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의 [대가] 리차드 커티스가 또 하나의 명작을 들고 왔다.
러브 액츄얼리, 노팅힐 같은 전작을 뛰어넘는 파스텔 톤의 로맨티시즘의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 분야의 진짜 고전은 해롤드 래미스의 '사랑의 블랙홀'(1993)이다.
이런 류의 로맨틱 코메디에 광적으로 빠져있던 20대 초반의 bk박사님은 한의대에서 수업시간에만 잠깐씩 사용하던 프로젝터(당시에는 프로젝터보다 OHP라는 요물이 인기를 끌던 시절이다.)를 스터디한다고 빌려서 한의학관 M201에서 영화를 상영했다. 물론 상영 30분만에 강병수 교수님(당시 한의대 학장)이 교실로 들이닥쳤고, 상영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는데, bk박사님이 엉겨붙어 결국 끝까지 상영은 마쳤다. 학장님의 프로젝터 대여 절대불가 조치로 인해 bk영화제는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 상영일이었다. 돌이켜보면 참 무모하고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인생에서 만약이란 없지만 당시 bk박사님이 문화예술을 탄압하는 학장의 조치에 격분해서 과감히 한의대를 때려치우고 한예종이나 카파 같은 곳에 진학했더라면 한국 영화계에 봉준호에 맞먹는 큰 별이 탄생했을 것이나 안타깝게도 그 행운은 한의계에 돌아갔다. bk박사님은 2011년부터 4년 연속 '올해 주목해야할 한의사 5인'에 선정되는 위엄을 토했다.
박사님의 탁월한 상상력과 위트, 통찰력은 동네 한의원에서 썩히기는 너무 아깝다. 낭중지추라 했던가. 만화를 그리던 출판사를 차리든 사업을 하든 아무리 재능을 감추려해도 결국에는 무언가 큰 일이 벌어질 것이다.
시나리오 작가에게 가장 큰 소양은 바로 이 상상력이다. bk박사님이 중학교 시절 방학이 시작되는 날에 이런 일기를 녹음 한 적이 있다. '혹시 나는 방학숙제를 전혀 하지 않은 개학날에서 시간여행으로 날아온 건 아닐까?' 10대에 가지던 이런 상상력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쓸데없는 생각으로 스스로 폐기처분하곤 했다.
[시간]에 대한 각성은 20세기 후반 로맨틱 코미디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아이템이었다.
빌 나이 할배는 여기에도 나온다. 영국의 이순재 ㅋㅋㅋㅋㅋ 빌 나이의 연기는 교과서다.
극작가에게 또 하나 필요한 것은 인생을 이해하는 경륜과 경험이다.
사람을 살다보면 아주 중요한 '그날'을 맞이하곤 한다. 아이가 태어난 그날.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날.
결혼한 그날. 입학식날.
이 영화의 결론은 [그날]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어느날]에 집중하라는 것으로 끝난다.
bk박사님이 요즘 심취하는 영상편집도 [그날]은 물론 평범한 날에 주목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 영화의 장르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주제이므로 로맨스?
아니면 시간여행이라는 아이템이 플랫을 이끌어가고 있으니 SF인가?
아니면 아버지와의 끈끈한 정이 그려진 가족 드라마?
그것도 아니면 연말에 가볍게 애인이랑 볼 수 있는 코메디?
시나리오 작가에게 가장 큰 레벨은 비극을 보는 관객이 눈물 흘리면서 웃음을 짓게 만드는 것이고, 희극을 보면서 눈물 흘리게 하는 것이다. 희극과 비극은 결국 한가지다. 오르는 루트가 다를 뿐 정상에서 모두 만난다.
이 영화가 바로 그렇다. 희극이면서도 비극인 영화 극작의 최고봉의 레벨에 올라와있다.
평점 : 연기 10 연출 10
20자평 : 10번을 더 봐도 질리지 않을 클래식의 반열에 오를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