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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지난 8월 3일 소니의 야심작 a-55바디가 김씨에게 입양되었다.>

 

"살펴보세요."

 

수줍게 들어온 남자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어쩡쩡한 자세로 쇼핑백 안에서 박스를 꺼내 주섬주섬 테이블 위에 놓았다.

종로 모 커피점. 어색한 거래는 간단하게 끝났다. 카메라는 깨끗했고, 그립에는 그 흔한 손톱자국 하나 없었다. 핫슈에 끼인 먼지로 보아 소유자의 싫증을 알만했다.

 

"뭐 드실래요?"

 

"아니, 전 됐습니다."

 

더운데 노는 날 나오라고 해서 미안하다고 권했더니 가장 싼 아메리카노를 시키는 남자.

필름카메라의 종말을 안타까워하며, 띄엄띄엄 이야기를 나누다가 남자는 일어섰다.

8년만에 싱글렌즈 리플렉스(a-55는 정확히는 리플렉스는 아니지만^^) 바디를 만져본 김씨는 한동안 이리저리 찍어보았다. 8년만의 컴백.

 

1994년부터 사진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김씨는 지난 20년간 수 많은 바디들을 만져왔다. 평소 마이너의 인생을 표방하는 김씨는 카메라 역시 미놀타만을 고집해 국내 사진계에서 헝그리 정신의 계보를 잇고 있다. 지난 20년간 미놀타가 코니카에 흡수되고 다시 소니에 팔리는 치욕의 역사를 모두 지켜보았다.

 

2005년 미국에서 직수입한 맥섬-70을 마지막으로 김씨는 더이상 카메라바디를 사지 않았다. 김씨는 생활이 불안정하고 행복하지 않으면 카메라를 잡지 않는 습성이 있다. 무려 8년간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은 후 비로소 지난 2013년 8월 3일 김씨는 새 카메라를 장만했다.

 

'8년만에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

 

그동안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김씨가 갖고 있던 미놀타의 렌즈용사들은 이미 퇴물이 돼버렸고, 중고가 10-20만원대의 구린 렌즈신세가 됐다. 세상은 디지털의 시대로 변했고, 필름바디는 이제 렌즈뒷캡 신세로 전락했다. 핸드폰 카메라가 발전을 거듭하더니 컴팩트 디카 시장을 박살내버렸다. 이제는 누구나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고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개나소나 다 이미지를 생산하는 '이미지 과잉'의 시대.

 

왜 찍는지 모르고 마구 찍어대는 바람에 넘쳐나는 사진들. 그에 반비례하여 볼만한 사진은 더욱 찾기 힘들어졌다.

 

황의 법칙처럼 디지털바디의 가격폭락은 마치 번지점프를 보는 듯 하다. 김씨가 이번에 구입한 바디는 23만원에 거래되었다. 손떨방이 내장된 HD급 동영상 촬영이 가능한 1600만 화소의 바디가 고작 20만원 초반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눈을 떠보니 이렇게 돼 있었다. 언빌리버블.

 

'풀 프레임 디지털 바디를 갖고 싶다.'

 

그동안 카메라 바디구입을 자제한 또 하나의 이유는 풀프레임을 향한 욕심이기도 했다. 하지만 1mm라도 넓은 화각, 조금이라도 넓은 이미지 센서를 향한 열망이 허무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풀프레임 바디를 산다해도 내가 세상을 표현할 수 없고, 사진이란 프레임 안에 질서를 부여하고 최대한 덜어내는 것이라는 자각을 다시 하게 됐다. 덜어내야하는데 더 많이 담는 바디를 찾고 있었다니 허탈하기만 하다. 8년만에 다시 끼운 50mm 표준렌즈가 더욱 세상을 보는데 도움이 됐다. 환산화각 75미리가 더이상 갑갑하지 않다.

 

오랜 공백기였던만큼 좋은 작품으로 팬들에게 다시 다가가고 싶다.<서울/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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