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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의사-양의사 사이의 욕배틀이 뜨겁다. (양의사라는 용어에 대해 발끈하시는 분은 염상섭의 삼대부터 읽고 오시라.) 의사라는 용어는 한양방 사이 헤게모니의 결과물이지, 절대적인 포지션을 갖고 있는 성질이 아니다. 조선의사총합소가 한의사협회였다는 걸 감안하길 바란다. 의사 앞의 양자에 특별한 편향은 없음을 밝힌다.

 

얼마전에 네이버 검색어 소동이 있었다. 누군가 욕을 하면 부정하고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혹시 나에게 그런 측면이 조금이라도 없지는 않았나?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왜 양의사들은 한의학을 욕할까?

 

우리나라처럼 이원화된 의료체계에서는 한의사와 양의사가 만날 접점이 없다. 유일한 곳이 공중보건의 영역인데, 임상적으로 양 분야의 초짜들만 모아놓은 공간이라 학술적인 교류를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면 누가 그들 사이를 교류하는가?

 

바로 환자다. 환자가 여기 갔다 저기 갔다 주워들은 썰을 전달하며 양측 집단에 정보를 교류시킨다.

문제는 이 '메신저'가 날라주는 정보의 질이 좋지 않다는 점이다.

메신저 역할을 하는 환자는 대부분 한쪽 집단에 실망한 후에 다른 쪽 집단을 찾는다. 왜냐면 양방치료에 만족하고 순응하는 환자는 한의원을 찾지 않는다. 그냥 죽을 때까지 양방병의원에 다닌다.

한의원에 내원하여 양방쪽 이야기를 전달하는 '메신저환자'는 대부분 양방병의원에서 치료에 실패했거나 안 좋은 이미지를 가진 환자가 대부분이다.

그들로부터 편향된 정보만을 듣는 한의사는 당연히 양방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는다.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의원에서 치료 안되고 개고생한 환자들이 양방에 가면 편향된 정보를 전달하고 그게 쌓이면 양의사의 머릿속에 한의학이란 정말 쓸모없는 미신, 점쟁이 수준의 폐습으로 인식된다.

 

우리가 전문가를 접할 때 세가지 그레이드가 있다.

어느 분야에 대해서 잘 아는 전문가. 그는 신중하다.

어느 분야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전문가. 그는 더욱 신중하다. 왜냐면 아는 게 없으니깐.

(양의사에게 17세기 아일랜드 전통음악계에서 조지 구스타프가 미친 영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라. 당연히 아무 말도 못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세번째 그레이드가 있다.

바로 그 분야에 대해서 어설프게 아는 전문가이다.

사실 이 놈들이 모든 사태를 망친다.

 

환자가 양의사에게 한의학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있다. 그 때 한의학을 전혀 모르는 양의사는 노코멘트한다. 그런건 한의사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반대로 환자가 한의사에게 양방적인 내용을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있다. 그때 한의사도 모르면 노코멘트한다. 굉장히 합리적인 정보전달이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포지션이다.

 

양쪽 면허를 다 갖고 있는 복수면허자들은 대부분 신중하게 정보를 전달한다.

 

문제는 어설프게 아는 전문가들이 편향된 정보를 제공할 때 일어난다.

양약 먹으면 독약이다. 한약 먹으면 간 나빠진다. 등등

 

환자들은 본인이 다니는 한양방 병의원의 원장이 1.잘아는 놈 2.전혀 모르는 놈 3.어설프게 아는 놈 중에 어디에 속하는지 잘 판별하여 정보를 걸러서 취하기 바란다. 가장 해악을 끼치는 놈은 3번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설득력있는 반대의견에 귀를 기울이면 더욱 성장할 수 있다. 문제는 설득력이다.

어설프게 아는 전문가들에게는 설득력이 없다.

 

일례를 들어볼까? 한의학을 비판하는 양의사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동의보감, 400년전, 음양오행, 경락, 기

 

양의사라고 대단할 것 같지만 한의학적 소양은 일반인과 다를 바 없다. 오히려 독학한 돌팔이들보다 못하다.

(양의사들이 습득한 한의학적 소양은 치과의사의 그것과 동일하다. 하지만 치과의사의 경우 양의사보다 훨씬 한의학에 우호적인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다. 양의사와 한의사는 동일한 환자를 놓고 경쟁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한의사와 치과의사는 진료영역이 겹칠 이유가 없다. 고로 한의학에 대한 호불호는 지식과 근거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영역침범 여부에 더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양의사들이 한의학을 비판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위의 다섯 단어.

그 중에서도 음양오행, 동의보감 ㅋㅋㅋㅋㅋㅋ

이런 단어로 "한의학은 나빠!"라는 썰을 풀지만, 한의사 눈에는 헛웃음만 나오게 된다.

침묵하는 무지는 죄가 아니지만, 광분하는 무지는 죄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그들의 가장 큰 오류는 스스로 '앵커링'의 오류에 빠진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의사집단 내에는 극단의 지점이 존재한다. (모든 집단에는 극단값이 존재한다.) 같은 한의사가 보기에도 너무 허무맹랑한 처치를(예를 들면 무우에 침을 놓는 것 등)할 때 양의사들은 그 모습에 앵커링된다. 그리고 그 이후 들어오는 모든 정보는 그 앵커링된 극단의 모습을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예를 들면 동의보감 투명인간 조문을 끌고와서 동의보감 전체가 무속 내지는 미신 아니냐는 주장을 편다. 문제의 부분은 동의보감 잡병편 잡방문의 은형법이라는 파트인데 사실 잡방문 전체가 도가적인 영향을 받아 수록된 면이 있다. 그들은 왜 허준이 잡방문을 잡병편 가장 마지막에 수록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왜 허준은 내상 허로를 잡병편 맨 앞에 배치하고 잡방문을 맨 뒤로 배치했는가? 이 질문에 답변할 양의사가 있나? 그들에게는 동의보감=투명인간이다. 동의보감에 나오는 모든 조문 내용에 눈을 감아버리고 오로지 투명인간 은형법 조문에만 앵커링되어 모든 데이터를 합리화한다. -사실 은형법 읽어본 한의사도 드물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잡병편 맨 끝까지 독파하기가 쉽지 않다. 창만 부종까지 가면 그만 읽고 싶어진다.)

 

투명인간에 꽂힌(앵커링된) 양의사는 이렇게 외친다.

 

'그래 저것이 무당의 모습이다. 저것이 바로 파라메디칼의 전형이다. 박멸하자.'

 

 

한의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양의사 집단내에서 가장 강렬한 앵커링을 찾아내려고 혈안이다. 시골에서 스테로이드를 물총처럼 쏴제끼는 놈들이 그렇고, 수술공장으로 변한(양의사들 자체 내에서도 평이 나쁜) 일부 중소병원도 좋은 먹잇감이다.

 

상대 집단의 가장 극단값에 앵커링되어 정규분포의 몸통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어설픈 공격을 남발하는 것은 인생의 낭비에 다름 아니다.

 

한의사들도 자성해야 한다. 설득력없는 공격에 화내고 역공하기보다는 왜 양의사들이 저렇게 생각할까? 어쩌다가 양의사들은 일반인보다 못한 한의학적인 소양을 갖게된 것일까? 혹시 한의사집단이 한의학의 실체, 명과 암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한 측면이 있지 않았나? 한의사 집단에서 타켓이 되는 극단값을 방치함으로써 앵커링을 조장하지 않았나? 반성할 타이밍이다. 쓰레기는 방안에 품고 보호해야 하는 게 아니라, 단호하게 내다버려야 한다. 쓰레기랑 같이 살면 나도 같이 쓰레기가 된다.

 

 

그리고 두 집단은 언제까지 환자(상대집단의 안 좋은 이미지만을 전달하는 질낮은 정보원)에게 '메신저'역할을 시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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