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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노 미치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캄차카 곰에 물려 죽었지만, 그가 남긴 책을 펴기만 하면 시간에 관계없이 언제나 그와 함께 알래스카 구석구석을 여행할 수 있다. 자연속에 묻힐 때 인간사 고민들은 하찮은 먼지가 되어 대자연의 빗물에 쓸려내려간다. 높은 산에 오를 때, 큰 바다 가운데 카약을 저을때, 아무도 없는 빙하 위에 섰을 때, 우리는 때가 묻은 문명의 옷을 벗고 태초로 돌아간다. 미치오 아저씨가 말하려고 했던 주제도 결국 시간위에 숲, 빙하, 고래 따위는 모두 같다는 것. 다만 일시적으로 어떤 모습을 띠고 있느냐의 차이일뿐...


정적..

이 책을 읽다보면 정적에 빠진다. 아무런 소음이 없는 공간. 바람소리만 휘감는 대자연 앞에 미치오 아저씨랑 같이 선다. 현대문명에서 소음은 필수재가 되어버렸다. 스마트폰, 컴퓨터, 텔레비전, 자동차, 라디오.... 현대문명에서 소음은 빠질 수 없다.

산으로 오르면 고요함을 느낄 수 있겠지만, 유명 등산로 역시 이미 쾌락의 소음이 점령하고 있다. 내가 느꼈던 태초의 고요함은 몇년전 내연산 하옥계곡에서 조난당할 뻔 했을 때 느꼈던 그 고요함, 그리고 어두움, 거기에 수반되는 이상야릇한 공포...

고요함이 편안하지 않고 공포로 다가올 정도로, 우리는 이미 대자연에서 멀어졌다.


이 책은 알래스카. 그 중에서도 특히 알래스카에 대대로 살았던 선주민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문명세계와 너무나 다른 가치관과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

나무, 곰, 풀, 까마귀에도 모두 영혼이 담겨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지구에는 눈에 보이는 것만 소중히 하는 문명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소중히 하는 문명을 압도하고 있다.


알래스카 클링깃족이 세우는 큰까마귀 모형은 우리의 솟대가 아닐까? 하늘에서 내려온 창조자.

어찌됐건...

결국 아시아인이 바다와 육지를 통해 알래스카까지 건너간 것은 확실해보인다.


이 책은 큰까마귀의 전설을 찾아 이곳저곳을 여행하던 저자가 어떻게 알래스카가 아닌 캄차카에 가서 불곰에게 물려죽었는지 이유에 대해서 나온다. 미치오 아저씨는 옛날 아시아인들이 건너갔던 베링해 너머의 땅. 시베리아에서 큰까마귀의 전설을 마저 찾으려했던 것이었다.


1996년 8월 8일 새벽 4시

캄차카 반도 쿠릴호숫가에서 미치오 아저씨의 텐트를 불곰 한마리가 건드렸다. 분명 음식냄새를 맡고 찾아온 놈이리라. 그날저녁 아저씨가 음식물통을 밀폐하지 않았던걸까? 애팔래치아 트레일에서도 종종 이런 사고기 일어난다. 그 이전에도 아저씨는 곰의 습격을 받은 적이 있다. 다행히 그 때는 곰이 텐트에 손만 대보고 도망가버렸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아저씨가 마지막으로 찍었다는 성난 곰의 사진은 가짜다.)


이 책 내용의 원래 제목은 일본 월간지 가정화보에 실린 연재시리즈, 숲과 빙하와 고래이다. 결국 그의 유작이 되었고, 제목마저 바뀌었다.

마지막 부분은 미치오 아저씨가 죽기 얼마전에 남긴 일지와 사진이 실려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여행지, 시베리아에서 그토록 고대하던 큰 까마귀 전설을 채록한다.

그가 짬짬이 기록한 깨알같은 메모(기자수첩같다)는 그가 훗날 엮은 책의 소재가 되었으리라.

어릴때 썼던 그림일기처럼, 사진한장이 위에 놓이고, 그 아래 아저씨의 메모가 실려있다.

이런 식으로 여행기를 짜도 좋을 듯하다.


이 책 가운데 처녀가 곰에게 물려 곰의 세상으로 갔다가 다시 인간세상으로 복귀하는 전설이 나온다. 그 전설처럼 곰을 좋아했던 미치오 아저씨는 결국 곰의 세상으로 갔다. 영화 가을의 전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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