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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민족의학신문사. 교수님은 키도 작으신데 늘 어디 앉으면 맨 아래 사진처럼 발을 꼬는 버릇이 있으셨다.ㅋㅋ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새내기들이 모두 M201에 모여서 선배들이 각자 동아리를 소개하는 걸 듣는 시간이 있었다.  동아리의 그 해 신입생이 들어오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중요한 시간. 특히 희귀자원이었던 여학생이 몇명이나 가입하느냐가 결정되던 중차대한 타임.

예과 2학년 중에 누가 삽을 들고 강단에 나타났다.
나중에 알게됐지만 그들의 이름은 주대환, 한상구


"우리는 노가다 써클입니다. 매주 금요일날 밭일 하고요, 짱개 많이 먹을 수 있고요, 산에도 자주 갑니다."


주대환씨가 여자들이 싫어할만한 골라서하는 동안 옆에 선 한상구씨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야, 저게 동아리 소개인가? 저 놈의 노가다 동아리 누가 들어가겠노...'라고 모두 생각하고 있었지만, 나는 이미 낚여서 가입된 상태였다. 시발. ㅠ.ㅠ
신입생으로 기숙사를 배치받고 처음 관음동 401호 방문을 열었는데 웬 곰 두마리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들의 이름은 한상구, 최정락.

최정락씨는 내 동기.
한상구씨는 고교, 과선배. 아 시발 X됐다. 상구형이 가입하란다. 참좋은 동아리 있다고.

하나는 전산위원회 또 하나는 본초반.
두 동아리는 특징이 있었는데, 여자가 없었다는 것. 한명도 없었다는 건 아니고 전학년 통틀어서 딱 한명씩...
특히 본초반에는 이현이씨 빼고는 여자가 전무!!! 재학생 뿐만 아니라 내 위로 7기 선배까지 다 쳐도 여자가 이현이 딱 한명!!

세상에 뭐 이런 마초스러운 동아리가 다 있나.
(실제로 여자들이 싫어할만한 짓만 하긴 했었다. 밭갈기, 풀뽑기, 낫질하기, 산타기, 길없는 곳으로 산내려오기) 


그해 아직 싸늘한 바람이 가시지 않은 어느 초봄.
얼떨떨한 기분을 어깨에 지고 선배들따라 쭐래 쭐래 들어간 원풍식당.
거기 본초반의 보스, 강병수 교수님이 계셨고, 나를 처음보자마자 하신 말씀.

"야, 니는 눈이 맑아." (그땐 맑았었지..초롱초롱했고 ㅠ.ㅠ 시발 한의대. 지금은 동태눈깔.)

평양 태생이라 북한사투리가 쫙쫙 붙는다. 10살때 한국전쟁을 만나 서울에서 대전까지 걸어서 피난왔다고.
아무튼 한의대 교수사회에서 강교수님은 늘 마이너 중의 마이너.

연구실도 한의학관 3층 제일 구석. 동향이라 햇볕도 안 드는 화장실 옆 칸.
본초 슬라이드 몇만장을 누가 훔쳐가서 (그 새끼가 누군지 심증은 가지만 밝힐수는 없고. 개잡종같은 게 또 지 제자들한테는 교수라고 칭송받겠지) 철창을 설치해놓아서 분위기는 더욱 우울했다.

97년도 학내분규가 한창이던 때 아무도 학장을 안 하려고 해서 결국 떠맡은 학장자리.
결국 학생들한테 타켓만 되고, 이미지만 깎이고. 쩝.


어느날 교수님이랑 한의학관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교수님 수저를 챙겨 갔더니 교수님이 화를 내시면서(북한 사람 고집도 쎄고 화내면 좀 무섭다. 이래서 이성계가 북한사람 싫했나?)

"야, 내가 묵는 숟가락은 내가 챙긴다. 앞으로 챙기지마라."

학생과 격이 없으셨다. 학생이 먹는거 같이 드시고, 어디 산행가면 같은 숙소에서 주무시고...

자주 하시는 말씀은 "니들 길케하면 안돼애~~" ㅋㅋㅋ


제자들이 주례를 많이 부탁했는데 그때마다 본초반 학생 불러서 타이핑을 치게 하셨다. 문제는 분량인데 그 페이지 수가 보통 A4 5-6장을 넘어갔다. 타이핑하는 나도 지루해 죽겠는데 이걸 신랑신부가 듣는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 ㅋㅋㅋㅋㅋㅋ 잠 안 오게 결혼식전에 신랑신부가 마황라떼라도 한사발해야지..





아, 봄비가 내리는 오후..
강의PPT를 만들다보니 문득 교수님이 학창시절 해주신 말씀이 생각나서 사진을 좀 찾다보니...참 그립네.ㅜㅜ

교수님 퇴임하고 한번도 못 찾아뵀는데 2009년 돌아가셨다. ㅜㅜ





아, 사진 보니 더 그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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