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드디어 개봉했다. 프랑소와 오종의 기발한 영화 인 더 하우스.

 

어떤 분야에서 독보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을 표현할 때, 마땅히 알맞은 형용사를 찾기 어려운 경우 우리는 '천재'라는 무미건조한 명사를 끌어다붙인다.

 

프랑소와 오종이 바로 그렇다. 천재감독이다. 이 사람이 천재가 아니면 누가 천재일까? 그가 만든 '작품'이 드디어 한국에 상륙했다. (요즘은 개나소나 작품이라고 하는데 작품은 진짜 작품같아야 작품이라고 하는거지. 그냥 니가 출연하거나 니가 디렉팅했다고 작품이라고 갖다붙이면 안되는 거다. 요즘 트렌드 중에 가장 사람의 심장을 쫄아붙게 하는 것이 바로 영화 크레딧에다가 '000 감독 작품'이라고 감독이 지 이름 큼지막하게 갖다박는 행태다.)

 

 

 

 

1. 남의 이야기는 자극적일수록 좋다

인간은 누구나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 이야기가 자극적이고(퇴폐적인 것 포함) 평범하지 않을수록 독자는 열광한다.

프랑스 어느 고등학교 선생, 평범한 학생, 평범한 주부들이 나오는 영화는 보기전부터 이미 지루하다. 하지만 주인공인 학생이 절친의 어머니를 탐닉하는 이야기는 대단히 자극적이다. 관객은 잠이 들래야 들수가 없다.

 

하지만 중반부를 넘어가면 우리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 누구냐는 의문에 빠진다. 위험한 학생 클로드? 문학선생 제르망? 아니면 친구 엄마?

다음 연재를 기다리는 편안한 독자의 관점에서 서스펜스를 즐기다가 마지막 장을 펼쳤을 때 그 소설의 주인공이 나였던 것을 알았을 때 우리의 기분은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다.

 

제르망은 클로드의 소설에 몰입하며 더욱 부추긴다. 지나친 파국은 꺼리지만, 최대한 파국 가까이 가길 원한다. 결국 자극적인 유혹은 그의 가족과 직업마저 잃게 했다.

 

 

 

 

 

 

근데 프랑스 영화인데 왜 '집에서'라고 한국어로 번역해서 제목을 붙이지 않고 영어로 붙였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여기가 미국이야? 필리핀이야?

'집에서'라고 번역하면 없어보이고, '인 더 하우스'라고 번역하면 있어보이냐? 차라리 일본어로 번역을 하지 그래?ㅋㅋㅋㅋㅋ

 

 

 

 

 

 

 

2. 진실과 해석

제르망과 클로드가 연립주택 마당에서 창문들 너머로 지켜보며 제 나름대로 해석을 한다.

우리의 삶은 결국은 '해석'으로 가득차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유리한 스토리를 써가며 인생을 살아간다. 어릴때 굉장히 총명했고 좋은 부모 밑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았으나 악독한 교사를 만나고, 어쩔 수 없이 실수를 저지르며, 믿었던 친구에게는 사기를 당하고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 입시에서 고배를 마시기 일쑤다.

친구에게 사기를 자주 치며, 부모 말을 안 듣고, 일은 하기 싫고, 성격이 개판인 캐릭터로 자신의 인생을 써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보고싶은 대로 세상을 본다.'

 

경찰서에 가보면 피의자는 없고 모두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진실'이라는 것은 존재할까? 오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쪽이다. 우리가 본 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일까? 아니면 우리가 '일어났다고 믿고 싶어하는 일'일까?

 

큰 틀의 진실은 존재한다. 김대중은 죽었다. 노무현도 죽었다. 이명박은 살아있다. 이런 것들은 큰 틀의 진실이다. 그리고 그 진실의 틈을 우리는 각자가 믿고싶어하는 '스토리'로 채운다. 각자 가장 마음에 드는 그럴듯한 '이유'를 갖다 붙인다. 스토리는 픽션이다. 우린 매일 픽션으로 우리 머릿속을 채운다.

 

 

3. 실체가 드러나면 붕괴된다

사회생활 하다보면 가식을 맞딱뜨리는 경우가 많다. 교수가 조교와 바람이 났는데 와이프만 모른다든지. 정말 쓰레기같은 한의사인데 광고를 퍼부어서 대단한 명의처럼 보인다든지.

화목한 가정처럼 보이지만 막상 실체는 막장드라마인 경우도 있고.

진실이 드러나면 한순간에 붕괴될 위태위태한 관계들.

이 드라마에서도 제르망의 위태위태한 가식은 결국 파국을 몰고 온다.

그는 시험치를 훔치는 '범죄'행위를 저지르고도 자신이 왜 그래야했는지, 앞으로 안하면 될거 아니냐는 '합리적인 나름의 이유'를 갖다붙인다.

바람 피는 애들도 자신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갖고 있다.

쓰레기같은 한의사도 각자 '나름의 이유'를 갖고 훌륭한 방어기제를 만들어놓고 있다.

우리가 진실을 추구하는 시선은 장려되어야 하지만, 그 한계도 명확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모습이 실체가 아니며, 실제로는 훨씬 더 추악한 경우가 많다는 것을.

 

어떻게 보면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가식 속에 감춰져있는 것이 훨씬 더 사회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구지 똥구덩이를 파헤쳐서 좋을 게 없으니깐.

 

 

 

 

 

 

브로셔에 붙어 있는 저렴한 관계도.

이걸 이해하려고 하지말라.

어차피 진실은 없다.

영화관을 빠져나오면서 토론할 이유도 없다. 니 말이 맞으니깐.

선악을 따지려고도 하지마라. 태초부터 그런 건 없으니깐.

 

 

 

 

 

 

 

 

 

당신이 만약 이 책에 대해서 칭찬하는 뉴욕타임즈, 옵저버, 뉴요커, 더 타임즈 기사나 20자평을 보고 이 영화를 보기로 했다면 당신은 정작 뉴욕 타임즈의 기사 한 꼭지도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이 영화 감독이 수상한 생전 처음 들어보는 발음하기도 힘든 영화제 수상기록을 토대로 예매한다면 배급자의 전략에 놀아나는 꼴이 될 것이다.

아마 위의 찌라시를 편집한 직원조차도 그런 영화제가 있다는 것을 잘 모를지도..

 

아무튼 비지니스 마인드의 말초적인 감각만 자극하는 영화판에서 이 영화는 차가운 생수로 샤워하는듯한 짜릿한 각성으로 가득 차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 영화는 The Daily doctor_bk지에서 선정하는 2013년 올해의 영화상'부문에 강력한 수상후보작이다. 영화 에브리데이와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사료된다.<문화부>

반응형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