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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 선수들만 모았나보다. 류승룡, 오달수, 김정태는 절정이었다.

작가는 악역과 플롯에 합당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영화는 작가들이 많은 노력을 한 점이 보인다.

시대배경을 97년으로 잡은 점도 돋보였다. 마지막 사형이 집행된 시기이고, 이 영화를 보는 30-40대에게 PCS나 삐삐같은 '반추의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깨알같은 복선을 여러개 깔아둔 정성도 갸륵.

충무로식 개그는 역시 빵빵 터졌다.

배경이 교도소. 이미 여기서 50점은 먹고 들어간다. 하루종일 회사에서 시달리고 영화보러 왔는데 배경이 회사면 누가 보고 싶겠냐. 거기다가 글 못 읽는 조폭이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장면에 더 나아가 그걸 더 골려주는 김정태.

 

인간은 왜 웃나.

스스로 감추고싶은 본성이 배우인 타인에 의해 드러나고 관객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때 터진다.

 

개콘 미필적고의에서 박성광식 개그다 그렇다. 돈받고싶어서 비굴한 행동을 한다. 모르는 사람에게 가족처럼 인사도 한다. 슬픔 5%에 폭소 95%가 담긴 웃음을 웃지만, 정작 관객은 슬픔 5%는 못 느낀다.

 

다른 코너에서 나온 대사 "노래방에서 오나미에게 불러주는 노래는 거울도 안 보는여자, 박지선에게 불러주는 노래는 울고싶어라. 둘다에게 불러주는 노래는 너무 합니다." - 내가 못생긴 애들에게 놀리고싶던 바로 그 말. 이게 글로 써놓으면 외모비하 문장처럼 보이는데 맛깔나게 살리면 웃긴다. 그만큼 웃음과 슬픔은 한 끗차이.

 

내가 하고싶은 말 개그맨이 대신해줄 때 관객은 터진다. 류승룡이 "여긴 학교 아냐. 여긴 감옥. 여기 다 나쁜사람"이라고 말했을때처럼.

 

다른 코너 친한 친구도 마찬가지다. 망한 친구 가게에 가서 "저기 여기 주차권 도장 좀..." 이게 인간의 본성이다. 억눌러져있던, 차마 말 못했던 욕구.

 

숨겨놓은 욕구가 솔직하게 공개될 때 인간은 웃는다. 물론 공감이 대전제이고, 관객이 공감하는 이유는 스스로 그런 욕구를 느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억눌린 욕구가 충족될 때 -그것이 사악하든 말든- 인간은 웃는다.

조폭에게 욕하고 싶은 욕구, 일상생활에선 도저히 이루기 힘들다. 김정태의 놀림에 더욱 기가 죽은 오달수. 현실에선 절대 일어날 수 없는 대반항의 성공.

 

개그란 결국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운 공개와 공감, 실현되기 어려운 욕구 해소 및 본성의 충족.

 

 

그런데 여기서 큰 문제가 있다. 이 영화는 코메디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제목만 보면 코메디물인데, 관객을 쥐어짜낸다. 막다른 골목으로 관객을 몰아놓고, 야 니들이 안 울고 배겨?

류승룡과 어린 딸로 나오는 배우는 관객을 도망칠 수 없게 만든다.

 

영화보는 내내 류승룡이 정상인으로 나오는 환타지를 써먹겠구나 -이미 여러 드라마에서 많이 써먹었다-했는데 풍선위에서 써먹어버렸다. 내가 작가였다면 마지막으로 사형집행장으로 끌려나가기 전에 류승룡이 달려나가는 장면에서 써먹었을꺼야.

바보처럼 끌려가다가 복도코너에서 넘어져서 공포에 질려 우는데 이미 1단계 눈물샘 쥐어짜기 시작.

딸이 부르니깐 우사인 볼트처럼 벌떡 일어나서 전속력으로 달려가는데서 이미 2단계 -여기서 이미 서서히 정상인처럼 보이게 하고, 전속력으로 뛰게 하는게 포인트.-

쇠창살 포옹씬에서 정상인으로 말하는 장면을 넣었을꺼야! 쇠창살을 사이에 둘때는 바보연기로 가고, 얼굴클로즈업 한번씩 갔다가 다시 풀샷으로 올때는 쇠창살을 없애버리고 류승룡을 정상인으로 만들어주는거지.(바보에서 아빠로) 굵직한 목소리로 딸에게 몇가지 당부. 이게 3단계.

 

약간 빠른 템포의 슬픈 곡조의 노래를 깔고 대사없이 관객이 충분히 슬픔을 느끼게 한 이후, 멜로디의 절정 직전에 바로 전화통화가 끊긴 것처럼 한 음으로 쭉 끌어서 노래를 끊고 사형이 집행됐음을 관객에게 인지. 4단계.

 

화면이 밝아지고, 다시 일상의 화면으로

아무 아무일이 없었던 것처럼 오달수, 김정태, 과장까지 모두 일상적인 업무를 보고 가끔 웃기도 하고 밥도 먹고 하는 장면을 넣어서 결국 인간이라는 게 아무리 슬픈 일도 순간이다, 그게 내 일이 아닐 때는 더욱! 이라는 것을 각인.

 

후반부 재판정 변호인 연기를 하는 박신혜는 바이메탈이 끊겨버린 밥솥처럼 감정과잉의 초보연기를 보여주었다. 나머지 배우는 전혀 흠잡을 데가 없다.

 

그리고 작가들의 대실수. 감옥탈출 실패씬. 관객에게 찬물을 끼얹어버린 무성의한 씬.

환타지로 갈거면 -동막골의 팝콘처럼- 확실하게 가든가, 이건 뭐 똥을 쌀려는것도 아니고 닦으려는 것도 아니고, 몰입에서 모두 깨버렸다. 몰입된 관객은 잠든 아기라고 보면돼. 사소한 소품 하나, 디테일 하나 신경써야하건만 이 무슨 대참사.

 

라스트씬과 연결시키려고 무리하게 풍선을 택한 것 같은데 좀 진부했다. 뇌진탕사망설도 좀 맥이 빠지는 부분이었고... 그 정도 생각해내는 건 일반인도 가능하다구. 글써서 밥사묵는 사람들이 그러면 쓰나.

 

 

아무튼 친구에게 한번 보러 가라고 권할만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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