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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 전 우리동네에 커피집이 하나 생겼다.
1. 첫번째 패착은 입지 오판이다. 이 동네에서 가장 잘되는 커피집은 대형빌딩 지하 식당가 중간에 위치한 커피집들이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직장으로 돌아가는 직장인들을 타켓으로 하는 업장들인데, 생뚱맞게도 이 커피집은 샐러리맨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저녁 회식이나 하러 오는 골목에 자리 잡았다. 시작부터 난관이다. 커피집이 없는 곳을 찾다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이러면 안된다. 가장 잘 되는 집 옆에 붙으면 그나마 승산이 있는데, 그러자니 월세가 안 맞고, 무섭기도 하고... 빈 자리를 찾다보니 정말 사막 한 가운데 점빵을 차린 것이다. 한의사들 중에도 세대수 따져가며 지도에 기존 한의원 표시해가면서 빈자리 빈자리 찾다찾다가 아무도 오지 않는 혼자만의 오지에 점빵 차리는 경우 많다.
2. 힘줘야할 데와 힘빼야 할 데를 오판했다. 커피집은 내부 인테리어가 생명. 조명도 어두컴컴하고, 레자로 씌운 의자는 쭈굴쭈굴하고, 탁자는 봐주기 민망할 정도로 대충 갖다놨다. 돈을 들여야할 부분은 반드시 돈을 들여야 한다. 너무 아끼면 업장 전체에 치명타를 입힌다. 아낄 부분은 아끼되 힘줘야 할 부분은 힘 줘야한다. 그냥 카페베네 사진 찍어주고 목수한테 최대한 싸게 비슷하게 해달라고 할 것이지. 특히 조명과 가구에 힘만 주면 인테리어를 좀 저렴한 자재를 써도 어느 정도 캄푸라치가 된다.
한의원도 마찬가지. 힘줘야할 부분의 강약을 조절하는게 중요하다. 벽지를 합지로 해서 비용을 줄이는건 좋다. 벽지가 치료에 영향을 미치진 않으니깐, 그런데 전동배드를 300짜리에서 80짜리로 아끼면 안되는 거다. 대기실 쇼파를 가죽대신 페브릭으로 하는건 무방하지만 약탕기 포장기 이런거에 돈을 아끼면 안된다.
일단 이 커피집은 가콘형이랑 한번 갔었는데 어두운 조명과 저렴한 인테리어로 앉아있는게 너무 불편했다. 그 뒤로는 두번 다시 안 감.
3. 장사가 안되기 시작하자. 어느날 입구에 생맥주를 같이 판다고 붙여놓았다. 커피집에 맥주를 팔다니 ㅠ.ㅠ 이러면 우리 커피집 장사 안돼요라고 고백하는 거랑 같다. 누가 낮에 커피집에서 생맥주 시켜 먹고 싶나?!!!! 망하자고 작정한거지. 한의원에서도 터보 사소를 안해줘서 환자가 안 느는게 아니다. 겨자찜질을 안해줘서? 안마의자가 없어서? 간섭파를 안 해줘서? 고주파가 없어서? 롤링배드가 없어서? 대기실 커피가 맛이 없어서 환자가 안 느는게 아니다.
4. 얼마후에는 쿠키를 구워서 아크릴통 안에 내다놓기 시작했다.(사진1) 갓 구워도 저 통에 넣어놓으면 너무 오래돼 보인다. 바로 앞에 파리바게트가 있는데, 거기 파는 쿠키보다 너무 맛없어 보였다. 처음엔 쿠키만 내놓더니 번도 만들어서 내놓았다. 차라리 커피 사먹는 애들한테 손가락만하게 무료로 주는 게 낫지. 쿠키를 팔아서 돈을 남기려고 하니 일거리만 늘어났다. 쿠키를 이용해서 커피매상을 더 올리는 방안을 강구했어야!! 한의원도 침을 이용해서 한약매출을 더 올리는 방안을 강구해야지. 자신의 주력상품이 뭔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개원해야 한다.
5. 그래도 시원찮자, 갑자기 커피가격을 낮추기 시작했다. (사진2) 점심에 커피를 천원에 파는 것이다. ㅠ.ㅠ 도대체 뭐가 남는단 말인가. 커피를 사먹는 사람들이 "어? 천원이네! 사먹어야지"라고 사먹나? 그렇지 않다. 한약값을 20만원에서 10만원으로 낮추면 사람들이 그걸 보고 "우와 싸다. 사먹어야지." 이러나? 한약이 무슨 떠돌이 배추장사인가? 한의원에서 야간진료 하면 "우와 환자를 위해서 애쓰시는구나. 이제 밤에 와서 진료받아야지"라고 생각하나? 장사 안돼서 야간에도 일한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피부 탈모 이런 프랜 아니면 야진하면 안되는 거다. 할매월드, 근골격전문 한의원에 야진이 웬말이냐.
6. 그러다가 얼마뒤에 갑자기 담배를 판다는 간판이 걸렸다.(사진3) ㅠ.ㅠ 쿠키 통 옆에 담배 케이스도 올려놨다. 점점 커피집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구멍가게로 변신해가고 있다. 한의원도 안되면 이것저것 온갖 클리닉을 다 내다건다. 성장, 비만, 아토피, 비염, 학습, 총명, 갱년기클리닉.... 동네한의원일수록 만능클리닉을 표방한다. 커피집에서 담배간판을 다는 순간 망조가 급격해졌다. 고객들에게 우리 가게 장사 안돼요라고 광고하는 거랑 같다. 커피가 잘 팔렸으면 담배까지 팔 리가 없잖아. 온갖 클리닉을 다 붙여놓으면 '난 아무것도 제대로 할 줄 아는게 없고, 우리 한의원 장사가 안돼요'라고 광고하는 거랑 같다. 거기다가 할매월드인데 매일 야간진료하면 '우린 망해가는 한의원이에요'라고 간증하는 거랑 같지.
7. 그리고 최근에 갑자기 네온사인 간판을 달았다. (사진4) 밤에도 잘 보이라고!!! 한의원 원장들도 "우리 병원 간판이 잘 안보여서 환자가 적나봐"라고 생각하고 큰 간판, 큰 플랭카드를 붙이는 경우가 많다. 과연 저 커피집 간판이 잘 안 보여서 손님이 없는 걸까? 네온사인 간판을 달면 밤에도 잘 보이니깐 손님이 늘까?
(그리고 이 집은 간판 네이밍부터 문제다. 도저히 외울 수 없는 사장만 마음에 드는 간판이름. 사장마음에 들려고 간판 다나? 손님들 기억하기 좋고 찾아오라고 간판 다는거지. 경복궁점이라는데 저게 설마 프랜차이즈일까? 만약 프랜인데 저 정도 인테리어에 컨셉이라면 당장 망해도 싸다.)
이 커피집을 욕하려는 게 아니라, 내가 처음 개원했을 때 하던 짓과 너무 흡사한 짓을 해가면서 망해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너무 드네. 망할 때 망하더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가게를 해야지. 맥주 팔고 담배팔고 이런 모습이 저 사장의 처음 오픈할 때의 자기가 하고 싶었던 커피집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카스트로 플로스 경복궁점 사장님 화이팅!!!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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