰어라. 끝. 깔끔하지?

그에 반해 축구는 알아서 해야해. 수많은 변수들을 각자 처리해서 공간을 만들고 알아서 해야해. 야구처럼 2:1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 공격수가 어떻게 나온다고 해서 내가 달려가야할 곳이 있다거나, 각 선수마다 해야할 플레이가 메뉴얼화되어 있지 않아. 상대공격수가 누구냐에 따라 그의 포지션이 뭐냐에 따라, 순간적으로 2명이 감싸야할 경우도 있고, 반칙으로 끊어야할 경우도 있지. 변수가 너무너무 많지. 그날 잔디의 상태. 상대선수의 컨디션. 바람의 방향...

같은 자한인데 그 환자가 두부공장에 다시 돌아가면 보중가미를 3번 더 리핏할 수도 있어. 왜 사물로 안 돌리냐고 묻지. 두부공장이라잖아. 환자의 특정 상황을 얼마나 큰 변수로 받아들이느냐는 전적으로 원장에게 달려있지. 같은 환자를 놓고도 보중증을 줄수밖에 없는 스토리와 모식도를 만들 수도 있고, 사물을 줄 수 밖에 없는 스토리도 만들 수 있지. 임상의 고수들은 눈에 보이지만, 하수들은 이러면 이런갑다. 저러면 저런갑다. 그리고는 격분하지. 왜 막 갖다붙이냐고. 이래도 말되고 저래도 말 되거든. 처방을 낸다는 거는 예능프로그램 편집하는 것과 같아. 피디가 어떤 맘을 갖고 가위질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그러다보니 많은 한의대생들은 메뉴얼을 갈망하지. 야구선수가 되고 싶은거야.
(너무 커다란 운동장에 공하나 던져 주고 너무 많은 스토리가 나오니깐, 차라리 정해진 라인위로만 뛰는 야구가 나은거지. 야구선수들은 경기중에도 서 있는 경우가 많지. 이런 스포츠가 흔하지 않아)
왜 한의학에는 메뉴얼이 없는가. 왜 검증되지 않은 명제들만 던져져있는가.
나도 한때 갈망했다고. 혼자 몇년동안 500페이지짜리 메뉴얼도 만들어보았지. 지금은 다 갖다버렸어.
왜냐면 처리해야할 변수가 너무 많아.
아주 쉬운 예로 소화불량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평위산을 줄 경우 어떤 경우에 식체라고 정의할 것이며, 평위산의 용량을 어떤 방식으로 전탕하여 얼마나 어떻게 가미해서 투약할 것인가에 대해서 너무 많은 변수들이 존재하지. 최적의 메뉴얼을 찾기위해서는 평가를 해야하는데, 지금 한의학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예후평가가 '에세이'수준이고, 너무 원장의 주관이 많이 들어가지.(이건 참치원장도 지적한 부분인데) 아 다르고 어 다른데, 환자의 기술을 다시 '재인용'해서 평가하는 예후는 의사의 주관이 너무 많이 개입됨.

그럼 꽝이냐? 그건 아니야.
그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축구팀은 존재하지.
기본기가 중요해. 메뉴얼이 왜 없냐고 욕하기 전에 내 스스로 드리블이 되고, 1명 정도 제낄 수 있고, 35미터짜리 날카로운 크로스가 가능한 기본기가 있는지 체크해봐야해.
축구를 하면서 야구선수들을 부러워하지 말아.
게임 자체가 다른 것이야.

귀비탕과 소요산의 기원과 의미, 들어가는 처방약재 용량도 전혀 모르는 (드리블도 안되고 패스도 안되고, 기본기가 전혀 없는) 그런 동네 축구선수들을 모아놓고 사우디 알아하디드 구장이 5월중순경 잔디의 습도 낮으므로 공을 패스할때 속도가 빨라지므로 좌측 윙은 조금 더 일선으로 올라가고 쉐도우스트라이커는 약간 더 쳐져서 2:1패스로 상대 좌측을 노리다가 수비진이 내려오면 순간적으로 좌중간으로 찔러주고 공처리한다라고(그러니깐 식욕의 스펙트럼을 평가해서 그 환자의 직업환경과 평소 섭생을 고려하여 대사항진 그레이드가 3.5를 넘어가면 소요산의 농도를 30% 다운 시킨다)라고 백날 가르치면 뭐하나. 공만 잡으면 뺏기는데...

소요산이 뭔지 모르는 기본기가 부족한 아이는 늘 (자기가 금방 컨닝해서 야구처럼 바로바로 써먹을) 메뉴얼이 없다고 투덜거리고, 축구도 야구와 통폐합 일원화해야하지 않느냐. 왜 축구선배들은 이 따위로 만들어놨냐. 요즘 축구선수들이 너무 많아져서 걱정이다. 등등 온갖 불평을 늘어놓지. 그런 아이들에게 계절변화에 따른 소요산 투약법을 가르쳐봐야 백날 헛짓이다는 거지.
사회제도 개선도 중요하지. 축구장 많이 짓고, 티비중계하고, 축구관련 지원도 많이 받아야지. 근데 애들이 드리블이 안되고 있어서 관중들이 한번 보면 두번 다시 안 온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연령고본단에서 왜 고본이 군약이에요?"라고 물어보는데 뭐라 답해야하나.
드리블-패스-슛 이순서대로 익혀야지. 이미 자신은 면허증 받았으니깐 드리블 패스는 잘 한다고 생각하고 맨날 슛연습만 하면 망하는겨. 스스로에 대한 허상의 이미지만 갖고 있는거지.

드리블이 안되면 공이 날라오면 무섭지. 트래핑이 안되니깐.

암튼 내 느낌은 이거야. 한의학이 축구라면 양의학은 야구야. 종목이 달라. 
축구가 훨씬 변수가 많고 섬세하고, 각상황별 전형적인 메뉴얼이 있을 수 없으며, 무엇보다 선수 개인의 기본기가 탄탄해야해. 기본기가 없는 선수들이 펼치는 축구경기는 엄청난 짜증을 불러일으키지. 맨날 공 뺏겨봐 그건 관중에 대한 범죄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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