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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김씨가 강남역 인근에서 송호씨(38, 삼성)를 만나 회포를 풀었다.

샘숭 딜라잇 매장에서 샘숭전자가 만든 최고급 핸드폰과 고급 노트북을 만지작거리며 30분을 기다린 끝에 송호씨를 만났다. 지난 2010년 9월 송호씨의 결혼식 이후 처음 보는 것.

앗, 구미에서 잠바 입고 다니던 그 송호가 아니다. 고급 옷도 사입고, 가방까지 들고 나타났다.

송호씨를 보자마자 김씨가 날린 말

"야, 샘숭노트북 한 개 사도."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송호씨가 대답했다.

"야, 나는 삼성전자가 아니야."

-"같은 삼성이잖아."

"그런건 전자만 할인이 돼."

 

인근 밥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반찬이 나오고...

한시간 동안 송호씨의 건강상담을 해줬다. 호야가 마이 아프네.

 

인근 스타벅스로 자리를 옮겨 고급강남커피를 들이키며 지난 회포를 푸는 두 친구.

 

 

-"야 니 몇시에 출근하노?"

"아침 7시에 출근한다. 퇴근은 저녁 7시"

-"9시 출근 아니냐?"

"원래 8시 출근인데, 통근버스 타려고 집에서 6시 반에 나와. 야, 회사원들 다 이렇게 산다. 무슨 공무원인줄 아냐"

-"그라믄 추가근무 수당 주나?"

"그거 타먹으려면 밤 9시 넘어서 일해야하는데, 신청하는 사람도 잘 없다. 퇴근하고 저녁먹고 씻고 나면 바로 쓰러져서 잔다."

 

송호씨의 갤레기. 엄청 느리다. ㅋㅋㅋㅋㅋㅋ

알람이 새벽 5시 50분으로 맞춰져있다. 쩝. 이게 우리나라 회사원들 생활이구나.

 

송호씨가 낑낑거리며 갤레기로 뭔가 계산을 하고 있다.

 

"내가 무슨 일 하는줄 아나?"

 

 

 

송호씨가 가방에서 서류를 주섬주섬 꺼냈다.

 

 

"하루종일 이런 코드 짠다. 구미에서는 그 공장에서만 일하기 때문에 사고쳐도 그 공장에 그쳤는데, 이제 여기서 사고치면 글로벌 사고가 되지. ㅎㅎㅎ 막 유럽에서 전화와. 뭐가 안된다고. 그럼 자다가도 불려나가지. 요즘 지하철에서 머릿속으로 코드 짜고,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서 일해. 아마 지금쯤 유럽 애들 퇴근할 시간이네. 곧 북미 애들 출근하겠다. 요즘 점점 전산 쪽은 중앙집중화돼. 인력도 많이 필요없고."

-"호야, 저런 프로그램 짜면 재밌냐?"

"응, 가끔 컴퓨터랑 대화도 해. 잘 만들어지면 성취감도 있고, 못 만들면 짜증나고 그래."

(내 고등학교 친구들은 다 송호처럼 산다. 착실하게 고등학교 다니고, 인하대나 한양대 같은 공대 가서, 연애는 거의 못해보고, 삼성이나 코오롱 같은데 취직해서 결혼하고, 가끔 만나면 맥주나 좀 마시고)

 

회사 일에 찌든 송호씨가 썩소를 날리고 있다.

-"야 몇살까지 안 짤리고 다닐 수 있노"

"글쎄, 내가 지금 과장이거든. 아마 운 좋으면 차장 거쳐 부장까지는 갈 수 있겠지만, 그래도 40 중반 넘으면 집에 가야할 확률이 높지. 그때가 애들 교육비도 본격적으로 많이 드는 시기인데..." (송호씨는 해고된다는 말을 '집에 간다'고 표현했다.)

-"야 과장이면 뭐 결제만 하고 낮에 사우나 좀 다니고 그러는거 아니라? 니가 무슨 프로그램을 짜고 있노?"

"ㅎㅎㅎ 삼성은 안 그렇다. 과장도 일 해야해. 2년 지나면 차장 달아야하는데 차장 초기에도 일 해야 한다. 근데 승진하면 할수록 엄청 바쁘다. 오히려 대리 때가 시간 많고 고위직으로 갈수록 책임져야할 일도 많고 일도 많고 바쁘고 힘들다. 내가 월급받는 것 이상으로 성과를 못 보여주면 집에 가야해. 단순한 논리지."

"내가 대리 때 부장이랑 우연히 임원실에 불려간 적이 있는데, 그때 뭐 일이 잘못돼서 불려간 거였거든. 근데 임원이 부장한테 정말 엄청 뭐라고 하더라."

-"욕도 하고?"

"기본이지."

(한의원은 아무리 개차반으로 진료하고, 치료성적이 낮고, 매출이 떨어져도 누가 원장을 불러서 개새끼 소새끼하면서 귀싸대기 날리거나 까는 임원이 없다. 이게 자영업의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고. 대놓고 까주는 사람이 없으니 변화하기 어렵고, 자신이 어느 좌표를 달리고 있는지 모르게 되고 업장은 점점 늪으로 빠진다.)

"그 때 느꼈지. 아, 일이 잘못 되면 내가 집으로 갈 수도 있겠구나."

-"삼성이 요새 잘나가는 비결이 뭐야?"

"음....뭐랄까. 의사결정이 좀 빠른 편이고..... 리더의 판단에 일사불란하게 조직이 움직인다는 거랄까. 어쨌건 지금까지는 리더의 판단이 옳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된거라고 봐."

 

송호와 커피집을 나와서 강남의 화려한 빌딩 사이를 걸었다.

-"우와 호야, 니 이런데서 일하나? 니 진짜 출세한거네. 구미에 쳐박혀 있었으면 장가도 못 갔을끼다. ㅋㅋㅋ 아부지 요새 퇴직하셨나?"

"아니, 울 아부지 65세까지 일하실 거 같다. 나도 자식 키울라면 우리 아버지만큼 일해야할 거 같애."

우리나라 아버지들 진짜 죽도록 일하는구나. 씁쓸하다.


가양동 송호씨를 위해 들려드립니다. 이승기와 싸이가 부르네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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