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의사가 아니라 최대한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서 암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글이다. 실제로 오늘 필자의 친척에게 해준 말이기도 하다.)
<>암의 이미지
가족 중에 누군가 암진단을 받게 되면 마치 영화속 화면 멈춤처럼 일상이 멈춰버린다. 온 가족의 신경이 암환자에게 집중된다. 가정은 무거운 분위기로, 웃음이 사라지고 하루중 대부분을 걱정으로 보낸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암은 공포 그 자체이니깐.
일반인들은 질환에 대한 특정 이미지를 갖고 있다.
암은 죽음의 공포 이미지를 갖고 있다.
중풍은 어떤가? 중풍은 반신불수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입이 돌아가고 한쪽 팔다리를 잘 가누지 못하는 이미지. 그게 중풍이다. 하지만 중풍 걸리면 모두 반신불수가 되나? 아니다. 죽는 사람도 많다. 그렇다면 왜 중풍은 죽음의 이미지가 아닐까? 그것은 반신불수의 이미지로 돌아다니는 중풍환자가 많고 아주 강렬하기 때문이다.
누가 암을 잘 극복하고 15년 이상 살더라는 사람 입으로 회자되지 않지만, 누가 암으로 죽었다더라는 급속하게 퍼진다.
<>암은 사고인가?
어느날 갑자기 암진단을 받게 되면 마치 교통사고를 당한 것처럼 가치관이 무너진다. 환자는 울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억울해하기도 하며 죄책감을 갖기도 하고 반응은 제각각이지만, 어제까지 멀쩡하던 내 몸에 갑자기 나쁜 덩어리가 생겼다고 느낀다.
하지만 진실은 그게 아니다.
암세포 하나가 손톱만큼 자라는데 10년 정도 걸린다고 알려져있다. 오늘 발견된 그 암덩어리는 10년 20년전부터 내 몸속에 있던 것이고, 우연히 이번에 발견된 것이다. 애초에 없었던 것이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암은 교통사고처럼 갑자기 내린 형벌이 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을 두고 내가 갖고 있던 질환이다.
70-80대가 되면 누구나 발견되지 않는 종양을 갖고 살아간다는 설도 있다. 결국 암으로 인해 죽는 속도보다 노화가 빨라 대부분의 사람이 늙어 죽는다는 이론이다.
<>암은 왜 생겼을까?
내가 신경을 많이 써서, 돈을 떼여서, 라면을 많이 먹어서, 술을 많이 먹어서 등등. 암환자나 가족들은 왜 암에 걸렸을까? 그 원인을 찾으려고 애를 쓴다. 헛수고다. 그럴 필요 없다. 원인만 찾아서 개선하면 암치유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싶어 그런 심리기제가 작동하지만, 그런 노력은 불필요하다.
암을 일으키는 원인은 매우 다양해서 특정 원인으로만 생긴다고 보기 어려운 질환이다.
암은 유전자에 생긴 상처(변이)때문에 생긴다. 인체에는 매일 매일 수천개씩 오작동을 일으키는 세포들이 있다. 그런 세포들을 면역세포들이 찾아내서 없앤다. 그런 시스템이 노화나 스트레스고 약해지면 오작동 세포들이 늘어난다. 그것이 암세포다.
그렇다면 면역기능을 저하시키는 것들은 뭐가 있을까?
음식독, 화학물질, 공해, 운동부족, 산소부족, 전자파, 자외선, 방사선, 스트레스 등으로 알려져 있다.
가족 중 누군가 애를 먹여서, 어떤 특정사안으로 암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보호자는 지나친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왜 생기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환자의 억울한 마음 "내가 지금까지 바르게 살았는데 왜 내게 이런 형벌이 내리나?"이 드는게 당연하다. 세상에는 이유없이 일어나는 일들로 가득하다. '이유'가 있어서, '암에 걸려야만 하는 당위'가 있어서 암에 걸리는 것이 아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자가 부실해서이기도 하고, 생활환경이 불가피하게 암호발환경일 수도 있다. 무언가 죄를 지어서 병에 걸리는 것이 아니다. 부실한 유전자를 받은 것이 당신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암은 하나의 질환인가?
일반인들은 암이라고 하면 하나의 질환으로 보지만, 암은 굉장히 스펙트럼이 다양한 질환이다. 어떤 암은 착하고 순하고 잘 치료되며, 어떤 암은 성격이 급하고 독종이고 나쁘다.
암이라고 다 같은 암이 아니며, 부위와 병기에 따라 예후는 엄청나게 다양하게 나타난다. 같은 사이즈, 같은 부위, 같은 병기의 암이라고 해도 환자가 어떻게 대처하고 의료인이 어떻게 처치하느냐에 따라 예후는 역시 달라진다. 인체는 자동차가 아니다. 얼마든지 인간의 능력으로 개입할 여지가 남아있다.
<>수술을 해야 하는가?
항암제 사용에는 효과와 부작용을 잘 비교해서 해야겠지만, 수술만큼은 받을 수 있다면 받아라. 암에 대한 가장 확실한 처치법이 수술이다.
<>완치란 있는가?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암의 크기가 약 0.5cm 정도 된다. 그것도 굉장히 운이 좋은 케이스일 경우이다. 대부분 1cm미만의 암은 발견하기 어렵다. 특별한 증상이 있으면 조사하다가 발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까 고장난 세포들은 매일 생긴다고 말했다. 매일매일 우리는 수천개의 세포가 고장나고 고쳐지는 과정을 거친다. 그 중 일부가 암세포가 되고 아주 느린 성장을 한다. 크기가 1cm을 넘어가면 비로소 진단이 되고 순식간에 암환자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오늘 진단받았다고 어제의 '나'가 암환자가 아닌 것이 아니다. 어제도 있었고, 1년전에도 있었다. 다만 몰랐을 뿐...
그렇다면 암을 수술하고 항암제 맞고 방사선쬐여서 증세가 호전되면 완치일까?
아니다. 암은 꾸준히 관리해야하는 질환이다. 왜냐면 매일 고장난 세포가 생기기 때문이다. 면역력을 높이고 전이와 재발을 방지하는 노력을 충분히 기울여야 한다.
<>5년 생존률
암을 이야기할 때 5년 생존률을 많이 이야기하며 완치라는 표현을 쓴다. 그렇다면 5년 지나면 암이 안 생기나? 그렇지 않다. 어디까지나 의학적인 페이퍼를 위해 5년을 설정한 것이지. 모든 암에 이 규정이 맞는 것은 아니다. 독한 암은 기간을 더 오래 잡고 관리해야 한다.
<>시한부 통보
의사가 시한부 통보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환자들이 오해를 해서는 안된다. 의사가 "이제 여명이 6개월 정도 남았습니다." 라고 할때 그 환자가 6개월 후에 죽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확하게 해석하면 "이런 병기의 환자는 6개월 내로는 사망하지 않습니다."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6개월 더 살지, 10년을 더 살지 의사는 모른다. 의사는 신이 아니다. 다만 이런 류의 환자를 그간 경험해보니 6개월 내로는 죽지 않더라. 그것을 환자와 보호자에게 통보한 것이다.
환자들의 이런 심리를 이용해서 편법광고를 하는 병의원들이 있다. 시한부 6개월 판정을 받은 환자를 치료해서 8개월 9개월 생존하게 한 것을 갖고 치료효과의 근거로 삼는 것이다. 6개월 통보를 받는 것이 6개월 후에 반드시 죽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며, 아무 치료 없이도 얼마든지 6개월 이상 생존할 수 있다.
<>호들갑
암에 걸렸다는 소문이 퍼지면 주위 친척이나 지인이 건강기능식품을 많이 선물할 것이다. 함부로 복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암은 호들갑 떨어서 좋아지는 병도 아니고, 담담하게 대한다고 나빠지는 병도 아니다. 오래전부터 진행되어온 질환이 지금 발견된 것 뿐이다. 오늘부터 당장 000, 0000 식품 먹는다고 치유되는 질환이 아니다.
주위에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온갖 조언이 쏟아질텐데, 그 중에서 단 하나를 고르자면
"숲에 가라."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걸을 힘만 있다면 숲으로 가기 바란다. 숲에서 면역력이 증가하고 스트레스가 감소한다는 보고가 많이 나오고 있다.
<>밥
잘 먹어야 한다. 입으로 먹지 못할 때 사람은 어떤 병도 이길 수가 없다.
환자가 잘 먹고 좋아하는 음식을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이는 항암제를 맞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가족과 보호자가 나서서 환자가 즐겁게 잘 먹는 음식을 찾아내서 갖다바쳐야 한다. 가족의 의무다.
<>용기
암환자는 공포로 무너진다. 이건 누가 해줄 수가 없는 영역이다. 반드시 이겨내겠다는 용기를 가져야한다. 말은 쉽지만 어렵다. 가족들이 도와주고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워줘야 한다. 환자에게 작은 성취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어제보다 더 멀리 산책하고 오기, 어제보다 더 많이 먹기. 환자를 즐겁게 웃게 해주면 더 좋다.
<다음 편에는 어떻게 한방치료를 받고 어떤 의료인을 선택하는 것이 암환자와 가족에게 최선인지에 대해서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