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역사저널 그날-허균편-은 재밌는 내용을 방송했다.
원래 호민이란? 통상적으로 일반 백성 중에서도 하층계급과 지배계급 사이의 고리역할을 하던 '잘나가던 백성'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허균은 호민론에서 태풍이나 홍수, 가뭄같은 자연재해보다 무서운 것이 백성이라고 했다.
이것이 프랑스 시민혁명의 정신이다. 17세기 초반에 한국에 이런 사상가가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항민이란? 늘 한결같이 착취당하는 백성들을 말한다. 기존 제도에 반항하거나 원망하지도 않는다. 그저 밥 3끼 먹고 배부르고 등 따시면 그만이다. 원망하는 마음조차도 갖지 않는 철저한 노비근성의 백성들.
허균은 이런 항민들은 지배자들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 다음 원민이다. 불합리한 제도 아래 수탈당하고 고혈을 빨아먹히는 백성이지만 소극적으로 원망하는 마음만 있을 뿐, 사회를 개혁하고자하는 레벨은 아니다. 원민 역시 내 통장에 돈 떨어지면 임금 욕하고, 노령연금이라도 두둑하게 들어오면 무조건 임금님 만세 모드다.
원망하는 마음, 신세한탄만 있을 뿐, 재물을 갖다 바치는 일은 계속 한다. 따라서 허균은 이런 원민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대부분의 빈의들도 원망하는 마음, 신세한탄만 한다. 걔들도 평생 원민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가장 두려운 집단은 호민들이다. 얘들은 원망이나 한탄 같은 마음가짐에 그치지 않는다.
세상을 바로잡고자하는 의지를 갖고 조직화된 시민들이다. 평소에는 묵묵히 자기일을 하고 어두운 곳에 머물지만 때가 되면 봉기하는 것이 이런 호민들이다.
지난 2012년 10월 한의사협회 회관에 모였던 3천명의 한의사들이 바로 호민들이다. 그들은 평소에는 자신들의 병원에서 묵묵히 일하는 선량한 원장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평일 오전 진료를 그만두고, 광장에 모였다. 인터넷에 욕하고 리플달고 한탄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벗어나서 직접 행동했다. 그리고 협회장 직선제 쟁취와 천연물신약 제도 개선의 물꼬를 틔웠다. 그날의 구호처럼 그들은 협회를 리셋해버렸다.
그 이후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한의사협회가 식약공용 약재에 대한 TV광고를 보였고, 천연물신약 고시 무효소송에서 승소했고, IMS는 대법에서 뒤집었다. 홈쇼핑에 나와 편법으로 돈을 벌던 저질 한의사들이 협회 윤리위원회에 줄줄이 불려갔다. 이것이 바로 호민의 힘이다.
호민이 조직화된 모습이 바로 활빈당이다.
구심점이 없는 대중은 모래알과 같다.
노무현이 말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
김대중이 말했다.
-원칙은 서생처럼, 실천은 상인처럼
SNS에 대통령에 대해 욕설하고 조롱하고 비판하고 자기만족하는 아이들? 그냥 '원민'이지 뭐. ㅋㅋㅋㅋ 좋아요 누르고 리플 백만개 다는 원민 천만명이 모여도 이 사회는 별로 바뀌지 않아. 거대한 에너지 소모일 뿐.<bk>