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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저녁 7시, 김씨가 포항을 전격적으로 찾았다. 이날 모임은 김씨가 주선한 것.

약속 장소는 양덕동의 고급 고기집 고봉갈비로 정해졌다.

 

7시경 진원찬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bk야 어디고?"

 

"어, 나도 이제 톨게이트 막 나왔다. 신항만쪽으로 돌아서 가꾸마."

 

"아, 맞나? 지금 갔으면 클날뻔 했네."(7시 약속인데 7시까지 갔으면 큰일 날뻔 했다는 이야기인데 이게 말이 되나.)

 

약 30분 후 김씨가 약속 장소에 도착했고, 이미 5명의 친구들은 최고급 고기를 씹어대고 있었다. 하지만 진원찬씨는 그때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평소 말 느리게 하기 올림픽 종목이 있으면 4회연속 금메달을 땄을 것 같은 진씨는 이날따라 행동도 느렸다. 불판을 두세번 바꿀 즈음 나타나 주위를 훈훈하게 했다.

 

약 5개월만에 만난 아이들은 시종 화기애애했으며(사실 모두 중학교 동창이면서 고등학교 동창이다. 우연의 일치. 거기다 진원찬씨는 중고등은 물론 대학까지 김씨와 같이 다녔다.)

 

 

고기집에서 나온 일행은 인근 최고급 커피집으로 장소를 옮겼다.

 

 

북쪽에서 내려온 김씨만 두꺼운 옷을 입고 있다. 가장 구석에 쭈그리고 앉은 진원찬씨의 표정이 어둡다. 최근 사기 피해를 당해 가뜩이나 느린 말이 더 느려졌다.

 

 

 

 

 

이날 커피는 오순호씨가 전격적으로 계산했다. 3학년 7반 머리큰 아이 선수권대회 금은동메달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이광형씨(동메달), 안진홍씨(금메달), 이상연씨(은메달)

 

 

 

 

 

 

이날 이광형씨(40세, 포항공대에서 가장 주목해야하는 인재)는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에스프레소 더블샷을 시켜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광형아, 니 이거 뭔지 알고 시킨거가?"

 

브이자를 보이는 이광형씨의 표정이 천진난만하다.

 

 

 

 

 

한방에 털어넣는 이광형이란 남자. 머리큰 아이 선수권 동메달 수상자답게 대가리의 진동 헤르쯔가 격하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1992년 설악산 수학여행 당시. 들뜬 아이들은 여관방에서 잠 안자고 떠들고 놀았다. 곧 미친개이 국어선생이 찾아와서(고도리 치는데 방해가 됐나? 아무튼) 떠들지 말고 자라고 호통치고 갔다. 미친개이가 문을 닫는 순간 방안에서 어떤 학생이 '아이 씨'라고 했고, 문이 닫힐랑말랑하는 그 순간 마치 저승사자처럼 문이 벌컥 열리더니

 

"야 방금 욕한 놈 나와."

 

방안에는 30여명의 학생들이 이불을 쓰고 있었는데 모두 폼페이 석고상처럼 얼어붙었다.

 

47초쯤 지났을 때

 

"제가 그랬습니다."

 

이광형이라는 아이가 일어서서 나갔다. (물론 그날 광형이는 욕한 적이 없다. 지금 보면 개허세 ㅋㅋㅋㅋㅋㅋㅋ 이 색히 영화를 너무 많이 봤어.)

 

미친개이는 분당 180헤르쯔로 광형이의 볼때기에 따귀를 꽂았다. 광형이의 숭고한 희생 덕분에 우린 편하게 자다가 다시 그 새를 못 참고 떠들고 만다. 그리고 미친개이는 더이상 참을 수 없었던지 새벽 2시에 학생들을 밖으로 불러내 자갈밭에서 엎드려 뻗쳐를 시켰다.

 

이날 에스프레소 더블샷을 들이키는 이광형군(40세)의 개허세를 보니 그때 생각이 어렴풋이 난다.

 

 

한편 독약을 단숨에 들이킨 이씨는 옆자리 안진홍씨의 아메리카노를 다시 자기잔에 부은 후, 살짝 맛을 보더니 혀를 쯔쯔 차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런건 맹물이다. 맹물. 이거 왜 돈 주고 사묵노. 무식한 것들. 커피를 몰라. 커피는 임마. 에스쁘레쏘!"

 

 

 

이광형씨의 돌발 행동에 일행들은 모두 당황했으나, 평소 포항공대 방사광가속기 인근에서 과로에 시달리는 업무특성을 고려하여 이해하기로 했다.

 

이날 모임이 끝난 후 김씨는 지곡동 이광형씨의 숙소까지 직접 운전하여 바래다주는 우정을 보여줌으로써 이씨를 감동케 했다. 김씨는 이튿날 포항에서 가장 존경할만한 한의사 3인(우석, 대성, 김한의원)의 원장님들을 뵙고 인사를 드린 후에 포항을 떠난다는 계획을 밝혔다.<사회부/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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