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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 한의원에 갔는데 한약을 먹으라고 하더라구요. 비양심적으로 보여서 다음부터 안 갔습니다."

 

한의사카페에서는 환자에게 한약 먹으라고 했다가 거절당하고 내상(?)을 입었다는 글이 올라오고 환자 카페에서는 어디 한의원에 갔더니 다짜고짜 한약 먹으라고 하는 사기꾼 같은 원장 피해서 도망쳐나왔다는 글이 올라온다.

 

어떻게 같은 사건을 두고 이런 일이 벌어질까?

 

먼저 이런 상황을 상상해보자.

환자가 응급실을 찾았어. 진찰을 해보니 기흉같아서 CT찍고 수술해야 할 것 같다고 권했어.

그런데 환자가 거부했어.

돌아가서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어.

 

"처음 그 응급실에 갔는데 CT를 찍자고 하더라구요. 비양심적으로 보여서 다음부터 안 가려고요."

 

이런 일은 생기지 않는다.

그 양의사가 내상을 입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 않는다.

 

사실 한약을 '권한다'라는 발상 자체가 문제가 있다. 정말 '당연한 것'은 권하지 않는다. 권할 필요도 없고, 머리 굴릴 필요도 없고, 멘트 짜느라 짱똘 굴릴 필요 없다. 그냥 자연스러운 것. 당연히 해야하는 거다. 원래 그런것. 그냥 그거야! 그냥 그런거라고!!

친구가 배고프다고 할 때, "그럼 밥먹어~"라고 심드렁하게 말하는 그 뉘앙스. 그래야 한다고! 심드렁함.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툭 내뱉는... 뭘 이런걸 고민하냐는 눈빛.

 

그럼 환자는 왜 한약을 거절할까?

한의사가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한약을 먹으라고 했는데 거절하는 이유는 환자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엔 중요한 몇가지 포인트가 숨어 있다.

 

1. 비주얼의 결여

 

한양방의 가장 큰 갭은 한방에는 비주얼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진료라는 걸 보면 치과나 양의나 모두 의사가 한다기보다는 비주얼이 한다고 보면 된다. 모니터가 진료하는거지. 영상기록물이 진료한다. 의사는 그걸 읊어주는 사람일 뿐. 결국 권위는 의사의 말처럼 보이지만, 그 핵심은 '눈에 보이는 비주얼적인 의학적 데이타'에 있다.

병원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병원장이 아니라 '마그네톰 스카이라 3T MRI'이다. 아무도 이 기계의 말을 거역하지 못해.

 

 

2. 비용대비 효과 스케일의 편차

 

한의원을 찾는 환자들의 니즈를 자세히 보라. 그들은 이미 얼마 정도의 비용으로 어떤 진료를 받을지 머릿 속으로 계산하고 내원한 상태이다. 안타깝지만 대부분의 한의원 이미지는 '보약 + 물리치료'가 전부다. 한의사들은 이 레벨 이상의 임상연구를 내팽개쳤다. 한의대 교수도 마찬가지다. 사명감 부족은 한의대 전반을 압도하는 분위기다.

 

'양방에서 다 해줄꺼야. 안되면 트랜스하지 뭐'

 

양방의들이 갖는 '내가 포기하면 이 환자는 갈 곳이 없다. 내가 마지노선이다. 반드시 내가 해내야한다'는 절박한 책임감이 없다. 양방의 온실 속에서 보약팔이, 중풍요양으로 40년을 보냈다. 한의사들이 중증질환을 외면한 결과는 참담하다.

발삔 환자 녹용 먹인 것이 '무용담'처럼 전해내려오지만, 그것이 무용담이 되는 이유는 발삔데 녹용을 먹이지 않는 것이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한약의 권유가 거절당하는 이유는 '심각하지 않은 레벨의 질환'만 다루기 때문이 더 크고, 그 바람에 질환의 난이도에 맞춰서 적절한 비급여수가를 제시하는 테크닉을 익히지 못했다. 한약값이 질환의 차이에도 일률적으로 정해져있다는 것만 봐도 얼마나 한의사들이 이런 분야에 미숙한지 잘 알 수 있다. 소화불량이랑 아토피랑 당연히 난이도가 다른 완전히 다른 질환인데, 한약값은 '1제당 얼마씩'으로 정해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결국 질환별로 디테일한 접근이 아쉽다. 환자는 누구나 질환별로 감당할 수 있는 치료비의 크기가 다르다. 환자가 가진 치료비 스케일과 원장의 스케일이 어긋나면 '권하고 거절하고 불신하고 내상입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든다.

 

초짜 한의사들은 이 점을 간파하고 하이레벨의 질환에 대한 경쟁력있는 실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한방 양방, 부의 빈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됐다. 학습량의 절대 부족은 한의대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이다.

몸 컨디션만 좋아지만 모든 질환이 저절로 치유된다는 '근거없는 변증만증주의' 역시 타파되어야할 폐습이다.

 

 

 

3. 데이타 싸움

 

결국 환자에게 '비주얼적인 권위'도 보여주지 못하고 오로지 원장 이빨로만 한약을 권하는데, 치료 관련한 데이타마저 없다면 그건 허풍에 불과하다. 그 질환을 치료해본 경험도 없고, 예후도 모르는데, 그냥 '한번 해봅시다. 나빠지기야 하겠어요?'라는 마인드로 한약을 권했다면 권한 놈이 더 나쁜 놈이다.

한의사들 중에 '이건 이렇게 해보니 치료가 안되더라'라는 데이타를 제시하는 원장이 거의 없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드라마틱하게 나은 사례를 언급하는 교수는 많아도, 치료가 안되는 케이스를 언급하는 교수는 드물다. 하지만 이걸 알아야 한다.

당연한 것은 언급하지 않는다고... 개가 사람을 무는 것은 동물심리학에서 언급되기 힘들지만, 사람이 개를 무는 행위는 굉장히 특이한 행동이기 때문에 정신과 교과서에 언급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보자.

 

드라마틱하게 나은 케이스를 수업시간에 자랑질하는 교수는 그런 케이스가 흔해서 언급한 걸까? 굉장히 임프레시브한 특이한 사건이라서 언급한걸까? 타이레놀 먹여서 드라마틱하게 두통이 나았다고 호들갑 떠는 의대 교수를 본 적이 있나? 한약이 드라마틱하더라는 말을 하는 교수일수록 실력은 쓰레기라고 보면 된다.

 

ㅎㅎㅎㅎ "나 오늘 밥 3끼 먹었다!!"라고 흥분하며 언급하는 교수가 없다는 것을 상기해라.

드라마틱한 한약을 강조하는 한의사는 아이러니하게도 한약을 잘 못 쓴다는 자기고백에 다름아니다. 평범한 것. 원래 그런것. 당연한 것은 강조하지 않는다.

 

 

 

 

4. 양심적인 한의사

 

한약을 안 권하면 양심적인 한의사인가? 그렇지 않다. 한약을 쓸 줄 모르면 권할 수가 없다. ㅋㅋㅋㅋ 권하고 싶어도 예후도 모르고 처방을 써본 경험도 없는데 어떻게 권하나? 그냥 침이나 맞아보라고 얼버무리고 만다. 침 서너번 맞으면 5-6만원 생기지만, 덜컥 약 권했다가 아예 안 오면 침매출도 날라가니 손해가 막심하다.

한약 먹으라는 소리 안 하길래 졸라 양심적이네! 라고 생각한 그 원장들 가운데 사실은 졸라 무식한 원장들 + 침매출 확보하기 전략이 섞여있다는 것이다. 주구장창 침만 맞으라고 권하는 한의사라고 해서 결코 양심적인 한의사는 아니다.

 

그렇다면 무조건 한약 권하면 양심 바른 원장이냐면 그것도 아니다.

문제는 얼마나 합리적인 근거로 예후와 데이타를 제시하느냐에 달려있다.

침이건 약이건 상관없이 예후와 데이타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의사가 가장 나쁜 양심불량이다.

예후와 데이타만 제시하면 어떤 치료법을 설명했는데 거절했다고 해서 내상입을 필요도 없다. 각각의 치료법의 장단점에 대해 알아듣기 쉽게 + 근거와 함께(가급적 비주얼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의료인의 의무다.

받아들이냐 안 받아들이냐는 환자의 자유다. 의사가 그걸 침해할 권리는 없다.

 

개업 초창기에 노선배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bk야, 니가 앞으로 임상할 때 환자 호주머니 진단을 하면 안된다. 있는 그대로 사실대로만 이야기해라. 니가 환자 호주머니 걱정까지 해야할 필요도, 권리도 없다."

 

그렇다면 한의사가 어떤 방식으로 환자에게 예후와 데이타를 제시하고 임상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자.<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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