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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창 질주하고 있는 응답하라 1994는 왜 재미있는 것일까?

 

누군가 말했다. '과거는 모두 아름답다'고

곰곰히 돌이켜보면 그리운 시간이기도 하지만 더 곰곰히 되새겨보면 총체적 절망의 시기이기도 했다. 절망과 좌절과 분노와 체념의 시기이기도 했다.

1994년의 모든 대학생들이 연세대를 다니면서 마음씨 좋은 하숙집에서 예쁘고 착한 친구들과 재미지게 살진 않았어!!

 

 

 

이것이 진짜 실사판 응답하라 1994의 스틸컷이다.

94학번 첫 소풍가던 날. (빨간 화살표가 bk박사님.)

 

 

우선 학교 캠퍼스를 통틀어서 나정이는 고사하고 윤진이와 흡사한 인간도 없었다. 더군다나 하숙집 딸이? 이렇게 비현실적일수가!!!

음... 내가 하던 하숙은 늙은 할매 할배 둘이 정말 생계를 위해 치는 하숙집이었지. 국민주택 24호던가? 아무튼 티비에 나오는 이층집도 아니었고, 마당에서 문 하나 열면 바로 내 방이었고, 문틈으로 시베리아 바람이 들어오던 처절한 집이었지. 하루 중 가장 따뜻할 때가 드라이기로 머리 말릴때였어.

 

성동일네 하숙집에는 삼계탕도 나오던데, 내가 하던 하숙집은 1년 350여일은 똑같은 반찬이었어. 너무나 똑같아서 아무도 젓가락을 대지도 않아. 매일 동굴같은 거실에서 (전기를 아끼느라 거실등을 안 켰어.) 밥상 위에 고등어 한마리가 나오면 아무도 젓가락을 대지 않아. 마치 데코레이션처럼 고등어는 이틀 정도 밥상에 오르락 내리락 하다가 결국 어디론가 사라지지. 아침메뉴가 콩나물국이면 저녁은 미역국이었는데 저녁 국그릇을 뒤적이다보면 미역 사이로 아침에 먹던 콩나물들이 유유히 떠다니지. 훈련소 갔을 때 하숙집 국이 다시 생각났어.

 

하숙집에서 티비는 못 봐. 티비는 주인집 할매 할배들만 보지. 고작해야 라디오 틀어놓고 전기장판 위에 몸을 누이지.

뭐랄까? 응답하라 1994처럼 우리 같은 하숙생들은 아들은 고사하고 학생도 아니고, 그냥 한달에 25만원쯤 돈이 나오는 그런 물건들이었지.

 

저녁이 되면 카이저호프에서 500cc 한잔 놓고 본1들이 폼을 잡아요. 한의학은 이렇게 이렇게 해야한다고. 그럼 본2가 또 본1을 갈궈. 예2는 예1을 갈구고. ㅋㅋㅋㅋㅋㅋ 지금 생각해보면 졸라 웃기는 소꿉장난이지. 지들이 뭘 안다고 개폼 잡고 기합주고 ㅋㅋㅋㅋㅋㅋㅋ 북한사람들처럼 우물안 개구리들이었지.

 

학교? 후후후후

교양수업시간에 들어가면 고등학교 때 이미 다 마스터한 그런 거나 가르치더라고. 일반화학시간에 뷰렛반응을 왜 하냐?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교양수업에 들어오는 교수들은 모두 수준이하였고, 한의대 수업은 더 했지.

당시 유일한 통로는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리처드 파인만의 책을 탐독하는 일이었어.

파인만의 책을 읽고 한의대 수업에 들어가면 정말 어마어마한 박탈감과 절망감을 느껴야 했어. 시험칠 때마다 8절 갱지에 무슨 반성문을 쓰는 기분이었다니깐.

 

로맨스는...

밤 늦게까지 강의실에서 남박이랑 남아서 쓸데없이 시간만 보내던 기억만 나네. 망할. 비오던날 교문이 잠겨서 우산쓰고 담을 넘기도 했지.

 

물론 드라마는 현실과 다르지. 한국인들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도 현실이 그만큼 팍팍하고 힘들기 때문일 꺼야. 상속자들을 보면서 예쁜 알바생이 잘 생긴 재벌2세와 로맨스를 나누고 (현실에서 삼성그룹 손자가 커피숍 알바생과 엮이게 될 확률은 제로에 수렴한다.) 결국 권선징악을 컨셉으로 커플이 되지.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지. 힘들어.

하루종일 힘들게 알바하고 집에 왔는데 드라마에서 자기랑 똑같이 가난하고 힘들고 미래가 없고 못생긴 남친에게 시달리고 돈 몇만원에 노동을 해바쳐야하는 찌질하고 지루한 이야기를 방영한다고 해봐. 누가 드라마를 보겠냐고.

왜 재벌집에 이혼에 배다른 자식에 온갖 불치병에, 권력 암투가 많은 줄 아나? 그래야 시청자가 위안받기 때문이지. 아! 그래 돈도 소용없구나! 비록 가난하지만 내 처지가 그래도 행복한거구나.

만약 드라마에서 재벌집 자제들이 모두 미남 미녀에 서울대 의대 법대 나오고 너무너무 건강하고  좋은 차 타고 재밌게 살고 성격 좋고 인품도 훌륭하고, 착하고 좋은 배우자 만나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좋은 직장에 해외여행도 자주가고 아무 걱정없이 더 부자가 되어 잘 사는 모습을 보면 그 드라마가 방송이나 될 수 있을까? 후후후

 

암튼 드라마는 다큐가 아니다.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싸구려 이야기들일 뿐.

응답하라 1994도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장치일 뿐. 그래 그때 이렇게 좋은 기억들로 가득했잖아. 넌 젊었고, 그래 정말 좋았던 시절이었지.

 

음, 그래..그래...

드라마에 나오는 오래된 노래, 소품들은 나의 현실과 얼추 비슷했으니 고것들이 그때 기억들을 많이 되살려주네.

근데....

5분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좀 짜장이 올라오네... 저것들이 예쁜 여자와 저리 폼나고 재미지게 살 때 난 도대체 뭣을 했당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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